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외할머니 집으로 놀러 갔던 유년기의 추억에 볏집이 깔려 있던 안방과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밥을 했던 옛날식 부엌이 떠오른다. 방을 데우려 아궁이에 불을 피우면 알싸한 연기내음이 집 주위로 번지고 부엌과 방에도 불내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얼마전 TV에서 보았던 일본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선 합장건축법으로 집을 짓고 가운데 화로에서 불을 피우면 온 집안에 연기가 가득차며 온기도 전해지고 색깔도 까맣게 물들인다고 나무집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외할머니 집에서의 아궁이 불과 일본 합장건축물에서의 화로 연기가 생각난 것은 빌브라이슨의 책을 보았을 때였다.

"중세에서 한 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사람의 머리보다 높이 있는 공간은 거의 모두가 사용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개는 그곳에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노출형 화로는 물론 나름의 분명한 이점이 있었지만....그러다가 좋은 벽돌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변화가 이루어졌다...노출형 화로가 사라지게 되어서 모두가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나무 연기에 푹 훈제되었던" 때가 건강에 더 좋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8~79쪽

나무 연기에 훈제 되었던 화로가 있던 당시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아궁이 불을 떠오르게 했고, 책을 읽으며 내가 살던 그간의 여러 집들도 떠올리게 했다.

 

기억에 있는 내 인생 첫 우리집은 인천의 어느 골목, 만화가게 안쪽의 작은 셋방이었던 것 같다. 흑백텔레비전을 처음 사서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TV를 봤던 것 같다. 기억이란 퇴색되고 각색되기 마련이니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옛날에는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생활하니 사생활이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단어겠다. 어쨌든 흑백텔레비전으로 뽀빠이와 이상한 나라의 폴을 봤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흑백텔레비전은 14인치의 빨간색이었다. 가끔 추억의 물건들을 보여주는 프로에서 반갑게 어쩌다 만날 수 있을만큼 이젠 박물관 신세나 지는 골동품이다. 텔레비전 뒤에 달린 안테나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화질이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그걸로도 부족하면 옥상에 있는 실외 안테나에 누군가 붙어서 '잘나와'를 외치며 조정을 해야했다.

70년대의 셋방들은 'ㄷ'자 모양의 집으로 가운데 수도시설이 있고 온집의 여러 가정들이 공동으로 수도며 화장실을 사용했다.

아~, 그런 시절 사생활이란게 있었던가. 사생활을 보호 받을 수 있었던 건 생김은 빌라지만 당시엔 아파트라 불렸던 3층의 공동주택으로 이사한 11살 때였다. 현관문만 닫으면 창문 밖으로 먼 동네의 전경이 보이고 옆집 사람들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으니 이때부터 가족의 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80년대 초였던 당시엔 아파트라는 것이 귀해 웬만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너른 주차장에 차들도 띄엄띄엄 있어서 단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었다. 아침마다 문밖에 놓여있던 유리병에 담긴 흰우유가 생각난다. 역시 추억의 물건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지만. 비닐 마개를 떼면 하얗고 납작한 뚜껑이랄 것도 없는 마개가 나오는데 그걸 떼어내고 입술에 우유를 묻혀가며 병째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살며 침실이니 주방이니 거실이니 하는 단어들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그냥 방과 부엌, 변소라고 불렀던 것 같다. 생활이 바뀌며 사용하는 용어도 변화한 것이다.

"침실bedroom이라는 표현은 1590년경에 셰익스피어가 [한여름밤의 꿈]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시실 그때는 침대 안의 공간을 가리킨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오직 잠을 자는 데에만 쓰이는 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는 것은 다음 세기의 일이다." 83쪽

침대를 처음 사용한 것은 나만의 방을 갖게 된 14살 보다 6년이 지난 후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되며 비로소 나의 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밤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에게 편지도 쓸 수 있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도 있었다. 나만의 침대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가질 수 있었다. 침대를 사용하는 것에 막연한 동경을 품었기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무조건 기뻤다. 하지만 막상 폭신한 매트리스는 허리에 익숙치 않아 불편하기만 했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1865년에 처음 발명되었지만, 처음에만 해도 믿을 만하게 잘 가동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코일이 구부러지면서 사용자를 압박하는 바람에, 자칫 침대에 누운 채로 찔려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389쪽

매트리스가 불편해도 이불을 폈다접었다 할 필요가 없으니 자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이점이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생명체가 자라며 어떤 위해를 끼칠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집 안에서 더이상 침대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큰아이가 태어날 즈음이다. 아토피가 의심되는 유전적 이유 때문에 일찌감치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기생하는 집먼지 진드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개수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같은 걱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어느 의학 권위자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설명을 내놓았다. '침구 아래에 있는 몸 주위의 공기는 극도로 불순하다. 피부의 털구멍을 통해서 빠져나온 독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한 의사는 미국의 사망자들 가운데 최대 40퍼센트가량은 잠자는 동안 건강에 나쁜 공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고 집계하기도 했다." 389쪽

 

책은 집이라는 공간의 이곳저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참고문헌만 해도 15쪽에 빽빽히 적혀있다. 처음 집에 대한 역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서양건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일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이미 서양건축에서 살고 있다. 모양은 다를지라도 기초는 그것에서 시작했으니 우리의 건축들도 서양건축이다. 전통적인 가옥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결국 집에 대한 역사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집 밖에 있는 공동 변소를 사용하던 시절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도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속이라도 불편할 때면 우르릉쾅쾅~ 난리가 난 볼 일 소리를 앞 사람이 듣고 있어야했던 그 시절의 민망함도 모두 기억난다. 수세식 변기를 쓰게 된 때의 안도감은 그래서 더욱 컸다. 1801년에 세계 최초의 수세식 변기가 나왔다니 나의 사생활이 그 시절부터 보장된 듯하다.

중세시대의 주택의 구조, 쓰임새,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다양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의 집합소 같은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었지만, 그가 왜 그리 유명한 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또한 책과 함께 내가 살았던 집들에 대해 추억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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