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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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그 이름만으로도 설렌다. 명품에 열광하지도 변변한 명품 하나 갖고 있지도 않지만, 왠지 "명품"이라는 단어에서 풍요롭고 화려한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된다. 행복할 것 같고, 세련될 것 같고, 예쁠 것 같은 판타지들이 마구 샘솟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은 "판타지"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명품의 정의는 무엇일까? 명품의 가치는 어느정도이고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 명품에 대한 나의 궁금증 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패션에 관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털패션이라 불리는 분야의 창조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시작은 너무도 유명한 디자이너 "샤넬"이었다. 유행을 만들려면 잘 해석하고 사람들이 바라는 게 뭔지 잘 짚어주어야하는 철학과 감각이 필요하다는데 샤넬은 두 가지 재능을 갖췄고 그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파리"라는 유행의 도시에 살고 있었다. 화려하고 거추장스럽던 20세기 이전의 옷차림을 과감히 간략하게 만든 그녀의 대담성과 실용성에 감탄하게 된다. 치마를 입고 말을 타던 당시의 여성들과 달리 여성용 승마바지를 만들어 입었다니 선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평생 한 일이라곤 남성복을 여성복으로 바꾼 일밖에 없다고 말한 것처럼 여성에게도 남성복의 편안함을 선사한 첫 디자이너이다. 이런 샤넬이 만든 옷들은 곧 명품, 럭셔리의 시작이고 대명사가 되었다. 그녀의 패션은 '실용성'이 궁극의 목적인 것 같다. 실용적인 것이 고가의 사치품이라니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우리는 왜 명품에 열광할까? 남들보다 멋지게 보이고 싶고 남들보다 강하게 보이고 싶은 여러 갈망들. 결국엔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권력욕이 명품을 소유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력 5년의 20대 직장 여성의 평균 연봉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단다. 그런데도 마치 모두가 명품을 여유롭게 구매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거리를 나가보면 모두 명품 가방 하나쯤은 들고 있으니 괜시리 주눅들게 된다. 비싼 명품 의류나 명품 핸드백은 없지만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이나 향수 정도는 내게도 있다. 저렴한 가격의 기성복이 유명 브랜드의 옷만큼 잘 만들어져 나오며 굳이 값비싼 명품의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이제 명품이란 수식어가 붙은 브랜드들은 액세서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향수, 목걸이, 구두, 화장품 등.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지갑을 기꺼이 열도록 만든 것이다. 몇 백만 원의 옷을 살 순 없지만 십여 만 원으로 명품을 소유할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한동안 챙겨서 봤던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품의 광고판이다. 주인공이 열광하는 고급 구두의 이름도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패션으로 매 회 보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으론 닮고 싶고 부럽게 만들기도 했다. 드라마의 내용 보다 그녀들의 차림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기도 했었다. 뉴욕도 파리만큼 패션의 메카다. 우리는 파리보다는 뉴욕의 그것을 더욱 따라하고 싶어 한다. 그들처럼 입고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살고 싶어하며 따라하고 있다.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뉴욕이라는 판타지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성도 환상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은 가히 "판타지"의 시대다. 명품에 대한 판타지든, 벰파이어에 대한 판타지든, 마법에 대한 판타지든, 판타지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이 유행이 되고 있다. 명품은 럭셔리를 우리말로 옮긴 것 같지만 사실은 '사치품'이라는 말을 교묘히 빠져나간 허상이다. 장인의 손을 거쳐 예술의 혼이 담긴 작품이 진정 명품일진데 우리는 과연 그런 명품을 쫓고 있을까? 나는 과연 그런 가치가 있는 물건에 온당한 댓가를 지불했던 것일까? 명품은 그것이 의도한 판타지, 환상일 수도 있다. 그것의 실체를 바로 알고 제대로 접근할 필요가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가 어느때 보다도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또한 생각해봤다.

 

작가는  "명품 판타지"를 첫 번째로  앞으로 아파트와 대학을 둘러싼 판타지를 풀어갈 계획이란다. 판타지의 실체를 보여줄 시리즈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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