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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사냥 -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ㅣ 샘터어린이문고 67
김송순 지음, 한용욱 그림 / 샘터사 / 2022년 4월
평점 :

푸른 눈빛과 하얀 털, 걸어가는 모습까지 신비한 영물이라는 느낌을 주는 백호, 백호는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를 상징하는 수호신 중의 하나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대표되는 사신도에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백호 사냥'에 등장하는 백호 또한 그런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백호 사냥'은 일제강점기 만주 땅으로 이주하여 정암촌이라는 마을을 이루고 정착하여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일제의 강압과 수탈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2000년 가을 신문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고, 사진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60여 년 만에 이루어진 정암촌 1세대의 고향 방문', 그 사진 속에는 '백호 사냥'에 등장하는 열두 살 성호와 범국이, 미선이가 서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떠났던 고향을 노인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지요. 그때는 고향에 돌아오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왜놈들이 우리 집 땅을 다 뺏어 가고는 뭐라고 꼬드겼는지 알어? 만주에 가믄 살 집두 마련되어 있구 농사지을 기름진 땅이 무진장 넓다는 거여. 거기 가서 딱 삼년만 고생하믄 이사하느라 빌린 돈 다 갚구,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말에 우리가 혹한 거지.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여기 만주에 와 보니까 집 한 칸 없는 돌투성이 땅만 우리를 기다리구 있었다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움집을 짓구 살었잖어. 우리를 사람 취급했으믄 이런 곳으로 끌구 왔겄냐? 우리를 짐승만두 못하게 생각한 거지. p.31

일제의 간계에 속아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들, 그곳에 도착한 후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온갖 명목을 들어 수탈을 일삼는 일본인들, 그럼에도 고향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려 애쓰며 살아간 사람들, 그들 중 해방 후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가족들을 기다리느라, 돌아갈 여비가 없어서, 힘들게 일구어 놓은 땅을 포기할 수 없어서...,
5년 전, 기차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올 때만 해도 삼년 만 고생하면 빚도 갚고 돈을 벌어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농사 지은 것들 마저도 대부분 공출로 빼앗기다 보니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향에서처럼 벼농사를 짓는다면 공출부터 끼니, 그리고 돈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정암촌 사람들,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하러 산에 간 성호는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산에서 조선 사람 만나믄 꼭 도와줘야 혀." 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 성호는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동굴에 숨겨준 후, 어른들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토굴로 데려오는데요. 총에 맞은 사람은 성호도 아는 같은 고향 사람 찬규 형이었습니다. 찬규 형은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백호가 우리 대신 분풀이를 해 준 거여. 곡식 자루만 나뒹굴어 있지 소는 건들지도 않은 걸 보면 알겄잖어. 백호는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산신령인 게 분명하다니까.
(중략)
백호를 절대루 건들믄 안 뎌! 백호가 우리 마을을 지켜 주고 있다는 거 명심하도록 혀!
p. 8~40
백호 털가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일본 순사는 포수인 미선이 아버지에게 백호를 잡아 달라고 합니다. 백호는 안 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지요. 그런데 정말 집채만 한 백호가 잡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백호, 그물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백호를 잡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물, 그렇다면 그물에 걸린 건 백호가 아니었을텐데, 그물에 걸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백호는 어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잡힐 위기에 처한 것일까요? 마을 사람들과 포수 아저씨가 백호를 잡고 있던 바로 그때, 성호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 일본 순사에게 절대 들켜선 안 되는 막중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호는 그 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요?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백호와 성호가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호네 집에 일본 순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성호 형 용호와 포수 아저씨 그리고 현태 형은 포승줄에 묶여 구치감으로 끌려갑니다. 그들은 왜 구치감에 끌려가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새끼 백호도 자라면 영물이 될 거야, 그러면 우리 마을을 지켜 주겠지?
p.182

정암촌 사람들이 모를 심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그날을 기다리며..., 정암촌 사람들도 독립군이 된 동네 형들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그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백호 사냥'은 일제강점기 충청도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동화입니다. 일본의 간계로 고향을 떠나 만주 정암촌에 이주하여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일제의 강압과 수탈을 견디며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도 고향의 풍습을 잊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열두 살 성호와 범국이 그리고 미선이의 이야기입니다.
꿈오리 한줄평 : 일곱 살에 고향을 떠난 후 6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던 정암촌 사람들의 이야기,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