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과 관객의 문화사
가토 미키로우 지음, 김승구 옮김 / 소명출판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관과 관객의 문화사」는 영화관 및 관객을 통해 본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영화 및 영화관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경유하여 근대적 도시문화공간과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관 탄생 110년(2005년 기준)을 기념”하여 집필되었다는 이 책은 크게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서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누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영화를 보여주었는가 하는 역사”, “관객이 어떻게 영화를 향수했는가 하는 역사”를 기술한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영화관 및 영화 소비 역사를 다룬 부분에서 입이 떡 벌어졌던 부분. 자동차 영화관, 시네마 콤플렉스, 아이맥스 영화관이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삼 그 규모에 놀랐다. 예를 들면, 이른바 “영화궁전”, 즉 1920-30년대 미국의 거대영화관은 무려 6,00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고. 영화관의 규모뿐만 아니라 영화 상품의 유형 및 소비 방식 등 모든 것이 거대해서,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이 거인의 나라 박물관을 견학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영화관은 이국땅에서 자기들이 본래 어디에 귀속되어 있었는가를 상기시키는 기억과 역사의 아카이브(수장고)가 된 것이다.” 79쪽.

문화연구자로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미국에서 대규모 이민자의 유입과 영화관 및 영화 소비 양상의 역사가 일정부분 겹쳐진다는 점, 이주민들이 영화를 통해서 미국화(americanized)되면서, ‘oo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근대 국민-국가 이탈리아에서 국민 정체성이 없었던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이민자들이 이탈리아 사극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재규정 혹은 각성했다는 것. 하와이의 일본 이주민들이 변사가 일본어로 해설해주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는 것.

약 230쪽 분량으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다소 전문적일 수 있는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 1990년대 짧았던 피시통신 시절의 영화동호회 활동의 경험이 내 삶에서 아주 특별했기 때문. 영화애호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피시통신이라는 전혀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별, 나이, 직업 등을 초월하여 공통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 혹은 별칭으로 서로를 호명하며, 온오프 모임을 통해 영화를 함께 보고 소감을 공유했던 그 경험은 이전의 영화관 및 영화 체험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 한국은 문화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다양한 독특한 시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시기, 이 동호회를 통해 만난 인연들이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삶에서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을 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영화관 및 영화 향유 경험이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웠던 부분은, 나와 저자의 학문적 배경 및 지향점이 달라서 이렇게 읽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자가 다룬 시대의 영화관 및 영화 향유 경험이 당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에 대해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제국주의 통치 체제 하의 검열과 통제, 영화관의 형성과 영화 체험이 어떻게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관통, 중첩, 갈라지는지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또한 저자가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다룰 때 그 관점이 이성애-규범적 틀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니다. 특히 “포르노 영화관의 관객”(225-227쪽)이라는 소제목에서 동성애적 실천, 영화관에서 남녀의 애정행각과 같은 이성애적 실천을 같은 층위에서 일별하고 있어, 마치 ‘포르노’라는 범주 안에 이 모든 것을 동질화하는 부분에서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1957년생 일본인 남성 영화연구자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한계 및 틀을 염두에 둔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