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노인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이성현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폭주노인

 

이 책은 각종 범죄에 가담하거나 공공장소에서 폭력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위험하고 폭력적인 노인, 신노인의 출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다. 저자는 현명하고 인자한 어른이라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대비하여 신노인개념을 제시한다. 후기 근대의 새로운 사회질서가 시간, 공간, 그리고 마음의 구성 원리를 변화시켰고, 위험한 노인의 출현은 이러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부적응의 결과라는 것.

 

분명 저자의 시도에는 신선한 측면이 있다. “왜 폭력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고 그 해답을 풀어가고자 하는 시도, 현대의 물질문명이 어떻게 노인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분명 호기심을 자아낸다.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현대 사회는 변화된 시공간 감각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 결과 이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하고 초조해진 부적응 집단, 정보난민이 출현했고, ‘신노인이 바로 그 증거다. 노인의 불안과 고립감이 누적되어 곳곳에서 감정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주로 감정노동등 후기근대에 대한 분석 도구인 사회학적 개념에 의존하여 폭력적 노인의 출현현상을 읽어내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폭력적인 노인의 등장이 후기근대의 새로운 사회적 현상인 것인가, 아니면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포함하여 근대를 지탱했던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균열되면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현상인가. 노인 세대의 부적응이 왜 하필 폭력이나 범죄로 나타나는가. 이 책에서 언급된 이른바 신노인’, 즉 폭력적이고 위험한 노인들은 대부분은 남성인데 왜 신노인의 등장이 이와 같이 성별화된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폭력적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실종되고, 오히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언급한 바 있는 후기 근대의 변화된 사회 구성 원리에 대한 반복적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폭력적 노인의 출현현상과 그 현상을 읽어내는 분석틀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다가 후반부에서는 사회 현상은 사라지고 분석틀만 클리쉐로 남는다. 정작 책의 내용에서 노인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는 점 역시 실망스럽다.

 

사족. 일본 지식인의 책을 읽다보면 말의 힘이 강하게 감지되곤 한다. ‘폭주노인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뿐만 아니라 모국어에서 사유의 힘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지식 생산 환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말의 힘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내러티브가 희생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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