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 -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
박희선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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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전, 나에게 바다는 늘 놀러가고 싶었던 동경의 장소였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떠나고싶다를 외치며 바다로의 여행을 기다렸다.

드디어, 연애를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찾은 바다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장소 그 자체였다. 역시 바다는 동경할 만한 곳이었다.

 

 

2.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며 바다는 휴식의 장소였다.

새생명을 키우고 집안을 꾸려가는 힘든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나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남이 청소해주는 방에서 잠을 자다 신나게 바다에서 뛰어 놀고 들어오는 것. 지친 나를 재충전해주는 바다는 휴식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며 바다는 낭만적인 모습에서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다가왔다.

 


 



3. 학부형이 되어 만난 바다는 학습의 장소였다.

물론 즐기고, 휴식을 취하는 기능도 있지만 그보다 우선 아이들에게 무언갈 가르쳐 주고 싶었다. 바다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느낌이고 그곳에 누가 사는지...바다는 좋은 체험의 장소였다. 또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지칠 때까지 물장난을 하고 낯선 생명체에 호기심을 느끼며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다. 바다가 있어 너무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4. 이제 바다는 지켜야 하는 곳이다.

아~ 떠나고 싶다. 올 여름은 어디로 휴가를 떠날까?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이라는 책을 펴기 전, 이런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다 책의 소제목을 봤다. <해양보호구역 답사기>. 아~...바다는 보호해야할 곳이란 말이다. 이미 훼손 되었거나, 되고 있거나, 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말인가. 자연은 그 안에서 어느 개체를 특별히 보호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반대로 훼손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람만이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엔 미처 몰랐던 우리의 아름다운 바다가 가득하다. 가본적 있던 곳도 찾아간 시간이 다르면 풍경도 다른가보다. 너무도 아름다워 다가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의 발걸음이 그곳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도...가본적 없던 우리의 바다를 아이들과 꼭 찾아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바다는 지켜야 하는 곳임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각인시켜주어야겠다. 그것이 바다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책에서 소개된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우리 바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운 우리 갯벌, 감동과 이야기가 있는 체험여행지'의 각각의 테마별로 나뉘어 있는 모든 바다를 찾아갈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일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이 나이에 따라 달라졌다. 중년의 삶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일까?

바다만큼은 생생하고 활기찬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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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갔지? - 정리정돈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9
문정옥 지음, 박진아 그림 / 소담주니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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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갔지?
오늘도 아들녀석은 자신이 아끼는 작은 오토바이가 없어졌다며 찾고 있다. 분명히 잘 놔뒀는데 이상하는 말과 함께...며칠 전 책을 읽다 자신의 얘기라고 좋아했던 모습이 겹쳐지며 나는 다시 짜증이 밀려온다. 책 속 만우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며 앞으로는 장난감을 아무곳에나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은 모두 잊었나 보다. 잔뜩 엎질러 놓은 블럭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매일 겪는 스트레스, 다른 집은 어떨까? 다른 엄마들은 이럴때 화내지 않고 현명하게 아이를 훈육하겠지? 어질러진 장난감보다도 상황에 너그럽지 못한 나 자신에게 더 짜증이 난다.

책 속 만우도 대충 두는 것에 익숙해 있다. 헬리 콥터의 부속품을 못찾는 모습이며 학교 다녀온 후 가방과 신발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모습도 우리 집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만우의 잘못을 지적하는 판단력도 보여준다. 자신의 모습을 책을 통해 보게 되니 엄마의 마음도 잘 이해되나 보다. 엄마를 쳐다보는 눈빛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녹아있다. 어쩌면 여러 번의 잔소리 보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주는 책이 더 효과가 큰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엄마는 책 속의 엄마처럼 너그럽진 못하다. 우선 화부터 나니 소리 지르고 심하면 등짝 한 대 때리고 있는대로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매번 벌어지는 개선되지 않는 일상에 통제력을 잃고 만다. 그래, 어른인 나도 이만한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데, 아이들인 너희가 정리 정돈을 잘 하리라고 기대해선 안되지...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책을 통해 아이와 엄마 모두가 변해야 함을 또한 배운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들에게 신나게 어지르고 놀라고 자리를 내줬다. 마음대로 늘어놓고 노는 자유로움을 만끽한 후엔 정리 정돈하는 수고로움에 게으름 피우진 않겠지? 아이들은 신나게 꺼내놓고 펼쳐놓고 논 것만큼 정리도 잘했다. 나 또한 소리지르지 않고 가볍게 타이르며 정리하는 행동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잡으며 만우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봤다. 학교를 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임을 아이는 책과 함께 깨닫는다. 만우의 일상은 지금 우리집의 모습이고 미래에도 지속될 모습이다. 책과 함께 간접경험을 해봤던 좋은 기회였다.
백번의 말보다 한 권의 책!! 바로 이럴 때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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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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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집으로 놀러 갔던 유년기의 추억에 볏집이 깔려 있던 안방과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밥을 했던 옛날식 부엌이 떠오른다. 방을 데우려 아궁이에 불을 피우면 알싸한 연기내음이 집 주위로 번지고 부엌과 방에도 불내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얼마전 TV에서 보았던 일본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선 합장건축법으로 집을 짓고 가운데 화로에서 불을 피우면 온 집안에 연기가 가득차며 온기도 전해지고 색깔도 까맣게 물들인다고 나무집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외할머니 집에서의 아궁이 불과 일본 합장건축물에서의 화로 연기가 생각난 것은 빌브라이슨의 책을 보았을 때였다.

"중세에서 한 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사람의 머리보다 높이 있는 공간은 거의 모두가 사용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개는 그곳에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노출형 화로는 물론 나름의 분명한 이점이 있었지만....그러다가 좋은 벽돌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변화가 이루어졌다...노출형 화로가 사라지게 되어서 모두가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나무 연기에 푹 훈제되었던" 때가 건강에 더 좋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8~79쪽

나무 연기에 훈제 되었던 화로가 있던 당시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아궁이 불을 떠오르게 했고, 책을 읽으며 내가 살던 그간의 여러 집들도 떠올리게 했다.

 

기억에 있는 내 인생 첫 우리집은 인천의 어느 골목, 만화가게 안쪽의 작은 셋방이었던 것 같다. 흑백텔레비전을 처음 사서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TV를 봤던 것 같다. 기억이란 퇴색되고 각색되기 마련이니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옛날에는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생활하니 사생활이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단어겠다. 어쨌든 흑백텔레비전으로 뽀빠이와 이상한 나라의 폴을 봤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흑백텔레비전은 14인치의 빨간색이었다. 가끔 추억의 물건들을 보여주는 프로에서 반갑게 어쩌다 만날 수 있을만큼 이젠 박물관 신세나 지는 골동품이다. 텔레비전 뒤에 달린 안테나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화질이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그걸로도 부족하면 옥상에 있는 실외 안테나에 누군가 붙어서 '잘나와'를 외치며 조정을 해야했다.

70년대의 셋방들은 'ㄷ'자 모양의 집으로 가운데 수도시설이 있고 온집의 여러 가정들이 공동으로 수도며 화장실을 사용했다.

아~, 그런 시절 사생활이란게 있었던가. 사생활을 보호 받을 수 있었던 건 생김은 빌라지만 당시엔 아파트라 불렸던 3층의 공동주택으로 이사한 11살 때였다. 현관문만 닫으면 창문 밖으로 먼 동네의 전경이 보이고 옆집 사람들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으니 이때부터 가족의 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80년대 초였던 당시엔 아파트라는 것이 귀해 웬만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너른 주차장에 차들도 띄엄띄엄 있어서 단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었다. 아침마다 문밖에 놓여있던 유리병에 담긴 흰우유가 생각난다. 역시 추억의 물건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지만. 비닐 마개를 떼면 하얗고 납작한 뚜껑이랄 것도 없는 마개가 나오는데 그걸 떼어내고 입술에 우유를 묻혀가며 병째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살며 침실이니 주방이니 거실이니 하는 단어들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그냥 방과 부엌, 변소라고 불렀던 것 같다. 생활이 바뀌며 사용하는 용어도 변화한 것이다.

"침실bedroom이라는 표현은 1590년경에 셰익스피어가 [한여름밤의 꿈]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시실 그때는 침대 안의 공간을 가리킨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오직 잠을 자는 데에만 쓰이는 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는 것은 다음 세기의 일이다." 83쪽

침대를 처음 사용한 것은 나만의 방을 갖게 된 14살 보다 6년이 지난 후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되며 비로소 나의 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밤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에게 편지도 쓸 수 있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도 있었다. 나만의 침대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가질 수 있었다. 침대를 사용하는 것에 막연한 동경을 품었기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무조건 기뻤다. 하지만 막상 폭신한 매트리스는 허리에 익숙치 않아 불편하기만 했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1865년에 처음 발명되었지만, 처음에만 해도 믿을 만하게 잘 가동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코일이 구부러지면서 사용자를 압박하는 바람에, 자칫 침대에 누운 채로 찔려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389쪽

매트리스가 불편해도 이불을 폈다접었다 할 필요가 없으니 자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이점이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생명체가 자라며 어떤 위해를 끼칠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집 안에서 더이상 침대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큰아이가 태어날 즈음이다. 아토피가 의심되는 유전적 이유 때문에 일찌감치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기생하는 집먼지 진드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개수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같은 걱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어느 의학 권위자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설명을 내놓았다. '침구 아래에 있는 몸 주위의 공기는 극도로 불순하다. 피부의 털구멍을 통해서 빠져나온 독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한 의사는 미국의 사망자들 가운데 최대 40퍼센트가량은 잠자는 동안 건강에 나쁜 공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고 집계하기도 했다." 389쪽

 

책은 집이라는 공간의 이곳저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참고문헌만 해도 15쪽에 빽빽히 적혀있다. 처음 집에 대한 역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서양건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일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이미 서양건축에서 살고 있다. 모양은 다를지라도 기초는 그것에서 시작했으니 우리의 건축들도 서양건축이다. 전통적인 가옥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결국 집에 대한 역사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집 밖에 있는 공동 변소를 사용하던 시절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도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속이라도 불편할 때면 우르릉쾅쾅~ 난리가 난 볼 일 소리를 앞 사람이 듣고 있어야했던 그 시절의 민망함도 모두 기억난다. 수세식 변기를 쓰게 된 때의 안도감은 그래서 더욱 컸다. 1801년에 세계 최초의 수세식 변기가 나왔다니 나의 사생활이 그 시절부터 보장된 듯하다.

중세시대의 주택의 구조, 쓰임새,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다양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의 집합소 같은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었지만, 그가 왜 그리 유명한 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또한 책과 함께 내가 살았던 집들에 대해 추억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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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3
야마모토 켄조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길지연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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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듯 차분한 그림과 잔잔하며 따뜻한 내용이 잘 어우러진 감성동화이다. 

엄마와 둘이 살던 아이는 엄마의 사망으로 숙모네 맡겨졌다.
   '그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이었지.' 
아이에겐 몸으로 느끼는 겨울의 추위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상처의 추위가 훨씬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도 그렇게 추워 보이게 그려진 것 같다. 아이의 상황과 마음을 표현하느라...
나 또한 어려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과 성별이 다른 나이 많은 오빠.
일년 여 시간동안 외할머니댁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그때의 심심하고 외로웠던 기억은 작은 아픔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나의 어린시절은 색깔로 표현하자면 이 그림처럼 갈색과 파란색이 주로 쓰여야 할 것이다. 

'내 친구는 세발이뿐이었어.'
사촌이 있었던 아이는 사촌보다는 떠돌이개 세발이에게 마음이 끌린다.
아마도 비슷한 처지의 세발이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쉬웠을 것이다.
연세 많은 할머니와 노는 것 보다 집에서 키우던, 덩치가 나보다 컸던 점박이 개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어린시절의 나또한 같은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하는 친구 같은 개. 지금도 개와 함께 개집에서 소꿉놀이를 하던 그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남아있다.  

'세발이는 차갑게 얼어 있었어.' '눈은 우리에게만 내렸어.'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갈 수 없던 가여운 아이는 세발이를 찾아나선다. 어디에도 없는 세발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세발이를 발견한 아이는 개를 도우며 자신도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다시 건강해진 세발이에게서 현실을 느끼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큰 교훈도 얻었을 것이다. 

'세발이는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멈췄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
얄궂은 인생은 소년에게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짊어준다. 아이의 마음은 상처투성이였을 것이다.
세발이와 헤어져 이제 또다른 삶을 겪어야 한다. 과연 이 둘은 다시 만날까, 소년을 어떻게 자랄까?  아픈 마음으로 어느새 이야기에 동화되어갔다.  

'눈을 감으면 그 길이 보이잖아. 세발이가 나를 보고 있잖아. 나는 계속 걸을거야.'
어느새 소년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컸다. 여전히 혼자이지만 마음은 늘 둘이다.
눈을 감으면 세발이가 보이니까. 그 따뜻한 추억이 가슴 깊이 자리해 소년을 어른이 되게 키워줬으니까.
어린시절 그 점박이 개와 나의 인연은 어떻게 끊어졌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함께 뛰어놀던 화창하던 여름날의 더위와 구수한 개의 냄새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의 전부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진다.
외로움과 심심함을 잊게 해주던 고마운 친구의 기억이다. 

책을 덮으며 코 끝이 찡해지는 감동이 전해졌다.  어린 소년의 외로움과 다 자란 소년의 여유로움이 그대로 전달된다.아이들도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조용하다. 무언가 느껴지는가 보다.
화려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의미있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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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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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그 이름만으로도 설렌다. 명품에 열광하지도 변변한 명품 하나 갖고 있지도 않지만, 왠지 "명품"이라는 단어에서 풍요롭고 화려한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된다. 행복할 것 같고, 세련될 것 같고, 예쁠 것 같은 판타지들이 마구 샘솟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은 "판타지"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명품의 정의는 무엇일까? 명품의 가치는 어느정도이고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 명품에 대한 나의 궁금증 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패션에 관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털패션이라 불리는 분야의 창조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시작은 너무도 유명한 디자이너 "샤넬"이었다. 유행을 만들려면 잘 해석하고 사람들이 바라는 게 뭔지 잘 짚어주어야하는 철학과 감각이 필요하다는데 샤넬은 두 가지 재능을 갖췄고 그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파리"라는 유행의 도시에 살고 있었다. 화려하고 거추장스럽던 20세기 이전의 옷차림을 과감히 간략하게 만든 그녀의 대담성과 실용성에 감탄하게 된다. 치마를 입고 말을 타던 당시의 여성들과 달리 여성용 승마바지를 만들어 입었다니 선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평생 한 일이라곤 남성복을 여성복으로 바꾼 일밖에 없다고 말한 것처럼 여성에게도 남성복의 편안함을 선사한 첫 디자이너이다. 이런 샤넬이 만든 옷들은 곧 명품, 럭셔리의 시작이고 대명사가 되었다. 그녀의 패션은 '실용성'이 궁극의 목적인 것 같다. 실용적인 것이 고가의 사치품이라니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우리는 왜 명품에 열광할까? 남들보다 멋지게 보이고 싶고 남들보다 강하게 보이고 싶은 여러 갈망들. 결국엔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권력욕이 명품을 소유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력 5년의 20대 직장 여성의 평균 연봉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단다. 그런데도 마치 모두가 명품을 여유롭게 구매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거리를 나가보면 모두 명품 가방 하나쯤은 들고 있으니 괜시리 주눅들게 된다. 비싼 명품 의류나 명품 핸드백은 없지만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이나 향수 정도는 내게도 있다. 저렴한 가격의 기성복이 유명 브랜드의 옷만큼 잘 만들어져 나오며 굳이 값비싼 명품의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이제 명품이란 수식어가 붙은 브랜드들은 액세서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향수, 목걸이, 구두, 화장품 등.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지갑을 기꺼이 열도록 만든 것이다. 몇 백만 원의 옷을 살 순 없지만 십여 만 원으로 명품을 소유할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한동안 챙겨서 봤던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품의 광고판이다. 주인공이 열광하는 고급 구두의 이름도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패션으로 매 회 보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으론 닮고 싶고 부럽게 만들기도 했다. 드라마의 내용 보다 그녀들의 차림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기도 했었다. 뉴욕도 파리만큼 패션의 메카다. 우리는 파리보다는 뉴욕의 그것을 더욱 따라하고 싶어 한다. 그들처럼 입고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살고 싶어하며 따라하고 있다.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뉴욕이라는 판타지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성도 환상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은 가히 "판타지"의 시대다. 명품에 대한 판타지든, 벰파이어에 대한 판타지든, 마법에 대한 판타지든, 판타지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이 유행이 되고 있다. 명품은 럭셔리를 우리말로 옮긴 것 같지만 사실은 '사치품'이라는 말을 교묘히 빠져나간 허상이다. 장인의 손을 거쳐 예술의 혼이 담긴 작품이 진정 명품일진데 우리는 과연 그런 명품을 쫓고 있을까? 나는 과연 그런 가치가 있는 물건에 온당한 댓가를 지불했던 것일까? 명품은 그것이 의도한 판타지, 환상일 수도 있다. 그것의 실체를 바로 알고 제대로 접근할 필요가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가 어느때 보다도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또한 생각해봤다.

 

작가는  "명품 판타지"를 첫 번째로  앞으로 아파트와 대학을 둘러싼 판타지를 풀어갈 계획이란다. 판타지의 실체를 보여줄 시리즈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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