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야구장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얀 눈이 지붕마다 올라와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본 후에 나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파카를 벗었다. 눈이 묻은 방망이를 털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500원을 집어넣자 위잉 거리면서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공이 튀어나왔다. 나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맞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으니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공이 나왔을 때에도 헛스윙이었다. 예전에 공을 하나도 맞히지 못해 얼굴이 빨개진 이후로 한 번도 야구장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너무나 화가 나서였다.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왜 이렇게 공이 맞지 않는 것인가? 환전기로 돈을 바꾼 다음 다시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30번을 휘두를 동안 내가 맞힌 건 딱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방망이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스쳐간 볼이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동전으로 환전하고 있는데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가 왔다. 절묘한 타이밍에 나는 안도했다. 여자는 뒤에 남겨두고 남자는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깡, 하는 소리가 휘두를 때마다 울려 퍼졌다. 팔짱을 낀 채로 여자가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에 나는 약간 수치심을 느꼈다. 홀로 서 있는 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벗어나 문 닫힌 상가들이 즐비한 재래시장으로 들어섰다. 을씨년스러운 내부는 음식물의 공급이 끊어져 텅 비어버린 위장 같았다. 꼬르륵 소리처럼 몰아치는 바람이 거무칙칙한 셔터들을 덜컹덜컹 뒤흔들었다. 목적지까지 당도했다는 생각이 들자 입사면접을 보러 가는 것처럼 심장이 고동쳤다. 시장 끝에 위치한 허름한 자판기에서 카푸치노 대신 뜨거운 맹물을 홀짝이면서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려진 자판기와 코를 킁킁거리는 검은 개 한 마리, 그리고 종이컵을 든 나만이 시장 안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자판기 옆의 좁고 가파른 계단에 걸터앉아 나는 담배를 물었다. 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되돌리고픈 충동이 생길 때마다 빵집과 야구장만큼의 거리 사이에서 나는 대뇌었다. 그렇다면 왜 여기까지 온 것인가. 또 다시 동창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고서? 그것도 얼마간은 사실이겠지만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해가 짧아 이미 주위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온 몸에서 시커먼 피가 몸속에 도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도 사라져서 시멘트 바닥에다 담배를 비벼 끄고 나서도 의식을 텅 비운 채로 나는 한참이나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털보과장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간 건 그런 와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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