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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여기, 한국을 관통하는 50개의 시선
김정인 외 지음, 백승헌 외 기획 / 사이드웨이 / 2025년 8월
평점 :
책은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사태를 윤석열이라는 특정 정치인의 결정에서 비롯된 불씨로 본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는 지점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미 그 이전부터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권위주의와 극우의 일상화,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엘리트와 시민 간의 간극이 사태를 가능케 한 토양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여러 학자와 활동가들이 정치, 역사, 경제, 외교, 극우, 시민운동, 헌정질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해부하며, 이를 예외적 사건이 아닌 반복될 수 있는 위기의 징후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성찰의 성과라 할 만하다.
읽는 동안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극우를 다루는 대목이었다. 특정 집단의 일시적 광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균열이 현실을 잠식해온 과정이 낱낱이 드러나는데, 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깊은 한숨과 슬픔을 자아낸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그 호칭은 어쩌면 인간이 결코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불편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은 더 세밀하게 파고들어 다시 확인시켜 주고, 몰랐던 현실은 선명히 드러내어 눈을 뜨게 만든다. 그 불편함 때문에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고, 덮기도 어렵다. 화를 내기보다, 혀를 차기보다, 결국 씁쓸한 웃음과 겹겹의 한숨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덕분에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다짐을 불러일으키고, 나만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 특히 아이들과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남긴다. 극우도, 윤씨도, 내란을 동조한 자들도 결국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부모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분노는 다시 인간의 조건을 묻는 씁쓸한 성찰로 바뀐다.
책은 권력과 제도의 작동 방식, 시민의 역할,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묻는 질문들을 집단적으로 던지며,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불편한 거울이다.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무거웠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지금 가장 필요한 감각임을 일깨우는 책이다.
정의는 더디다. 그러나 지치지 말아야 한다. 지치지 말고 반드시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단호한 결정과 처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