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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품절
첫 번째 소설을 읽고 뇌가 뻐근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억지로 쓴 듯, 낯설게 피로했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 소설은 아예 스쿼트 3세트를 강제로 시키더라. 힘들고, 버거운데, 결국엔 “우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책장은 쉬지 않고 넘어가길 반복했다.
나의 뇌고랑에 고랑을 하나 더 내는 기분이었다.
나는 단편을 안 좋아한다. 늘 뒷이야기를 갈망하는 바람에 단편은 늘 미완성처럼 보였다. 그런데 『멜론은 어쩌다』는 달랐다. 여덟 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고, 끝내 내가 원하던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결핍마저 만족스러웠다. 끝나는게 너무나 아쉬워 책장에 침을 묻여가며, 마지막 장이 아니길 바랬다.
진짜 체호프 단편선보다 훨씬 좋았다.(아직도 이 책이 왜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지 모름, 그냥 종이 잉크 묻힌.... 요즘 GPT도 그렇게 안쓸 듯,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너무 시간이 아까움)
체호프의 단편들이 습작처럼 느껴진다면,
아밀의 단편들은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낸 진짜배기만 모아둔 듯하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체호프 따위!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라지.
책장을 열지 마라. 반드시 모두 읽게 될 테니까.
슬프게 뜨거운 소설도 있고,
아름답게 아픈 소설도 있고,
멍하게 코끝이 찡해지는 소설도 있다.
웃다가도, 울컥하다가도, 다시 웃게 된다.
이 책의 핵심어를 뽑으라면 단연코 “균열”이다.
뱀파이어, 로봇, 유전자 조작 아이돌 같은 황당무계한 상상을 빌려 현실의 균열을 들춰낸다. 성별, 정체성, 규범과 자유, 차별 같은 주제가 비틀린 상상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유머로 가볍게 시작해도, 끝에는 묵직한 무언가, 깊은 파동에 마음이 몹시도 흔들렸다.
이렇게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소설. 그것도 단편이롸니!!
나는 한때 나도 상상력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앞에서 완패다.
내 상상력 따위는 애교도 후하다.
김초엽의 SF가 긴 여운을 남겼다면,
아밀의 작품은 또 다른 결로 내 머릿속과 가슴속을 뒤흔들었다.
책장을 여는 순간, 너의 시간은 이미 이 책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