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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 ...p.33
나는 결론 내기를 좋아한다. 중립이란 모호함에 어느정도 알러지가 있는 것도 같다.
이 책은 그런 나의 극단적 성향에 신선한 발상을 던져주었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그렇다! 꼭 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내용에서만큼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작가의 엉뚱함과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각각의 소제목은 서로 대립되는 두 자기 질문으로 되어있다.
'정원이야, 숲이야?...산책이야, 도망이야?...산 거야, 죽은 거야?'
정말 답은 뭐지? 두 가지 다 일수도 있는 재미있는 상황에서 편견을 버리고 편안하게 즐겨보게 된다.
좀도둑 루크레시오는 어느 낡은 집을 털기 위해 몰래 숨어들어간다.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집엔 마치 기다렸던 것 처럼 아이 하나가 있다.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이 좀도둑을 맞이하는 아이는 누구일까?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고 도망갈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발목을 잡는 아이의 대담함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이는 누구며 이 집의 으스스한 분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끝을 알수 없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치를 기대하기에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낯설다.
특히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자신을 책이라 생각한다는 대목에서의 선문답같은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네는 왜 내가 실버 선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실버 선장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바로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내가 나폴레옹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폴레옹은 뼈와 살을 지닌 진짜 사람이었어.
나폴레옹의 삶이나 인생을 천분의 일이라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 미친 거라네'
정신병원 환자가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논리적인 말이다.
도대체 작가는 누구일까?
그는 수학자이면서도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다. 이탈리아 인이지만 스페인에서 자랐다. 사회운동가이며 극작가다. 역시나 재미있는 이력이다.
'책'이라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잠시 이성과 논리는 접어두는 건 어떨까.
그게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나만의 처방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