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부족이었습니다! 허리춤에 찬 넙치를 빼들어 수천마리의 똥파리를 향해 사정없이 휘두르던 저는 마침내 비명을 흩뿌리며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경영관 건물의 옥상으로 허겁지겁 뛰어 올라온 제 시야에 잡힌 건 괴상하게도 똥파리가 아니라 생선대가리였습니다. 토막 난 수백 마리의 생선 대가리가 허공에서 뿌연 안개 사이로 둥둥 떠다니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크악, 크악. 몽환적인 침묵만이 제 허리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느닷없는 고요가 제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는지 제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크악, 크악. 너무 추웠습니다. 벌써부터 몸이 반쯤 얼어붙어 있더군요. 그때 제 앞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구멍이 나타났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는 재빨리 몸을 녹일 셈으로 구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꾸르륵, 꾸르륵. 몸이 점점 녹고 있었습니다. 꾸르륵, 꾸르륵······.
악! 꿈에서 깨어난 건 그때였습니다. 크악, 크악. 턱을 덜덜 떨면서 저는 주위를 휘 둘러보았습니다. 침대에는 러시아 지도가 만들어져 있었고, 어딘가에서 꾸르륵,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배에서 나는 소리이기도 했고, 미친 듯이 지붕을 두들겨대는 빗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빗물이 지렁이처럼 흘러내리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불현듯, 그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크악, 크악.
<너는 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토막토막 말해?> <토막토막, 한다고? 말을, 잇지 못하고, 끝까지.> <봐, 지금도 그러잖아.> <그런다고, 지금도?> 그때 옆에 있던 해파리가 허공에다 고개를 처박곤 웃기 시작했습니다. <맞아! 생선 대가리 같아! 좌판에서 생선 팔 때 대가리 잘라 주잖아. 양동이에 가득 든 생선 대가리들!> <대가리!> <어, 근데 네 별명하고 딱 맞아 떨어지네. 오!> 해파리와 오리새끼가 신이 난 듯 쳐대는 박수 사이로 뭉개진 모기처럼 떠오른 O양의 얼굴. 지하철에서 두 동료 사이에 햄처럼 끼어있던 그날 말입니다. <야, 옥수수 수염차 발음해 봐.> <옥우우······ 우우우우우우. 옥우우 우염차······ 우-우-우-우-우-우-> <푸악, 푸악. 너 신선한 생선 사생아 발음 되냐?> <인언한, 앵언 아앵아> <푸악 푸악. 뭐?> <이언한 앵언······ 아앵······.> <엥엥에에에에엥엥엥!> <뭐?> <인언한 앵언······.> <엥엥에에에엥엥엥!> 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 혀를 내밀며 O양의 얼굴에다 장난치는 득의만만한 얼굴들 사이에 끼인 O양의 불안스레 흔들리는 눈동자를, 물기로 반짝이는 O양의 눈빛을 저는 목격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조그마한 키에 여드름이 숭숭 난 O양, ‘ㅅ’발음이 안 되는 O양. 아람······발음이 안 되는 O양. 눈을 내리깔기 직전 O양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을 읽었으나 저는 외면했던 것입니다. 크악, 크악. 비는 점점 수그러들었으나, 허벅지 사이에 끼운 오리털 이불을 둘둘 말며 하얗게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크악, 크악. 여명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다 저는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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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뿌연 안개로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침이었습니다. 거리에는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자의 고약한 입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떠돌고 있었고, 저는 끈적거리는 안개를 밀어제치며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업이 시작되었기에 곁눈질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크악, 크악. 후문을 통과하고 허둥지둥 교정으로 들어서는데 어떤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하는 즉시 채무자가 되어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우리들이 침묵한다면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뭐긴 뭐야, 인간이지 오리냐, 꽥 꽥> 하고 중얼거렸음에도 저는 몽유병자처럼 그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뿌연 안개 사이로 조그마한 구멍이 열리더니 연설하는 그녀의 양 옆으로 피켓을 든 학생들이 일렬로 선 채 구호에 맞춰 차차차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크악, 크악. 그 가운데에는 오리와 해파리도 발목에 쇠고랑을 찬 채 끼어 있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고, 언제부터인지 숨이 막혀 오기 시작했는데 점점 정신이 아늑해지기 시작하더군요. 꼭 약을 먹어 축 늘어진 닭처럼 말입니다. 크악, 크악.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녀의 목소리만은 뚜렷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발음이 흐물흐물 녹기 시작한 시점이 말입니다. 크악, 크악. 응응거림만이 죽처럼 혼미해진 제 의식을 휘젓고 있었고, 저는 온 힘을 다해 눈을 번쩍 떴는데, 아니! 수천마리의 똥파리가 허공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중심에는 거대한 똥파리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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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매일 발기가 이루어진 탓에 너무 자연스러워 평소엔 의식되지 않았던 것일까. 때때로 양 주먹에 힘이 들어오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리만치 의식하여 걱정을 품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추리닝의 앞섶을 팬티와 겹쳐 열어 늘어진 성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점점 불쾌한 기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꾸르륵꾸륵.
그러고 보니 뿌옇게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저 비둘기 소리 때문에 잠이 깬 것이었다. <빌어먹을 비둘기.> 시도 때도 없이 창틀에 내려앉아 구구거리는 소리는 소화불량에 걸린 창자를 연상케 하다가도 이를 뻐득뻐득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 서린 뿌연 창을 내리치고서 창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회오리치며 들이닥친 강풍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맞은편 건물의 옥상 난간에 올라탄 비둘기를 가늘게 눈을 뜬 채 노려보면서 그는 조심스레 스탠드 옆의 노란 색 라이터를 집어 들었으나 동작을 취하는 순간 비둘기가 푸드덕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라이터는 긴 포물선을 그으며 골목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서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온도를 올리려면 큰 누나의 방문을 열어야 했다. 눈을 뜰 때부터 앵앵거리던 모기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는데 갑작스레 화가 치밀었다. 부릅뜬 그의 눈알이 좌우로 재빨리 굴러갔다. <이 놈이, 어디 갔지······?> 모습을 드러낼 때처럼 홀연히 시야에서 사라진 모기를 잡으려고 천장과 옷걸이 뒤편과 책상 주변을 살금살금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 눈앞 정면으로 나타난 모기를 발견했고, 잽싸게 맞부딪친 양 손바닥을 펼쳤을 때 정확히 양쪽 손바닥 한가운데 박혀 톱니처럼 튀긴 핏자국이 총에 뚫린 자신의 상처인양 그는 흠칫했다. 서둘러 휴지로 문질러 닦고, 거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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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머지않아 나의 물소 또한 대중들로부터 사랑받게 될 것입니다. 헝가리 산 롱부츠를 교정에 드러내놓는 순간 그녀에 버금가는 호응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크악, 악. 그리고 저는 단상에 올라가 그녀에게 고백을 하겠지요. 기다렸다는 듯 그녀 또한 자신의 속마음을 밝힙니다. 자신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보는 순간 이끌렸었노라고. 비계 덩어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진정 영혼이 소중한 것이며, 커다란 머리통도 괜찮다고. 서로의 고백이 수천 명이 모여든 가운데 이루어지고, 키스, 키스, 하고 터져 나온 그들의 외침이 둘의 사랑을 운명적인 것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입술을 포개는 그들의 눈은 감겨진 채인데, 사방에서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의 하얀 빛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크악, 크악. 다음 날 학내 신문의 1면은 다음과 같은 기사로 화려하게 장식될 것입니다. 세기의 프러포즈! 헝가리산 물소와 이태리 산 악어의 만남!
대학이라는 억압의 사슬을 벗어나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 북경까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그들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크악, 크악.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카메라에 포착되어 매번 이슈가 될 터이지만 신화가 되기 위해선 특별한 행보가 필요하겠지요.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짜로 저는 계획을 세워 두었습니다. 임대한 비행기의 유리창을 깨어버림으로써 완성될 신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오. 그들의 열광적인 사랑은 짧았으나 짧았기에 영원히 기억할 만한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운운. 소설, 영화, 뮤지컬, 연극으로 차례차례 변주되어 모든 기록을 갈아 치워버리는 또 다른 신화의 탄생! 그러나 흠집 내기 좋아하는 인간들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인지라 생쥐스트들은 미미와 저의 단점을 낱낱이 밝히려 하겠지요. 실제로 몇몇 흠이 드러날지도 모르겠지만, 흔히 그렇듯이, 그들의 이 나간 도끼는 둘의 명성에 어떠한 균열도 내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을 더욱 부각시켜 줄 것입니다. 크악, 크악. 잘 때에는 코를 골며 일주일에 한 번씩 팬티를 갈아입었다는 사실과 항상 보고서를 늦게 작성해 교수로부터 지적을 받았다는 제 습관들 말입니다. 크악, 크악. 그런데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군요. 이제 그만 마셔야 하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군요. 크악,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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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걱거리는 소리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들었습니다. 헝가리 물소도 더 이제 피곤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저는 둔중한 피로를 느끼며 소파에 앉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골목을 바라봅니다. 달콤한 상상 속에서 미미와 몇 시간을 보낸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오오. 밤새도록 허벅지 사이에 베개를 끼운 채 뒤척이며 하얗게 날이 샐 때까지 미미를, 미미의 얼굴을, 미미의 떨림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크악, 크악. 그녀는 알고 있을까요?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을까요?

그녀가 저를 알아보았을까요?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저의 얼굴을, 호일펌 을 한 머리를, 통바지 아래에 드러난 구두코가 실은 무릎까지 올라온 롱부츠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아마, 모르겠지요. 이름도, 얼굴조차도 모르겠지요. 크악, 크악.
하지만 미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신학기 때의 등록금 인상에 관한 문제부터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남학생에 관한 처벌까지. 학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슈에 대해 행동을 촉구하는 그녀의 활동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크악, 크악. 수업시간에는 항상 자진해서 발표를 맡으며, 매 시간마다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녀를 모른다면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증거겠지요. 크악, 크악.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그녀의 열정 앞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모두가 그녀의 매력에 빠져 있습니다. 연설하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라도 보기 위해 발걸음을 고정시키는 학생들. 아아.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내 사랑 미미. 크악,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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