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을 보는 눈 - 한국 사회 빈곤에 대한 편견을 깨자 세상을 읽는 눈
신명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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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의 목적은 빈곤 담론 분석 및 빈곤의 원인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통한 빈곤의 정치화인 듯하다. 최근 한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빈곤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을 기대하고 이 책을 구매했다. “한국 사회의 가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기 때문. 막상 읽어보니 빈곤의 현상과 원인에 대한 미시적, 거시적 분석이 한국이라는 로컬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다

 

사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현한 새로운 빈곤의 유형과 빈곤 개념화, 신자유주의적 자본 축적 체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여러 권의 다른 책에서 접한 바 있었다. 그래서 신 빈곤 관련 저서들을 여러 권 접한 바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소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 책의 특징은 한국의 빈곤 문제를 빈부 격차뿐만 아니라, 복지 정책 및 담론, 교육, 빈곤 문화 담론, 의료 정책, 건강 불평등 등의 이슈와 연결시켜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빈곤 문화이론을 다룬 7, 노숙인의 생애사를 소개한 8, 빈곤의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문제와 빈곤의 연관성을 조명한 9장이다

 

7장에서는 처음 빈곤문화개념을 발명한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에 대한 저자의 리뷰가 와 닿았다. 오스카 루이스는 1950-60년대 가난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활습관 및 가치체계라는 뜻으로 처음으로 빈곤의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 학자라고 한다. 멕시코 빈민촌에 들어가 참여관찰 자료를 토대로 한 그의 연구는 이후 󰡔산체스네 아이들󰡕(1961)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루이스 자신은 빈곤이 빈민들 자신의 책임이고 따라서 사회가 도와줄 가치가 없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했고 그들과 따뜻한 교감을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만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드리운, 보이지 않는 질곡의 구조를 탐색하는 대신, 눈앞에 보이는 병리적 현상을 기술하는 데 골몰한 탓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희생자를 비난하는담론의 원조가 되고 말았다.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본인이 자초한 부분도 없지 않다. p.134

 

저자의 리뷰를 요약하자면, 오스카 루이스의 빈곤 문화 연구의 특징은 구조를 탐색하는 대신 눈앞에 보이는 병리적 현상을 기술하는 데 골몰”(p.134)하는 것이다. 오스카 루이스 자신은 가난한 이들에게 깊은 연민과 애정을 품고 있었음에도, 그가 만들어낸 지식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희생자를 비난하는담론의 원조가 되었고, 저자는 이에 대해 본인이 어느 정도 자초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문화 연구자로서 이 대목이 크게 와 닿았다. 연구 방법론의 문제는 지식이 소비 혹은 유통되면서 형성되는 담론 생산에 직결된다. 오스카 루이스의 빈곤 문화 연구 및 이후 빈곤 연구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저자의 리뷰는 미시적 분석과 기술적(descriptive) 화법이 결합될 경우 지식 생산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지식 생산을 통해 사회적인 것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연구자라면 연구 방법론은 단지 연구 전략의 차원을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 책의 목차 중에서 8장 노숙인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한국의 가난󰡕(김수현, 손병돈, 이현주)에서 알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노숙인 중 60%는 평생 가족을 형성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며, 노숙인 중 30% 가량이 고아원 출신이고, 60% 가량이 결손가정이나 알코올 의존증 부모를 두었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한국의 가난󰡕을 읽기 전에 노숙인은 실직 후 가족 해체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중년 남성이라는 통념을 갖고 있었기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이는 빈곤 문제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근 한국도시연구소의 보고서는 2011년 현재, 거리노숙인이 2600여명, 노숙인 시설 거주자가 11300여명, 피시방·찜질방 등 비숙박용 다중이용시설 거주자가 62400여명, 쪽방이나 여관·여인숙·고시원 거주자가 145600여명 등으로, 모두 222000여명의 사람이 주거취약계층이고 이들을 모두 노숙인 등으로 규정할 것을 주장한다. p.144

 

이 책, 󰡔빈곤을 보는 눈󰡕의 미덕은 노숙인을 통해 본 한국의 빈곤을 다루기에 앞서 과연 노숙인이란 누구인가, 즉 노숙인의 범주를 질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노숙인의 범주에 거리노숙인뿐만 아니라 노숙인 시설 거주자, 피시방·찜질방 등 비숙박용 다중이용시설 거주자, 쪽방이나 여관·여인숙·고시원 거주자까지 포함할 것을 제안한 한 보고서를 소개한 부분이다. 직장, 학교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고시원이나 지하 하숙방에 머물렀던 나와 내 형제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빈곤 문제가 주거불안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한국은 노숙인과 비-노숙인, 빈자와 빈자가 아닌 자 간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져 가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알코올중독, 가족해체, 실업, 주거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노숙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책에서 인용한 노숙인의 생애사를 따라가 보면, 이들은 사방이 연이어 혹은 동시에 무너지는 과정을 거쳤고, 어느 한곳 이들을 구출할 수 있는 존재나 공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빈곤 문제를 통해 바라본 한국 은 모든 곳이 일시에 무너지고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빈곤의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그 해법도 복합적인 것이 되어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일 것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 모두 빈곤 문제의 공범이 아닐까 싶다.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지면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빈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빈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논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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