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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기술
케빈 애슈턴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모닥불에서 SNS까지. 불은 꺼졌는데, 태우는 건 여전하다.
과학책인데 인문학책처럼 읽었다. 읽는 내내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는 능력이 오늘날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이야기로 남기고, 이를 공유하며 협력하고 살아남았다. 모닥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림과 문자, 인쇄술을 거쳐 오늘날의 SNS에 이르렀다. 전달하는 기술은 달라졌지만, 이야기를 남기고 공유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여전하다.
그런데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전해 듣는 것은 실제 인간의 역사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까? 사관 역시 진짜 사실만 기록한 것일까?
인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 감정과 판단을 거쳐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결국 인간 자체가 하나의 필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진실 역시 누군가의 필터를 거쳐 남겨진 이야기가 아닐까. 사관도 마찬가지고.
나는 인간이 무엇이든 남기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전승이든, 기록이든, 생존이든, 때로는 감정의 배출이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놓고 싶어 한다. 오죽하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까지 있을까. 어쩌면 기록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남의 뒷담화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이다. 그 욕구가 가장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익명성이 보장된 SNS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 릴스에서 외모 차이로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부부의 이야기를 보았다. 결국 아내는 성형수술을 결정했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오열했다. 그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성형을 할 게 아니라 SNS를 끊어야..."
완벽하게 동의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과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인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기록에 자신의 판단과 악의를 남긴 것이다. 필터는 이야기를 다듬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야기는 인간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상처 입히기도 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까지 발전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인간을 가장 잘 설명하는 글자가 '惡(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은 악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을 이성이나 이타심이라는 아름다운 말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는 협력을 가능하게 했고, 그 협력은 자신의 악함을 누르려는 노력 위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노력이 인간을 살아남게 한 것은 아닐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이야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내용이 나를 이렇게 매도시킴에도 불구하고 불만은 있다. 배송받은 책이 표지부터 40여페지지 까지 구겨졌다 펴서 보낸 흔적이 있어 처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편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8개 챕터 중 일부에만 회색 간지가 들어가 있고, 작가의 말 앞에도 같은 종이가 삽입되어 있었다. 의도된 편집이겠지??? 그래도 ‘생각의힘’에서 나온 책인데...
구겨진 책은 두고 새 책을 한 권 더 사고 싶을 정도이다. 파본이었다면 희소본이라 우기며 소장했을 텐데, 구겨진 건 그냥 구겨진 것이다.
책을 덮고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인간이 왜 그토록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려 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인간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이야기는 전달되는 순간까지 이야기다. 그리고 독자의 손에 닿는 순간까지가 책을 만드는 일이다. 이 책은 인류가 백만 년 동안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왔는지를 452쪽에 걸쳐 들려준다.
모닥불에서 동굴벽화로, 문자로, 인쇄술로. 그런데 그 긴 여정의 마지막 한 구간, 출판사에서 우리 집 현관까지는 끝내 이야기가 무사히 건너오지 못했다.
백만 년을 견딘 이야기가 택배 포장지를 제대로 입지 못했다. 아마 이 책에 챕터 하나가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장, '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