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에 착용하는 야광조끼를 그날 집으로 가져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무표정하게 코미디 프로에 빠진 누나를 뒤로하고 동네 가게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소파 위에 올려다놓고, 화장실 거울과 마주선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런 일이 간혹 있었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조끼 위에 두툼한 파카를 껴입어버리는 겨울에는 실수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싸움의 발단은 나였다. 당장 비디오를 봐야겠다고 다짜고짜 우겼다. 언성을 높이며 얼굴이 붉어진 누나에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찬물처럼 달려들었다. 재생과 정지가 각각 반복되는 동안 점차 높아진 언성은 서로에게 무차별적 비난을 가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어느 새 나는 어둠으로 한적한 대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뛰면 뛸수록 가로등의 불빛과 그 사이로 흘러가는 건물 간판의 글자들이 뿌옇게 어룽져갔다.
가출이라고 해봐야 겨우 하루였다. 기분 내키는 지점을 버스에서 내려 게임방과 찜질방을 전전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불안이 엄습한 데에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보다 무단결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더 컸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어둑해진 사위 같은 검은 비닐봉지를 나는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찐만두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오징어 덮밥이 점차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을까봐서이기도 했지만 누나가 나서기 전 서둘러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발걸음은 가위질처럼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사당역에 도착 할 즈음에야 나는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길게 가다듬었다. 갑갑함이 완전 연소될 정도로 충분히 뛴 것 같았다.
원래 하차해야 할 정거장에서 세 코스나 앞선 서초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낯설었던 거리도 이제 사당역의 사거리의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완전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의 건물들도 그대로였고, 간간이 배달을 갔던 모텔. 신호등 앞의 뽀끌레 미용실도 거기에 있었다. 직진하여 건물들의 간판이 모조리 눈에 익었다. 새로 들어선 곳도 꽤 있었다. 이동통신 대리점이 커다란 바람에 따라 입구에 놓인 거대한 사람 모양의 풍선이 신이 난 듯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해가 지났어도 이 모든 광경들이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익숙함의 중심에 놓인 클라인구티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탁탁 털고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