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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그녕 ㅣ marmmo fiction
류현재 지음 / 마름모 / 2026년 1월
평점 :
류현재 작가는 2015년 <야미>를 시작으로 이미 5권의 소설을 출간한 베테랑이다. 2022년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극지슥한 족속, 가족>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책이다.
「빼그녕」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었다. 삐삐는 오래전 장거리 운전을 하며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세부 장면을 정확히 복기할 수는 없지만, 빼그녕을 읽는 동안 느껴진 분위기의 결은 분명 그 기억과 닮아 있었다. 빼그녕은 일곱 살, 삐삐는 아홉 살이라는 연령대의 근접성, 그리고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은 어른들의 언어와 행동을 낯설게 비틀며 ‘풋’ 하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의미와 맥락으로 굳어진 세계가 아이의 눈에는 어색하고 이상한 풍경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매력적인 출발을 한다.
초반부에서 제시되는 ‘기억력 과잉(과잉 기억력)’이라는 설정 역시 흥미롭다. 지나치게 정확한 기억은 어른들의 모순을 확대하고, 말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희극적으로 드러내며 서사의 리듬을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설정은 점차 설명을 요구하는 장치로 변하고, 감정과 사건을 밀어붙이기 위한 도구처럼 사용된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맡은 역할이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관찰자이자 연결자라면, 설정은 보통의 어린이 정도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과잉 기억력’이 아니어도 가능한 장면들 위에, 굳이 과도한 능력이 덧씌워진 인상이 남는다.
이 차이는 「유괴의 날」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유괴의 날에서 아이의 똑똑함은 상대가 극단적으로 우직하다는 설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이후 유괴가 셀프 유괴의 형식으로 전환되며 사건의 주도권이 아이에게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여러 상황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이 아이여야만 하는 이유”, 그리고 이 아이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아이의 비범함이 장면 장치가 아니라 사건 전체를 쥐고 흔드는 동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빼그녕에서 기억력 과잉은 사건의 구조를 지배하는 힘으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중심축으로 축적되기보다는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상을 남긴다. 후반으로 갈수록 굳이 이 아이가 과잉 기억력을 지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분명해진다.
특히 남녀 사이의 오묘한 감정을 포착하려는 대목에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말보다 공기로 전달되는 감정, 설명되지 않는 기류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설레지도, 쓰리지도, 먹먹하지도 않다. 기억력 과잉은 정보의 축적에 가깝고, 감정은 관계와 사회성의 문제이다. 이 둘을 하나의 축으로 묶으려는 순간, 소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억력을 감정 해석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끝내 해석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 빼그녕은 그 경계에서 끝내 한쪽을 선택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정리된다.
결국 이 소설은 초반의 재미를 위해 설정된 장치가 끝까지 설득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인상을 남긴다. 이는 설정이 과해서라기보다, 그 설정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 설정에 대한 충분한 자료 조사와 사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모든 이야기를 어린이라는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했을 서사에서, 과잉 기억력이라는 장치는 끝내 필연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흥미로운 장면 장치로 소비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완결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가 끝내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 채 남겨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
읽고나니 표지가 요약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