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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도 한마디 합시다 - 2025 대한민국 시민 매니페스토(선언문)
권기대 지음 / 베가북스 / 2025년 4월
평점 :
🌊한줄평) 전光* 집회에서 낭독하면 싸인요청이 쇄도하겠네
‘다양성’은 언제부터 비판이 불가능한 신념처럼 받아들여졌을까.
책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었다. 다양한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의견이 옳을 수는 없다. 의견의 다양함과 진실의 상대성은 다르다. 다름과 틀림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지만 ‘내란과’ 출신은 아니다. 다만, 이른바 ‘그들’로 불리는 정치적 성향의 집단과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학력과 경력만 본다면 ‘지식인’이라 불려도 무방하겠지만, 그 지식의 방향이 반드시 이성과 현실 감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읽었다. 예상치 못했던 불쾌함이 밀려왔지만, 그 불쾌함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끝까지 읽었다. 어차피 온 책, 공부라도 하자는 마음이었다.
이 책의 핵심 정조는 양비론(兩非論)이다.
나는 이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맞은 사람과 때린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건 균형이 아니라 외면이다. 이 책은 “두 놈이 똑같다”고 말한다. 독자가 흥분하는 건 저자의 입장이 중립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중립이 ‘가짜 중립’, 또는 중립을 가장한 편향이기 때문이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대목은 "내란수괴 윤**, 이 호칭 괜찮은가?"라는 문장이었다.
저자는 의문문의 형식을 빌려 혐의 자체에 회의적 시선을 던진다. 그런데 그 바로 앞에는 “다수당이 하는 것도 모두 국민의 뜻인가?”라는 문장이 배치되어 있다. 국민이 뽑은 다수당이 정책을 추진하면, 그것이 ‘국민의 뜻’인지 의심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것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지점에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내란(內亂)은 아래로부터의 폭력, 기존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쿠데타(Coup d'État)는 위로부터의 무력 탈취, 엘리트 집단이 주도한다.
🔥친위 쿠데타(Self-coup)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헌정 질서를 뒤엎고 더 큰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10윤’은 ‘내란수괴’인가? 아니다. 용어 정의상 그는 친위 쿠데타 수괴다.
<친쿠수>, 이제 10윤은 <친쿠수>다. 내란 수괴라 불러서 미안하다. <친쿠수>여. 악당의 일마저도 ‘아래’라는 연관검색어보다는 ‘위’에서 하는 악당질을 원했을 터인데.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친쿠수>여~
이미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가진 상태에서, 오히려 권력 구조를 재편하거나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면, 그것은 ‘정권 찬탈’이 아니라 ‘체제 전복’에 가깝다. 개념의 정확한 사용은 정세 인식의 정확성과 직결된다.
이 책은 서두와 말미 모두 양비론으로 귀결된다. 앞에서는 국민의 이름으로 양비론을 전개하고, 말미에서는 균형과 자조를 가장한 비겁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수미쌍관 구조를 통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복은 정치적 회피를 지속하는 고집스러운 태도로 읽힌다.
누군가 말했듯, 진보는 가치를 따지고, 보수는 이익을 따진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그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 보이려고 노력했다 .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다 잘못했다’는 선언 아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애매한 균형을 연출하려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중립을 가장한 강력한 왜곡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이 책에는 팩트나 팩트 확인 없이, 온갖 의견, 추측, 주장, 그리고 감정적 해석만이 가득하다. 사실에 근거한 검증은 빠져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추정이 진실인 것처럼 묘사된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저자의 인상과 추론을 통해 정치적 결론에 이르도록 유도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떠오른 인상은, 뭘 지키고 싶은 것일까? 뭘 두려워하는 것일까?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든, 결국 이 책은 내부의 긴장을 해소하고 기존 권력을 방어하기 위한 자기 위안의 텍스트의 작동정도로 보인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