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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여우사냥
권영석 지음 / 파람북 / 2025년 8월
평점 :

1895년 10월 8일 새벽,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인 중전 민씨(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황후 명성황후)가 일본 군인과 특파기자들에 의해 살해됩니다. 바로 대한민국 근대사의 잔혹한 비극 중 하나인 을미사변입니다. 조선의 국모가 경복궁 옥호루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대중매체에서 명성황후를 미화한 측면도 있다는 말을 하는데요.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30년이 지난 2025년,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작전명 여우사냥>은 을미사변이 일어나던 그 해 10월 1일부터 암살 당일인 10월 8일까지의 일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담아낸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역사소설입니다. 무엇보다 고종과 중전 민씨의 모습은 현시점에서도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는 것인데요. 중전 민씨가 국왕인 고종보다 정사에 적극적이고 외교에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절로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은 고종의 무능과 중전 민씨의 사치심 때문이라는 것을 조선 백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진령군의 탐욕도 한몫했다. (중략)임오군란 이후 용산에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며 조선을 흡혈귀처럼 빨아먹었다. 작년 갑오왜란 이후에는 그 자리를 일본군이 차지했다. 조선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 군대가 한성에 주둔한 적은 없었다. 전부 중전마마와 진령군이 저지른 짓이야. 두 여인은 조선을 망하게 한 역사적 죄인이다. 권력욕 때문에 나라를 팔아넘긴 악녀들. 동학농민군들이 작년 봉기 때 세상을 바꿔 놓지 못한 것이 원통하구나. p.22~26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대참사였던 갑오왜란 이후, 일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때 일본 유학 중이던 이명재가 급거 귀국해 중전 민씨의 경호대장을 맡습니다. 그는 온건 개화파의 수장 민역익의 호위무사 출신으로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야욕을 직시하며,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외세의 간섭이 아닌 백성과 함께 자주적인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조선의 자주독립을 꿈꿉니다. 외국군을 불러들여 백성을 도륙하고 나라의 군사적 자주권을 내놓은 고종, 그 배후에 있는 중전 민씨와 민씨 척족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권력에 기생하는 홍계훈 같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다치 겐조 한성신보 사장은 호출을 받고 직감했다. '여우사냥' 작전 개시가 임박했다는 것을. (중략) 이번에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를. 여자도 보통 여자인가. 조선의 왕비를. p.39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 그는 '여우사냥'이 임박했음을 직감합니다. 한성신보가 연일 대원군과 중전 민씨의 불화설을 보도하며 여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중전의 암살 배후를 대원군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일본군이 조선 왕비를 암살한 사실이 드러나면 외교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간인들인 한성신보 특파기자들이 왕비를 암살한다는 것은 표면적일 뿐, 진짜 사냥꾼은 동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것으로 유명한 미야모토 소위였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인물로는 조선훈련대 대대장 우범선과 직속 부하 구연수 중대장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에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어느 누구도 중전 민씨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중전 민씨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인터뷰를 가장하여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요. 과연 중전 민씨는 인터뷰에 응하고, 사진을 찍을까요?
우리 중전마마는 더해. 앙투와네트보다, 서태후보다 더 사악한 여자야. 세계에서 가장 나쁜 여자야. p.88
이명재가 생각하는 문명개화는 백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중전 민씨는 궁 안에 전등만 들어오면 문명개화인줄 알며, 사치와 겉멋에 머무를 뿐이었습니다. 게이오의숙 동문인 유길준과 이명재도 조선의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전혀 달랐습니다. 유길준은 먼저 중전 민씨를 폐위시키자고 했고, 이명재는 일본의 손을 빌리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나라의 주인인 백성에게 권력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7일 밤 경복궁으로 쳐들어가면 되는 거죠? 8일 새벽 건천궁을 뒤집어 놓겠습니다. 시위대 병력이 경무청 본청으로 몰려가고 나면 경복궁은 무주공산이네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입니다. p.101
경무청 순검들이 훈련대 병사들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미우라 공사는 이를 역이용하여 "여우사냥을 일본의 내정간섭이 아니라 조선의 내란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며, 조선 왕실과 시위대 병사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은 다음 텅 빈 경복궁을 칠 계획을 세웁니다.
한편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는 여우사냥에 성공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정치 무대에 진출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나의 걸림돌이라면 중전 민씨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명재를 이용하여 중전 민씨와 인터뷰를 하고 얼굴을 확인하려 합니다. 이러한 때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명재가 사랑했던 여인 우메코였습니다. 아다치는 자신이 원한 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일본은 이웃나라 국모를 암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영원히 사과하지 않기로 했다.
p.281
<작전명 여우사냥>은 을미사변이 일어나던 그 해 10월 1일부터 암살 당일인 10월 8일까지의 일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담아낸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역사소설입니다. 무엇보다 고종과 중전 민씨의 모습은 현시점에서도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는 것인데요. 중전 민씨가 국왕인 고종보다 정사에 적극적이고 외교에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절로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덧붙이는 글 : <작전명 여우사냥>은 사실과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역사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종, 중전 민씨, 진령군, 유길준, 홍계훈, 일본인 특파기자 아다치 등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이며, 주인공인 이명재와 그의 첫사랑 우메코 등은 허구의 인물입니다. 또한 한성신보 일본 특파기자들의 범죄, 김홍집 내각의 붕괴, 아관파천 등은 역사적 사실이나, 지하 비밀동굴, 게이오의숙 동창생이라는 설정, 중전 민씨 얼굴을 확인하기 위한 시도, 우메코의 등장 등은 허구입니다.
꿈오리 한줄평 : 역사적 사실에 드라마적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이자 현시대를 투영하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