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층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너머에 기식하는 사내를 알게 된 건 2주가 지날 무렵이었다. 스티커를 붙이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만수 형이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입에 대는 시늉을 하면서 나를 불렀다. 형을 따라 맞은편 문짝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과는 달리, 공간은 휑했다. 희멀건 냉장고 하나랑 컴퓨터 한 대, 텅 빈 책장 한 개가 전부였고, 그 옆에는 또 하나의 문이 무심히 놓여 있었다.

“자자, 설렁탕 먹고 설렁설렁 하자아. 히힛..”

깨어진 양주병 옆에 놓인 버너 불을 조절하던 만수 형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만장이 형! 어서 나와! 다 됐어! 큼큼.”

그러자 녹슬어 삐걱거리는 문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염을 5일 정도 깎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문턱에 서서는 기지개로 하품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 앉은 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담배를 입에 무는 일련을 동작을 취하는 동안, 자신에게 온통 집중한 때문인지, 그는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보이지 않았거나. 만수 형이 나에게 턱짓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웃었다.

“이 형, 인생의 낙오자야. 낙오자. 큼큼.”

“낙지라 그래라 이 새끼, 손님에게 할 말이 따로 있지.”

“손님이 아니라 우리 식구지. 또 하나의 가족, 삼성전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젓가락질을 하는 줄곧 그 사내는 말이 없었다. 입 안으로 후루룩 말려가는 설렁탕면의 면발 소리만이 요란했다. 나에겐 점심이었고 그들에겐 안주였다. 유리조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양주를 들이켜던 사내의 얼굴이 이내 불콰해졌다. 깨진 양주병의 주둥이를 흘깃거리는 나의 불안한 시선을 읽었는지 만수 형이 트림을 꺼억 내뱉었다.

“야, 먹어도 안 죽어. 큼큼.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야. 큼큼.”

“암, 양주가 보약이지.”

사내가 다르게 맞장구쳤다. 만수형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번 씩 택배 물건이 깨지는 수가 있어.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물건들 말이야. 큼큼. 그날은 봉 잡는 거지. 봉. 큼큼. 형, 그만 마셔. 한 번에 다 먹을 거요? 좀 애껴 먹어야지. 큼큼.”

“어, 시원하다.”

국물을 꿀꺽꿀꺽 넘기는 그의 목젖이 출렁거렸다. 담배를 바닥에다 비벼 끈 만수 형이 다시 턱짓으로 사내를 가리켰다.

“이 형 이름이 뭔지 알아? 파란만장이야. 파란만장. 큼큼.”

라면과 양주를 위 속에 가득 채우자마자 사내는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문 너머로 사라졌다. 만수형의 설명에 의하면, ‘만장’이라 불리는 사내는 대학을 졸업한 25살 이후로 전자대리점부터 술집까지 온갖 장사와 사업을 시도했으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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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야구장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얀 눈이 지붕마다 올라와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본 후에 나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파카를 벗었다. 눈이 묻은 방망이를 털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500원을 집어넣자 위잉 거리면서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공이 튀어나왔다. 나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맞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으니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공이 나왔을 때에도 헛스윙이었다. 예전에 공을 하나도 맞히지 못해 얼굴이 빨개진 이후로 한 번도 야구장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너무나 화가 나서였다.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왜 이렇게 공이 맞지 않는 것인가? 환전기로 돈을 바꾼 다음 다시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30번을 휘두를 동안 내가 맞힌 건 딱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방망이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스쳐간 볼이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동전으로 환전하고 있는데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가 왔다. 절묘한 타이밍에 나는 안도했다. 여자는 뒤에 남겨두고 남자는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깡, 하는 소리가 휘두를 때마다 울려 퍼졌다. 팔짱을 낀 채로 여자가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에 나는 약간 수치심을 느꼈다. 홀로 서 있는 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벗어나 문 닫힌 상가들이 즐비한 재래시장으로 들어섰다. 을씨년스러운 내부는 음식물의 공급이 끊어져 텅 비어버린 위장 같았다. 꼬르륵 소리처럼 몰아치는 바람이 거무칙칙한 셔터들을 덜컹덜컹 뒤흔들었다. 목적지까지 당도했다는 생각이 들자 입사면접을 보러 가는 것처럼 심장이 고동쳤다. 시장 끝에 위치한 허름한 자판기에서 카푸치노 대신 뜨거운 맹물을 홀짝이면서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려진 자판기와 코를 킁킁거리는 검은 개 한 마리, 그리고 종이컵을 든 나만이 시장 안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자판기 옆의 좁고 가파른 계단에 걸터앉아 나는 담배를 물었다. 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되돌리고픈 충동이 생길 때마다 빵집과 야구장만큼의 거리 사이에서 나는 대뇌었다. 그렇다면 왜 여기까지 온 것인가. 또 다시 동창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고서? 그것도 얼마간은 사실이겠지만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해가 짧아 이미 주위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온 몸에서 시커먼 피가 몸속에 도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도 사라져서 시멘트 바닥에다 담배를 비벼 끄고 나서도 의식을 텅 비운 채로 나는 한참이나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털보과장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간 건 그런 와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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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정리중인 주인은 50대 중반의 머리가 희끗한 사내였다. 그를 따라 나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실내의 라디오 소리처럼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가죽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빵의 진열대를 훑어보는 사이 주인의 뒷모습을 몇번이나 흘끔거렸으나 그때의 주인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클라인구티라는 독특한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곧 이어 부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여성이 아기를 업은 채 들어섰다. 피자조각처럼 판매되는 고구마쇼트케이크를 하나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은 후 빵이 봉지에 담겨지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주인 안 바뀌신 거죠?”
“예. 예. 그대롭니다. 여기 500원 있습니다.”
나에게 거스름돈으로 건네주며 두 손을 맞잡은 주인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3년 전에 이 근처에 살았었거든요. 이사한지가 벌써 3년이 되었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는데 아직 있네요.”
“아, 그러셨군요. 하하. 3년 전이라······.”
나도 모르게 불쑥 3년 전이란 거짓말이 나왔다. 10년 전이라고 했다가 ‘오픈’한지가 5년 전인데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등 뒤에서 서성이던 부인이 그때 끼어들었다.
“우리는 여기, 20년이 훨씬 넘었어요······.”
잠시 추억에 빠져든 중년 부부를 뒤로 하고 밖을 나오자 나에게로 어떤 확신이 찾아들었다. 기둥처럼 이곳을 지키는 빵 가게 주인처럼 그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는. 찢어질듯 펄럭이는 광고현수막처럼 나의 머릿속은 온갖 상념으로 뒤척이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면서 주문 전화를 받는 아주머니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우리들은 항상 바빴다. 감색 추리닝에 항상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배달을 다녔고, 오토바이로 내리막길을 달리다 넘어졌으나 기적적으로 부상을 당하지 않은 일과 배달주소를 확인하고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배달상자 안의 치킨이 감쪽같이 사라진 황당한 사건을, 조금 늦었을 뿐인데도 불같이 화를 내던 괴상한 아주머니의 불퉁한 얼굴과 망치바람을 맞으며 나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오토바이의 떨림이 두서없이 떠올라 엇갈렸다. 그물망처럼 얽힌 기억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십이요. ‘이십’ 번지라는 뜻인지 ‘이십이’라는 뜻인지 몰라 두 군대 다 다녀와야 했던 경험, 주인아주머니가 매일 입던 비닐바지, 치킨을 배달하다 말고 붕어빵을 사 먹으러 멀리까지 원정을 갔던 일, 그리고 치킨을 배달한 수백 개의 가정들. 살갗을 도려내는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 집집마다 배달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젖힐 때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집안의 냄새를. 달짝지근한, 새콤한, 비릿한, 눅눅한, 뾰족한, 차가운, 서늘한, 매캐함과 함께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명멸하던 주인아저씨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상한 들뜸 때문이었을까. 나의 기분이 조금 전의 들뜬 상태와는 달리 저하되어 있었다. 10대였던 그 당시 나는 어떠했던가. 개업 4개월째인 어수선한 분위기와 주인아저씨의 착한 심성을 이용해 저지른 고약한 짓들 중 전단지를 도맡았던 1주일의 기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전단지 대부분을 하수구에 처박고서 남아도는 시간의 반은 책방의 무협지에 반납하고, 나머지 시간엔 여기저기 관광 삼아 돌아다닌 뒤 아저씨에게서 하루 일당으로 7만원을 꼬박꼬박 받아갔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우연히 설날이 포함된 지극히 짧았던 2개월의 근무 기간 동안에 주인아저씨는 나의 표면적인 성실함을 믿었다. 시장 야채 배달, 편의점, 자장면과 신문 배달, 노래방, 당구장의 비누, 칫솔, 치약, 샴푸 와 린스로 구성된 선물 세트처럼 수많은 일을 거치면서 명절에 종이가방에 선물세트를 넣어 준 사장으로써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는 것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만둔다는 자각도 없이 나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5년 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 그곳으로 일하러 가는 중인가. 파카 안에다 야광조끼를 껴입은 건 지하철 화장실에 들렀을 때였다. 가방에서 꺼내 입은 95사이즈의 조끼는 정확히 내 몸의 크기에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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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에 착용하는 야광조끼를 그날 집으로 가져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무표정하게 코미디 프로에 빠진 누나를 뒤로하고 동네 가게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소파 위에 올려다놓고, 화장실 거울과 마주선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런 일이 간혹 있었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조끼 위에 두툼한 파카를 껴입어버리는 겨울에는 실수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싸움의 발단은 나였다. 당장 비디오를 봐야겠다고 다짜고짜 우겼다. 언성을 높이며 얼굴이 붉어진 누나에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찬물처럼 달려들었다. 재생과 정지가 각각 반복되는 동안 점차 높아진 언성은 서로에게 무차별적 비난을 가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어느 새 나는 어둠으로 한적한 대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뛰면 뛸수록 가로등의 불빛과 그 사이로 흘러가는 건물 간판의 글자들이 뿌옇게 어룽져갔다.
가출이라고 해봐야 겨우 하루였다. 기분 내키는 지점을 버스에서 내려 게임방과 찜질방을 전전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불안이 엄습한 데에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보다 무단결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더 컸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어둑해진 사위 같은 검은 비닐봉지를 나는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찐만두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오징어 덮밥이 점차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을까봐서이기도 했지만 누나가 나서기 전 서둘러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발걸음은 가위질처럼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사당역에 도착 할 즈음에야 나는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길게 가다듬었다. 갑갑함이 완전 연소될 정도로 충분히 뛴 것 같았다.
원래 하차해야 할 정거장에서 세 코스나 앞선 서초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낯설었던 거리도 이제 사당역의 사거리의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완전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의 건물들도 그대로였고, 간간이 배달을 갔던 모텔. 신호등 앞의 뽀끌레 미용실도 거기에 있었다. 직진하여 건물들의 간판이 모조리 눈에 익었다. 새로 들어선 곳도 꽤 있었다. 이동통신 대리점이 커다란 바람에 따라 입구에 놓인 거대한 사람 모양의 풍선이 신이 난 듯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해가 지났어도 이 모든 광경들이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익숙함의 중심에 놓인 클라인구티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탁탁 털고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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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나자 졸음이 몰려나 나는 다시 눈을 붙였다. 눈을 뜨자 오후 5시가 막 지나고 있었는데, 몸이 여전히 무거웠다.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밖을 나서자 사위가 약간 어둑해져가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가벼운 것들이 끊임없이 부유하는 날씨가 며칠 째 이어지고 있었다. 눈이 꽁꽁 얼어붙은 빙판을 주의하며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날아가지 않도록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예상대로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항상 그렇듯 환승한 2호선은 더욱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어깨를 바싹 쪼그리고 가까스로 자리를 잡아 거치적거리는 긴 우산을 머리 위 선반에 올려놓았다. 칡덩굴처럼 엉킨 사람들 틈에서 나는 검게 그을린 군인 한 명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작대기가 세 개로 상병인 건 확실했으나 휴가인지 복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투기 시작한 두 여중생을 향한 그의 시선이 병역면제로 굴러가려던 나의 상념을 밀어내었다. 의자 끄트머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도 여자애들을 바라보았다. 여중생들은 ‘척’과 ‘딱’의 앞 뒤 순서를 두고 누가 옳은지를 과장하여 다투는 중이었다.

나 또한 곰곰이 생각해봐도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릴 따름이었다. 어쩌면 철성모와 청설모처럼 둘 다 옳은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누군가와 다툰 기억이 설핏 떠올랐던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뻥 뚫려버린 가운데로 치받는 황소바람이 나와 주위 사람들을 화들짝 덮쳤다. 벌써 5코스나 지난 터였다. 열렸던 문이 닫히자 전철은 뒤뚱거리며 다음 역으로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뒷주머니에서 드르르 울린 휴대전화의 진동에 진저리치며 나는 눈을 떴다. 졸음이 쏟아져서인지 몸이 으스스했다.

두 달 전 즈음에 통화한 점장이었다. 무언가를 우물우물 먹는 소리로 이번에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생긴 거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 혀를 끌끌 차면서 점장이 쏘아붙였다.

“뭐시기? 일은 무슨. 이 새끼, 핸드폰 꺼져있거덩. 어제부터 연락을 했는데 하루 종일 꺼 놨어. 어제 월급날이었거덩. 월급일 다음 날 안 나오는 새끼들은 모두 짼 거거덩. 십대여서 처음부터 찝찝하긴 했는데. 또 당했네 또 당했어. 하여튼 불신시대가 아니라 불신씹대야 불신씹대. 진영아. 어떻게 땜빵 안 되남? 이번만 야간에 좀 해줘이. 진짜 너 밖에 없어. 내 마음 알지?”

“좀 생각해 볼게요······.” 나는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바꿔 쥐었다. 이상하게도 점장의 부탁은 거절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때문이기도 했다.

“됩니꺼, 안 됩니꺼?”

“아마도······.” 아마도, 안 될 거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흐지부지 말끝이 흐려졌다.

“아마는 무슨. 아마추어냐? 그렇게 계속 아마추어의 길을 갈 거냐?”

“······.”

“저녁 7시전까지 꼭 전화 줘이. 알았습니꺼? 근데, 요즘 뭐해?”

“그냥, 피씨 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확실히 점장의 명랑한 말투는 거절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전화는 끊어진 뒤였다. 야간 근무를 기정사실화한 점장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물쭈물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왜 그냥, 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말았는가. 왜 나는 당당히 성인 PC방이라고 말하지 못했는가. 검은 차창으로 짧게 치켜 올라간 머리카락 덕분에 강인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화가 난 듯도 한 사내가 비쳤다. 등 뒤로 머리칼을 기묘하게 기른 고등학생 세 명의 떠들썩한 모습이 나의 신경을 복권의 은박인 양 긁어대고 있었다. ‘다음기회에’ 혹은 ‘꽝’일 것이다. 날 선 가위로 그들의 갈색 머리카락을 모조리 스포츠형으로 단정히 다듬어준 다음 거꾸로 매달아 채찍을 가하고 싶은 충동이 일순간 내 가슴을 툭툭 치고 사과 없이 지나갔다. 갑작스레 빠져나간 인파들로 텅 비어버린 주위를 둘러보다 나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보호석’이라 적힌 좌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백발의 노인이 쭈글쭈글 다가와 젊은 놈이 왜 거기에 앉아 있느냐고 다그칠 경우 멱살을 잡아 건방지고 퉁명스레 대꾸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급격히 팽창해온 방광 때문에 나는 아랫배를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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