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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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살았고, 살았고, 살았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고 말하기 힘든, 제자식을 못 먹어 이웃자식과 바꿔 먹던 시절.
어깨를 짓누르던 어른의 손을 겨우뿌리치고 살기 위해 나온 열 살 남짓 한 아이.
어른의 보호보다 아이들끼리 서로를 보호하며 살던 시절.
대장이 따르라길래 따랐지만, 결국 다른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그 때 그 시절.

이름도, 나이도 그 누구도 나를 증명하지 못한 그 시절.

아이는 살았다.

아이는 먹을 것이었고, 체온을 나누는 생명체였고, 보살핌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Be 동사 였다. 그저 있었다.

의지대로 한 말이 “양녀가 아닌 부인으로....”

양녀였다가 가기였다가, 누군가에게는 양녀, 누군가에게는 가기... 그러다 결국 두화의 저주대로 그렇게 살았고, 그 시절을 견뎠다. 다 죽었다. 다 죽었지만, 아이는 살았다.

모습이 변했지만, 살았다.

소설은 파멸이다. 이런 어두운 소설을 좋아한다.
결국 다 죽었다. 아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아버지도, 아이를 탐했던 모든 XY도 해가 뜨면 지듯이 어떻게 해서든 죽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이 소설에서는 당연했다.

그래도 아이는 살았다.

모든 것이 휩쓸고 갔지만 아이는 살았다.

아이의 삶을 보면 과연 언제 가장 인간다웠을까 생각이 든다. 아니 과연 인간다웠던 적은 있을까?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함께 뛰기만 해도 허파가 뒤집어 질 만큼 웃었지만, 더위와 추위는 물론 배는 늘 골았다. 고운 이불과 비단의 옷 온 몸을 감쌌지만, 언제 버려질지 몰라 불안했던 그 삶. 이 사람이 아니면 다시 어려운 삶으로 돌아갈까 결국 생각한 것이 그를 향한 쓸모다. 그의 쓸모였기 때문에 그가 끝나면 아이도 끝난다.

그는 끝났고, 아이는... 쓸모를 다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가졌던 이름도, 가졌던 옷도, 가졌던 미소도 결국 다시 원점이다.

아이도 죽었으면 어땠을까?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없어졌으면 어땠을까?

도깨비의 ‘파국’이 다시 떠오른다.

호흡이 짧아 단박에 읽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자주 등장하는 옛날말(?), 단어(?)가 거슬리기도(뜻을 몰라서), 어색해서 신선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106
네 이 거지 년아. 너는 지아비를 둘이나, 아니 셋이나 섬기는 천하의 음녀가 될 것이다. 퉤.

.160
계집들끼리 아무리 지엄한 법도를 정하여 서로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한들 소사합 바깥에서는 모래처럼 흙먼지처럼 스러지는 것이었다.

.177
내 보기에 천하에 귀한 것이 세 가지 있는 데 하나는 미인, 하나는 중마, 하나는 태사의 마음이오. 미인은 변덕스럽고, 준마는 잘 나지 않는데 태자의 마음은 그 둘을 합친 것과 같아 그 무엇보다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공께서는 앚아서 그것을 얻으셨는데 어찌 눈치만 보고 계시냐는 말입니다.

.201
마침 봉선이 나를 원하고, 봉선은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말이 생길 만큼 우수한 장수이니, 동중영에게 나를 바쳐 그의 화를 돋우면 될 것이라고 믿으셨다.

.207
밤에는 중영이 침소에서 나를 품는다. 낮에는 몰래 찾아온 봉선이 시비와 종복과 사병 들의 눈을 피해 나를 취한다. 친부자간이 아니어서 봉선과 다르게 후각이 예민하지 않는 중영은 내 중심이 밤낮으로 질펀한 까닭을 모르고 봉선은 중영이 엎질러놓은 것 위에 제 냄새를 덮으려는 듯 꼼꼼히 핥고 거하게 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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