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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家族!!
‘가족’이란 말을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다. 피를 나눴다는 사실 하나로 얽힌 사람들이 꼭 가족일까? 도장을 찍었으니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 걸까? 그런 질문 앞에서 세 인물이 만들어가는 관계는 이상하고도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는 모성을 욕망하고, 누군가는 아버지라는 역할에 자신이 없다. 또 다른 누군가는 우발적 사건에 휘말려 그 둘 사이에 서게 된다. 그들은 혈연도 아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사랑조차 애매하다. 그런데 함께 아이를 키우자고 한다. 당연한 듯 얽힌 가족 대신, 서툴고 불완전한 관계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은 ‘정체성’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여자로, 누군가는 남자로, 또 어떤 날에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니, 세상이 그들을 ‘정상가족’이라 부르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는 기존의 가족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따뜻한 구석이 있다. 이건 굳이 무지개 깃발을 들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살아간다. 그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대가 더디게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소설은 무겁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다루지만, 서술은 의외로 가볍고 재치 있다. 진지함을 무너뜨릴 만큼 유쾌하지는 않지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유머가 있다. 인물들이 내뱉는 농담은 사회를 조롱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처럼 보인다. 웃기 위해 애쓴다기보다, 울지 않기 위해 웃는다. 그렇게 웃음 속에 숨겨진 분노가 조금씩 스며든다. 그 분노는 단순히 젠더나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상이라 낙인찍는 시선, 제도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배제하는 시스템, 남녀 이분법에 맞추지 않으면 ‘실패’라고 여기는 사고방식 전부를 향한 것이다.
현실에서 ‘디트랜지션’이라는 선택은 어쩌면 절망의 다른 말일지 모른다. 사회가 준 상처, 제도가 강요하는 기준, 생존을 위한 후퇴. 하지만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포기나 부정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저항이다. 더 이상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트랜스젠더’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사회가 설정한 정답에서 벗어나 살겠다는 시도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에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그들은 그저 ‘더 나은 선택’을 찾아 흔들리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비난할지 모른다. 모성을 가볍게 여겼다고, 부모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과연 ‘정상가족’은 모두 올바르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 남녀가 만나 결혼해 낳은 아이들 중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어떤 관계가 ‘진짜 가족’인가. 그리고, 무엇이 ‘진짜 나’인가. 피도, 혼인신고도, 성별도 아닌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정상’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폭력성, 제도에 기대는 우리의 안일함, 그리고 타인을 향한 불필요한 판단들.
이 작품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낯설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이야기다.
혹시, 지금이 그 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