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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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도 가끔 상상한다. 내게 '초능력'이 있었으면...

슈퍼맨처럼, 원더우먼처럼 인간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무슨 일들을 해볼까?

이 책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남들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한 남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남과 다른 능력을 지녔기에 우월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능력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하기에 말 못할 고통이 있다. 주인공 이치가와 고로는 한 번 본 이미지는 절대로 잊지 않는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일년 후, 낯선 장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타살인가, 자살인가?

도대체 그는 왜 사라졌던 것일까? 왜 낯선 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의문을 품은 채 이야기는 차분히, 세밀하게 진행된다.

 

이치가와가 발견된 수로의 고장이라는 'M' 마을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우선, 'M'마을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 마을을 상징하는 듯한 세 개의 탑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 것인지.

마치 잘게 잘라놓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듯 몇 개의 단서만으로는 전체의 이야기를 예상할 수가 없다.

 

등장인물들의 묘사에도 작가는 정성을 들였다. 그들의 생김새, 성격, 환경, 심리등 마치 인물 하나하나를 만나고 있는듯한 친근함을 준다. 하지만, 그게 때로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질만큼 자세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은 재미있지만 다소 느린 탬포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원인도 결말도 예측이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마을에 관한 '비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야할까, 의외의 이야기를 담고있었다.

정말 그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가능한 이야기일까? 조금은 환타지라 할 수 있는 그곳의 매력은 차마 밝힐 수가 없다. 읽는 재미를 방해할 순 없으니...

 

이치가와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니 그로인해 힘들어하기 전에 어딘가 '도움'이 될 의미있는 곳에 그 힘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느닷없이 사라질만큼의 동기도 부족함으로 남는다.

온다리쿠 작가의 특징인,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과 증언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방법은 역시나 탁월하고 치밀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뒷장을 미리 열어봤더라도 범인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측불허'의 한 수에 박수를 보내고싶다.

온다리쿠식 환타지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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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문장
김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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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책에 대해 뭐라 평해야할 지 도통 모르겠는 순간은 참 당황스럽다. 분명히 읽었건만, 어떤 걸 읽었는지, 느낌은 어땠는지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유진이라는 신인작가의 첫 작품이라는데, 강하고 낯설다.
불편하고, 기이하고, 무섭다. 물론, 그런 요소들은 매우 유혹적이긴 하다.

 

9개의 단편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타지 속, 어느 기괴한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을 나열해 놓은듯하다. 아이들이 폭사당하는 당혹스런 상황으로 시작하는 [늑대의 문장]에서 이미 공포는 주위에 엄습해 왔다. 이어지는 [빛의 이주민들]에서의 불편한 출산 장면에서 멈췄어야 했는지도 모른겠다. 이 찜찜한 기분을 피하려면. 하지만, 그러기엔 분명 유혹적이다.  

소설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때 읽는 이의 만족감은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친숙한 소재는 아니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죽은 엄마의 발목을 곁에 두고 사는 두 자매의 이야기 [마녀]와 물 속에 가라앉는 마을에 사는 두 자매의 이야기 [목소리]는 그 의미들이 명확하지 않아 무슨 말인가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모호함이 갖는 상상력이랄까. 아마 작가는 그런 의도로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다 읽은 후, 뒷 부분의 해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명확한 결말과 의도를 바랐던 궁금증들이 해설에서 풀리는 듯하다. '신선한 상상력과 특유의 크로테스트한 묘사가 인상적이다'라는 심사평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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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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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 ...p.33

나는 결론 내기를 좋아한다. 중립이란 모호함에 어느정도 알러지가 있는 것도 같다.

이 책은 그런 나의 극단적 성향에 신선한 발상을 던져주었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그렇다! 꼭 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내용에서만큼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작가의 엉뚱함과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각각의 소제목은 서로 대립되는 두 자기 질문으로 되어있다.

'정원이야, 숲이야?...산책이야, 도망이야?...산 거야, 죽은 거야?'

정말 답은 뭐지? 두 가지 다 일수도 있는 재미있는 상황에서 편견을 버리고 편안하게 즐겨보게 된다.

 

좀도둑 루크레시오는 어느 낡은 집을 털기 위해 몰래 숨어들어간다.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집엔 마치 기다렸던 것 처럼 아이 하나가 있다.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이 좀도둑을 맞이하는 아이는 누구일까?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고 도망갈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발목을 잡는 아이의 대담함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이는 누구며 이 집의 으스스한 분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끝을 알수 없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치를 기대하기에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낯설다.

특히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자신을 책이라 생각한다는 대목에서의 선문답같은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네는 왜 내가 실버 선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실버 선장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바로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내가 나폴레옹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폴레옹은 뼈와 살을 지닌 진짜 사람이었어.

나폴레옹의 삶이나 인생을 천분의 일이라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 미친 거라네'

정신병원 환자가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논리적인 말이다.

 

도대체 작가는 누구일까?

그는 수학자이면서도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다. 이탈리아 인이지만 스페인에서 자랐다. 사회운동가이며 극작가다. 역시나 재미있는 이력이다.

 

'책'이라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잠시 이성과 논리는 접어두는 건 어떨까.

그게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나만의 처방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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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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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언니의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찾아갔던 어느 소극장에서의 연극 한 편은,

 그후로 연기와 극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었다.

배우가 되어 타인의 삶을 옷처럼 걸치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생명을 얻어 잠시 살아본다는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의 아쉬움에 대한 기막힌 보상이다.

그런 유혹에 잠시 빠져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학창시절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었었지만,

열정을 실천에 옮기는 것 또한 인연인 것인지 생각만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 소설은 그런 어린시절의 충동을 추억하게 해주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연기를 시작하려는 '내가'되어 잠시 주인공의 삶을 살아보는 것처럼 설레고 들뜨는 기분이었다.

그런 짜릿한 전율은 주인공 아스카에게서 받은 것이다.

연기에 문외한인 대학생 아스카의 천재적인 연기력은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말 천재적인 연기력이라는 것이 있을까?

가끔 TV에서 '천재적 아역배우'라는 어린이들의 '신들린' 몸짓을 보면

마치 '신들린'것처럼 생각되어 오싹함을 느꼈었는데, 그것이 타고나는 것인가?

아스카는 '타고난' 연기자였다. 연기가 남의 인생을 흉내내는 것이라면 과연 아스카는 뛰어났다.

 

또 한명의 '천재적' 아역배우 출신의 연기자 교코는 이제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뇌한다.

'배우는 인간이야. 배우는 인간을 연기하는 거야......

인간의 추잡함과 숭고함과 모순을 포함한 부분이라고.  

그런게 없는 배우가 인간을 연기해 봤자 무슨 재미가 있겠나?'

연출자의 이 말처럼, 교코는 알을 깨고 나온다.

완벽하게 연기해내는 기계가 아닌 생각하고, 아파하고, 고민하는 인간으로써 진정한 연기를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이 천재적인 두 여자의 운명같은 만남인 오디션이 열린다.

빠른 호흡으로 책장을 넘기며 어떤 연기들을 보여줄지 마음이 급해진다.

자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오디션 현장의 묘사는 연극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누가 오디션의 최종 합격자가 될지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하며 따라가게 된다.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의 초조한 뒷모습을 지켜본듯하다.

이제 그 연극의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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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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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의 인생을 구하진 못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구했다.
맵고 짜고 걸쭉한 걸 먹고난 후엔, 부드럽고 순한 맛을 찾게 된다. 책도 가끔은 편하게, 순하게 읽을 수 있는 휴식같은 내용이 필요하다. 꼭 식빵처럼! 진한 맛은 없지만 그 부드러움에 자꾸만 손이 가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듯이, 이 소설은 그랬다.  

뒤늦게 철든 50대 아저씨의 인생찾기라고나 할까.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와 비슷하다고 느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거다. 그 50대 아저씨 리처드가 어느날 갑자기 몸에 통증을 느끼며 삶과 죽음, 외로움과 온정을 생각하게 된다.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향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간호사의 친절한 눈빛이 그를 감동시켰다. 그동안 살아오며 그런 일을 의미있게 별 것으로 느꼈던 적이 없던 그가,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의 실체를 처음 느낀 것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그 나이가 먹도록 몰랐다니, 불쌍하기도 하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외로움의 공포도 처음 느낀 그는 이제 세상으로 손을 뻗는다.
'자, 나 여기 있어요. 뭐 할 일 없나요?'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깨고 나가려면 뭘 해야 할까? ...그리고 기분이 나아지고 싶다. 인생을 뛰어넘은 영웅이 되고 싶다....어떻게 하면 중년의 평범한 남자가 뭔가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남을 돕는 일이었다. 슈퍼마켓에서 울고 있던 아줌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누가봐도 꿍꿍이가 있는 사람처럼 선심을 베푼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진심이었고, 남편의 멸시와 자식의 무시에서 신시아를 구해주었다. 앞 차의 비상등이 모스부호로 깜박임을 알아채고 납치범으로 부터 한 여자를 구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였다. 그가 영웅이 되려는 걸까.

'스스로를 위해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하는 거지.' 라는 리처드의 말처럼 그저 도울 뿐이다. 그러면서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다. 
오래도록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살던 사람의 일탈은 주위를 놀라게 한다. 누구보다 혼란스러운 건, 아들이다. 버리듯 남겨놓고 집을 나온 리처드였다. 그런 그가 가족을 찾고싶어한다. 아들에게 진정한 아버지로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늦진 않았을까. 그는 초조하고 긴장된다.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지치도록 기다리고 상처받고 억누르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아들에겐 풀어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웠다! 

이야기는 뻔한 줄거리로 흐른다. 능력있고 돈 많고, 성격 까칠한, 가족과는 생이별하며 홀로 지내던 남자가 어느날 깨달은 바 있어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친구를 얻고 가족을 찾는다는 어디서 봤음직한 진부한 구조다. 그런데, 뭔가 분명히 다른 것들이 이 소설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것은 작가의 간결하며 차분한 문체와 깔끔한 감정 표현이 읽는 이를 후련하게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리처드가 만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간결하다. 쿨~하다! 징징거리지도, 야비하지도, 구차하지도 않다. 솔직하고, 담백해서 조금은 차가운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또한 이 소설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인물들의 딱떨어지는 캐릭터! 마음에 쏙 들었다. 벌어지는 상황도 웃기다.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이야기의 결말은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상상만을 남겨 놓고 기분좋게 퇴장하는 인물들의 뒷얘기는 아쉬움을 오래 남긴다.
앞으로도 리처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까? 아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갈까? 부부가 재결합을 할까? 신시아는 홀로서기에 성공할까? 도너츠 가게는 대박이 날까? 닉은 어떻게 될까?....

 

평범함 속 비범함의 난리!
그래서 특별한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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