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김경선 지음 / 머메이드 / 2022년 2월
평점 :
절판



에메랄드빛 바다, 눈부신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커피 한 잔 그리고 책,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있는 느낌적 느낌,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도 좋을 평화로운 오후, 책 표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지만, 지금도 성장 중인 어른들에게 건네는 성장 에세이' 띠지에 나온 문장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은 건 왜 일까요?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는 엄마이자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서툰 초보 작가에서 20년 경력의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동안 경험으로 터득한 글쓰기와 작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도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1부 서툰 시작, 살랑대는 희망 '', 2부 뜨거운 태양 아래, 쌉쌀달콤한 인생 '여름', 3부 익어가는 열매, 익어가는 마음 '가을', 4부 찬바람에 끄떡없는 뿌리 깊은 나무 '겨울'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엄마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서툴지만 희망을 꿈꾸는 봄부터 성숙해지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에 빗대어 담아내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시작인들 다를까.

시작은 늘 그렇게 한 발짝부터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발을 떼는 것.

시작은 그런 것이다.

미미해 보여도 용기를 낸 것이니 박수받아 마땅한.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자 또한 처음 쓴 동화에 대해 평가인 듯 평가 아닌 평가를 받으며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요. "어린이 책의 글은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왜 그런 말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좋은 글이 되도록 쓴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썼으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블로그나 브런치 등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글을 쓸 때,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읽는 사람이 시시하다고 생각"할까봐 "복잡한 정보로 글을 가득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생각할수록 진리였다. 글쓰기가 일단 시작되고, 시작이 잘 풀리면 한동안 술술 써지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시작'이 잘되지 않으면 한참을 고전한다. 첫 문장을 고민하는 건 내 주변 많은 작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p. 98

 

 

저자는 어디까지 써야 할지에 대한 목표를 정한 후, "자신을 어르고 달래가며 쓰다 보면 탈고의 순간을 맞이한다'고 말하며 '글쓰기 단계'에 대한 팁을 친절하게 첨부해 두었는데요. 저자의 글쓰기 경험이 녹아든 꿀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로 저자의 글쓰기는 늘 아이와 함께였다고 하는데요. 아이를 통해 공룡에 대한 관심이 생긴 저자는 결국엔 공룡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한 글쓰기는 아이의 친구들, 조카들, 그리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까지 넓혀져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고, 그 경험들이 글의 소재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의 말이나 생각, 누군가에게서 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동화를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들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쓴 동화를 읽는 아이들은 동화속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다보니' 작가가 되었다는 저자의 '작가 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 들려줄 순 없지만, 무엇보다 일단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글'을 일단 써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꾸만 써보다 보면 자신만의 루틴이 만들어지고, 자신만의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이지만 동시에 엄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는데요. 저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은 일들이 책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 그 일들은 누군가의 삶에서도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일들이기도 하다는 것, 무엇보다 그 경험들을 글로 옮겨 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 몇 개의 문장들을 공유할까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 내게는 네 개의 메달이 생겼다.

,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메달.

나는 네 개의 메달을 목에 건 4관왕이다.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p. 67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걸기 힘든 메달을 4개씩이나 목에 건, 무려 4관왕의 영예를 누리게 되지만, 목에 건 개수만큼이나 무거워지는 메달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기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계급 같은 며느리라는 메달은 네 개의 메달 중 심리적으로 가장 버거운 것이었다."는 저자의 말은 "너만 그런 건 아니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 같아서 특히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 아이에게 넘어질 기회를 주었다면 지금쯤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스케이트를 혼자 탈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스케이트를 잘 타는 아저씨는 아이를 돌본다는 생각에 그 기회를 막고 있었다. 나도 아저씨처럼 아이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밀려왔다. 무엇이든 척척해주는 만능 엄마라고 내심 자부했는데 내가 아이의 성장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이었다.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p. 179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맞아, 나도 그랬었지!'하고 말할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랬을지라도 내 아이만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고자 한 것이 아이가 직접 경험한 후에 스스로 깨닫고 너 나은 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 알면서도 문득 문득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꿈오리 한줄평은 글쓰기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책속 문장 '존버의 위대함'으로 대신합니다.

 

모든 것은 존버였다.

버텨야 넘어지지 않고

버텨야 앞으로 나아갔다.

버티는 것, 버텨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였다.

'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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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햇살어린이문학 1
강무홍 지음, 한수임 그림 / 햇살과나무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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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떠오릅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봤던 영화 '집으로'도 생각나구요. 집은 단순히 머무르는 공간 이상의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집에는 함께 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우리의 둥지인 집에는 고단한 하루를 보낸 우리가 쉴 수 있는 방과 따뜻한 잠자리,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은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우리가 다툴 수 있는 것도 함께 살고 있기에 누리는 행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가의 말' ~

 

 

이 책의 저자 이름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났습니다. 바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깊은 밤 부엌에서' 등을 우리말로 옮긴 분이셨습니다. 저자는 '까만 나라 노란 추장', '깡딱지', '까불지 마!',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등의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었습니다. "환한 햇빛과 먹구름, 비와 바람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작가님, '집으로'에는 그런 유년 시절의 순수함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집으로'는 조손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상처받지만 어린 동생과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한수의 집 '비탈', 심부름 갔다 오는 순이에게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가 있는 순이의 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삶에 지칠 때마다 떠오르는 '', 그리고 엄마와 언니와의 추억이 있는 동이의 집 '나의 잠자리 붕', 심부름을 간 돌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있는 집 '집으로' 등 모두 네 개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것입니다,"라는 제인 구달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작가가 되어 어린이책을 쓰고 있다"는 작가 소개를 떠올리게 하는 '아기 너구리가 돌아가야 할 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네 개의 단편 중 어쩌면 지금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 '비탈'속의 한수네 집을 찾아가 봅니다.

 

그냥 할머니더러 한 번 다녀가시라는 건데, 울긴 왜 우니? 그리고 네가 훔치지 않았다면, 할머니한테 말씀을 못 드릴 이유가 어딨어? '집으로' p.12

 

 

한수네 반 친구가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선생님 앞에 선 한수는 눈물만 훔칠 뿐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모으러 다니는 할머니, 어린 동생과 한수와 함께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야 할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날마다 비탈길을 오르시는데, 어떻게 학교에 오시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까요? 절대 도둑이 아님에도 도둑으로 취급받은 손자의 모습을 보는 할머니의 심정은 또 어떨까요? 억울함 보다 더 깊은 서러움에 한수는 눈물만 흘립니다.

 

원래 이런 애들 받으면 골치는 골치대로 썩고 고생한 티도 안 난다니까. 그냥 재수 없다 생각해요. '집으로' p.17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을까요?

이런 아이들이란 어떤 아이들인 걸까요?

이런 아이들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요?

 

할머니와 산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늘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로 낙인찍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결손 가정의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어른들, 그럼에도 한수는 선생님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잣대가 선생님에게만은 없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한수는 선생님에게 "재수 없음"을 주는 존재가 절대 아닌데, 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한수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런데 반장인 찬호까지 한수를 도둑으로 몰아갑니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설명하라며, 급기야 "도둑놈!"이라 말하는 찬호, 한수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교문을 빠져나가는 한수의 뒤로 "찬호의 일그러진 얼굴, 흥건한 피, 놀란 아이들의 비명이, 선생님이 불같이 야단치는 모습"이 따라옵니다.

 

하필 친구가 돈을 잃어버린 날에 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 그래서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리게 된 한수, 만약 한수의 처지가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한수는 그 돈을 어디서 받았는지 왜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을까요?

 

커다란 집에서, , 아주아주 커다란 집에서....,

할머니하고 보라하고 나하고......,

아주아주 행복하게.....,

'집으로' p.34

 

하늘을 물들인 아름다운 노을과 별 하나, 힘들게 손수레를 밀고 올라온 비탈길 꼭대기, 한수는 할머니, 동생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꿉니다.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슬픔이 다 마른 자리에 환한 웃음이 피어날 날이 오기를, 할머니, 동생 보라와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기를......, "할머니와 보라와 커다란 집에서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한수의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할머니와 동생 보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고, 또 어딘가를 가더라도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수처럼 힘들 때 생각나는 가족이 있다는 것, 한수에게 '''함께 할 수 있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수가 바라는 일들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 : 식구들이 한 지붕 아래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먹는 곳, 힘들 때 생각나고 힘이 되어 주는 가족이 있는 곳, 공간의 크기보다 따뜻한 체온이 있어 더 좋은 곳, 어디를 가더라도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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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까는 여자들 -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
신민주.노서영.로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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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과 차악만을 던져주는 사회에서 20대 여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판을 까는 여자들' ~

 

 

이대녀? 이대남? 이대 나온 여자와 이대 나온 남자? 작년에 '이대남'이라는 말을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이대 나온 남자를 말함인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 20대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후 '이대녀'도 등장했고, 그들은 제더 갈등으로 이슈화되어 다양한 매체에 오르내렸습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도 이대녀와 이대남은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슈화되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세대 갈등 뿐 아니라 젠더 갈등 또한 극과 극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20대들이 스스로 자신은 이대녀, 이대남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20대는 그냥 20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대가 다르기도 하지만, 가까이 지내는 20대들 중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극과 극에서 젠더 갈등을 겪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판을 까는 여자들'90년대생 이대녀인 신민주, 노서영, 로라가 들려주는 이대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1'이대녀로 산다는 것', 2'백래시에 맞서다', 3'우리가 가진 이름으로' 까지 모두의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회 보좌관은 왜 다 중년 남성일까, 이대녀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 이대녀가 트위터로 향한 이유, 남초 사이트에서 '공정한 여론' 찾기, 코로나 시대의 자발적 실업자, N번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여학생회를 폐지시킨 권력, 원피스와 탈코르셋 등등 이대녀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현안과 그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녀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기는 했어도 이대녀와 이대남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질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굳이 이대녀와 이대남으로 호명하며 성별 갈라치기를 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구절판 행사들을 견디기 싫어졌을 때, 세 명의 '이대녀'는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구절판은 음식 아닌가? '구절판을 걷어찰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구절판 행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구절판 행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특정한 이슈에 대한 토론회에 온통 남성 패널을 부르고, 여성을 구색 맞추기로 딱 한 명만 섭외하는 행사. 구절판은 팔각으로 된 나무 그릇 가운데에 밀전병을 두고 주변에 오색찬란한 반찬을 까는 음식이다. 구절판 행사라는 말은 어느 날 한 여성 친구가 줌(zoom)으로 진행하는 토론회에 발제자로 섭외됐을 때의 상황이 기원이 되었다. 그날 행사에도 여성 발제자는 친구 외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토론회가 시작되자 줌 화면은 친구 주위에 남성 발제자 8명이 배치된 모습이 되었다. 마치 구절판처럼. p.5

 

 

이렇게 구절판 행사들에 오르내리던 그녀들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대녀'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대남의 표를 잡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면서 이대녀는 또 잊혀져 가기 시작"합니다. 저자들은 "모든 이대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이대녀들이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더 많은 결정권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또한 "나이와 성별보다는 역사와 목표, 노력과 결실이 이대녀를 설명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지만, 모두 다 담아낼 순 없기에, 공감 가는 이야기와 인상적인 이야기들 중 몇 가지만 공유할까 합니다. 글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합니다.

 

"민지한테 연락이 왔어."

(중략)

그러니까, 이 영상에서 '민지'는 민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MZ세대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중략)

내 동년배들은 아무도 자신을 MZ세대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래퍼 이영지가 <라디오스타>에 나와 말했던 것처럼 청년 세대는 MZ세대라는 말을 "알파벳 계보를 이어가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정도로 파악한다. 끊임없이 알파벳으로 청년 세대를 분석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모자라 정치인들은 우스꽝스러운 청년 세대 캐릭터까지 시도하기 시작했다. P.43~44

 

 

분명한 것은 언제나 내 삶을 바꿨던 것은 최악과 차악 중에 선택을 강요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여성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거부했던 순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중략)

그러니까 나는, 당신은, 그리고 이대녀는 앞으로의 선거에서 표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숫자로만 표현되는 인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대변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기회는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연단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p.50~51

 

 

어머니라는 말은 여성의 이름을 지웠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로 불리는 동안 여성은 자신을 위한 시간과 자원을 잃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포용적인 이미지를 표시하기 위해 손쉽게 사용되기 십상이었고, 그럴수록 여성에게 요구되는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희생이 아름다운 것이 되는 순간, 희생하는 주체의 행복은 멀어진다. p.83

 

 

정치인들은 수많은 이대녀들이 쏟아낸 말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N번방 사건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명의 서명을 받은 후에도 국회의원들은 망언을 쏟아냈다. (중략)

딥페이크(deepfake)를 이용한 범죄와 N번방 사건을 구분하지 못하는 의원들 덕분에 법 개정은 형편없이 이루어졌고 이는 더 큰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p.96~97

 

 

2020년 제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위원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간 순간,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논란이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전까지 아무도 화려한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한 적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라고 하기엔 그에게 쏟아진 말들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다. "국회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체통을 지켜라.", "술집 여자 같다."라는 말들과 함께 온갖 성희롱적 언사와 '관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그 모든 언행이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중략)

국회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지인가 원피스인가는 다르지만 분명 그 두 시대는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여성 의원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먼저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겪는 일들은 이 세상에서 수많은 여성이 겪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p.171~173

 

 

기성세대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치를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중략) 그 정치가 포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 정치를 신뢰할 수 있을까? (중략) 정치가 가장 고통받고 있는 가장 약한 개인을 외면한다면 진보고 보수고 무슨 소용일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50대 정치인들은 혀를 찰 것이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낸 현실에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나의 현실이 있다. 그리고 나의 현실에서 성평등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과 가장 가까운 정치다. P. 201~202

 

 

에필로그에는 저자들이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가장 쓰고 싶었거나 어려웠던 글은 무엇이었는지, 책이 출간되고 나면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요. 저자들은 책이 출간되고 나면 '악플'이 달린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글에 대한 것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직도 할 말이 많음을 이야기 합니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이대녀들의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어떤 분이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썼기 때문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면 공감을 하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고, 모르는 내용이었다면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네요.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도 있고, 우리 같은 정치가 있다는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

'에필로그 인터뷰' ~

 

 

이 말은 로라 작가의 말입니다.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대녀, 이대남이라 호명하면서 성별 갈라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젠더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이대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기를,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고 생각해 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꿈오리 한줄평 :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20'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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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할 말이 있어요 정원 그림책 12
안 루와이에 지음, 레일라 브리앙 그림, 이승재 옮김 / 봄의정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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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대통령과 자유분방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대통령님, 할 말이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유추해 보면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은 대통령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요즘 가장 핫한 뉴스는 대통령 선거에 관한 것입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도 전교생 투표를 통해 회장을 뽑을 것입니다. 회장 후보로 나온 아이들의 공약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것, 아이들의 복지와 관련된 것들로 대부분 실현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우리 때와는 달리 정치에도 관심이 있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밝아 보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도 있겠지요?


타오와 말릭 그리고 플로라는 깔끔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준비한 자료를 챙겨서 대통령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과 약속을 하기엔 너무 어리다며 경비병들이 들여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희도 뭘 알 만큼 다 컸거든요. 말을 할 줄 아니까 당연히 생각도 할 줄 알죠. 멋진 아이디어까지 있다고요! '대통령님, 할 말이 있어요' ~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드디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게 된 세 친구, 당황한 대통령은 무슨 일로 집무실까지 온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새로운 일을 할 부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서?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부서가 너무 많은걸! 게다가 말썽을 일으키고, 나라 살림을 잘 못하거나 환경 오염을 막지 못하고, 국민들을 차별하는 부서도 있어. 정의롭지 못하고, 일을 게을리 하는 부서도 있지. '대통령님, 할 말이 있어요' ~

 

 

대통령은 무척이나 지치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많은 부서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아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부서란 어떤 곳인지, 그 부서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말합니다.

 

문도 없고, 천장도 없고, 벽도 없고, 국경도 없는, 언제나 열려 있는 부서, 아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부서는 어떤 부서일까요?

대통령은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까요?

 

꿈의 씨앗을 뿌리세요. 그리고 거두세요.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면 대통령님은 훨씬 더 가벼워질 거예요.

'대통령님, 할 말이 있어요' ~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대통령과 한없이 밝고 활발해 보이는 아이들, 꿈보다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대통령과 밝은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 현재를 살아가는 대통령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과 함께 밝은 희망을 꿈꾸게 될까요?

 

, 책속에는 플로라, 말릭 그리고 타오를 따라다니는 세 마리 새가 나오는데요. 그 새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있답니다. 만약 새가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책속에 등장하는 새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꿈오리 한줄평 : 밝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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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슬라의 꿈 I LOVE 그림책
세실 루미기에르 지음, 시모네 레아 그림, 이지수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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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강렬한 표지 그림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구름을 타고 둥글고 노란 무언가를 응시하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듯한 그림은 몽환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나슬라의 꿈'이란 제목으로 유추해 보면 둥글고 노란 무언가는 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지금 깜깜한 밤하늘을 날아 꿈나라를 여행 중인 걸까요?


잠이 오지 않는 나슬라, 그때 장롱 위에서 나슬라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답니다. 노란색 눈밖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말이죠. 혹시 나슬라가 안고 자던 거북이 인형 시빌일까요? 나슬라는 자신이 인형을 안고 자기에는 너무 커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문에 아빠는 시빌과 다른 인형들을 모두 옷장 위로 치웠답니다.

 

하지만 인형들은 저런 눈으로 나슬라를 바라볼 리가 없습니다. 누구일까요? 나슬라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노래라도 부르면 좋겠지만, 밤에는 자야 하니까 노래를 부를 순 없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자야 하니까 말을 할 수도 놀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노란 눈이 나슬라의 인형들이 아니라면?

혹시 유령? 대왕오징어? 외계인?

긴 다리가 뻗어 나와 나슬라를 집어삼키는 건 아닐까요?

걱정과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갑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때 나슬라가 무언가를 꺼내 듭니다. 그건 바로, 무엇이든 물리칠 수 있는 엄청난 무기였지요.


노란 눈을 감기고, 코끼리의 코를 막고, 유령의 기다란 팔과 괴상한 숨소리를 쫓을 수 있는 무기요. 분노한 거북이의 공격도 막아 줄, 그런 무기요!

'나슬라의 꿈' ~

 

 

나슬라는 꿈속에서 장난감들의 정글에 가게 되는데요. 그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었지만, 이 장면에선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나슬라도 맥스처럼 장난감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고, 나무를 기어오르며 놀지는 않았을까요?

 

나슬라가 잠든 후, 노란 눈을 가진 누군가가 옷장 위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는 거북이 인형에게 윙크를 하고 방을 나섰지요. 나슬라는 모르는 누군가가...,

 

나슬라에게 무적의 힘을 주는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노란색의 눈을 가진 누군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혼자 자려고 침대에 누운 나슬라는 옷장 위에 있는 노란색의 눈을 가진 누군가를 보고 자신의 인형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유령이나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긴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요. 그럼에도 나슬라는 밤에는 자야하니까,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하거나 춤을 출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나슬라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듭니다. 그리고 장난감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꿈나라로 갑니다. 현실인 듯 꿈인 듯한 경험을 통해 나슬라는 혼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또 성장해 갑니다. '나슬라의 꿈'은 잠자리 독립을 할 때 읽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애착 물건이 있다면 더 좋겠지요?

 

꿈오리 한줄평 : 나슬라는 혼자서도 잘 자요! 나슬라에겐 무적의 무기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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