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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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밑줄만 읽어도 최고!!

(생략)
왕당궈는 1925년 생으로 <가까이, 그녀>는 가장 최근작이다. 놀라운 것은 더 많다. (피드참조) 헐~이게 한사람이 가능한가? 도플갱어가 있거나, 아님, 분신술을 쓰는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중략)

소설의 주인공은 류량허우(57)로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다.(인물관계도는 나중에) 가석방되어 아들 뤠이슈에 의해 고용된, 아윈의 돌봄을 받고 있다. 아들에게는 치매환자 인척하지만, 지속적으로 만나는 아윈은 그가 정상임을 안다.

초반에는 그는 왜 치매인척하고, 아들은 치매이길 바라는 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해가된다. 둘 사이이는 별로다.
(중략)
현재와 과거, 과거의 과거, 대과거, 다시 현재, 이야기들이 순서없이 생각의 속으로 들어가거나, 편지글을 통해 이야기 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플래시 기법)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취직-점장-만남-이별-대학진학=만남-재회-결혼생활-죽음-수감=편지-가석방=재회

단순한데, 량허우의 마음을 뺏은 두 여인 쑤(-)와 종잉(=)이 이상하게 헷갈렸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읽는 것은 등장인물의 삶을 간접체험하여, 인간이해의 폭을 넓히는 거라고 했다. 난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했다.

량허우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쑤는 어떤 사랑을 한 것일까?
(중략)

소설 후미에는 작품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단어는 <시계>.
작품에서 량허우는 쑤도 종잉도 그 어떤 족쇄도 채우지 않았는데, 해설은 쑤는 ‘로렉스 시계’이며, 종잉은 ‘스위스 시계’라고 량허우의 인생의 여인들을 량허우의 시계라는 카테고로리로 묶는다.

그러나 독자로써, 쑤를 로렉스로, 종잉을 스위스로 묶을 만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것은 나만 그래??^^;; 해설은 해설자의 맘이고, 독서는 독자의 마음이니깐.

쑤와 종잉을 그렇게 분류하는 것 자체가 작가의 이번 작품에 대한 도전에 반(反)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작가는 앞의 작품에서는 여성에게는 단 한 줄의 대사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넣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혹시 여성의 해방에 작가는 동참하고자, 힘을 보태고자 했는데,
해설을 또 다시 량허우가 차고 다니는 악세사리 ‘시계’로 다시 여성을 묶었다.

작가는 해방시키고자 하고, 해설은 묶고. 재밌다.

그렇다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한다고 핵심어로 해설자가 잡은 <시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량허우가 가지 않는 시계를 마지막까지 차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요건 또 기회 되면)

다 모르겠지만, 량허우는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이라고 판단했는데, 해설자는 <양보>라는 키워드로 풀었다. 왠열~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변명도 정도것 해야지.😤
량허우는 그 어떤 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

량허우가 쑤의 가족들을 만나서 하는 말과 행위를 쑤 한테 직접했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 그때는 그랬다고??’ 그런 시절이었다고??

비겁한 변명이다. 그래서 고른 단어가 <양보>!! 안나 카레리나의 남편도 <양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의 표현과 상징은 완전 다르다)(워~워~)

차라리 <기다림>이나 <바라보기>이런 단어라면 어떨까?

작품에 대한 해설은 해설자의 몫이고, 작품을 읽는 것도 해설을 읽는 것도 독자의 몫이나, 요런 부분은 조금 씁쓸했다. (사실 해설도 재미있다.)

보통은 해설이 작품보다 더 훌륭해서(특히 고전)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번작품은 해설이 꿈을 다 담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마치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시험에 출제되기를 반대했지만, 시험풀이에 교육을 받은 자는 어쩔 수 없이 시험 풀이로 해설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 소설은 해설보다는 작품자체를 읽으면 좋겠다.

소설의 문구 하나하나에 줄을 치면 전체가 밑 줄 일 수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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