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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ㅣ 비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이 리뷰는 비채서포터즈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미스터리 단편집
총 3편의 이야기가 ‘비’라는 공통점으로 한권의 책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첫 작품에 대한 리뷰
(스포 포함)
〈皐月闇(5월의 어둠)〉 ― 시는 진실을 감추는 방식으로 고백한다
옅은 먹빛 하늘에서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오월의 어느 날.
상쾌하지만 꿉꿉하고,
시원하지만 눅눅한 공기 속에 묵직한 습기가 깃든,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미묘한 계절의 냄새.
〈5월의 어둠〉은 바로 그 냄새를 품은 이야기다.
퇴직 교사 노부오는 수십 년 만에 제자 나오의 부탁으로 시를 해석한다. 그러나 곧 이 ‘해석’이 단순한 문학 토론이 아니라, 오래전의 사건을 소환하는 심문임이 드러난다. 시 속의 단어 하나하나가 증거처럼 기능하고, 문학은 무해를 가장한 가장 적나라한 증언으로 변한다.
같은 문장이 서로 다른 진술이 되는 순간, 시는 예술에서 죄로 변한다. 언어는 진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을 지연시킬 뿐이다. 평생 언어를 다뤄온 노부오는 결국 언어에 의해 파멸한다. 그가 가르치던 도구가 이제 그를 고발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야기의 잔혹함은 폭력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데 있다. 단 한 줄의 시, 단 한 번의 해석이 모든 기억을 되살린다. 독자는 피도, 소리도, 눈물도 보지 못하지만, 그 침묵의 대화 속에서 더 큰 전율을 느낀다. 언어의 온도는 낮지만, 그 차가움이야말로 진짜 폭력의 온도다.
결국 나오가 말한다.
> “선생님이 이 땅에서 숨 쉬는 한, 잊게 두지 않겠어요.”
Goodbye, see you. (내가 한 말)🤣
이 인사는 작별이 아니라 저주다. 기억의 지속을 강요하는 가장 정교한 응징이다. 나오가 택한 것은 법이 아니라 언어, 주먹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녀의 문장은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복수다.
노부오에게 치매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망각의 기술이자 선택적 기억상실의 은유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죄를 지운다기보다, 오히려 그 죄 속에 갇히게 만든다. 망각은 구원이 아니라 자백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노부오가 쓴 시는 일종의 자백서다. 누구도 그를 가두지 않았지만, 그가 만든 단어들이 철창이 되어 그를 감싼다. 그의 기억은 부서졌지만, 그가 남긴 언어는 그의 죄를 대신해 그 자리에 남는다. 시는 그를 대신해 죄를 기억하고, 그를 대신해 살아남는다.
이 작품에는 아이러니가 깔려 있다. 죄인은 잊고, 피해자는 기억하며, 세상은 그 둘 다 금세 잊는다. 노부오의 치매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불편한 기억은 의학으로, 불의는 시간으로 덮인다. 그런 세상에서 ‘기억하는 자’ 나오의 존재는 언제나 불편하고, 언제나 불온하다.
그러나 결국 기억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복수다.
“굿바이, 씨유.”🤣
그 말은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이다. 망각 속에서도, 죄의 그림자 속에서도 언어는 계속 살아남는다.
〈5월의 어둠〉은 시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가 감정의 피난처가 아니라 진실의 무덤이 될 수 있음이다.
언어는 인간을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증언할 뿐이다
— 침묵하는 방식으로.
— 읽는 자만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한줄평>
☔️5월의 어둠_시, 분석문학, 치매, 기억, 과거, 성(性), 응징
<Goodbye, see you>
☔️보쿠토 기담_ 꿈, 욕망, 한량, 성(性), 구운몽, 저주
<구운몽 흑화버전>
☔️버섯_환각,영능력자, 욕망, 살인, 다잉메세지, 분해자의 언어
<스에히로 다쿠미의 명탐정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