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노동빈곤층(working poor)’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학자에 따라, 그리고 특정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용어가 선호되는 듯. ‘워킹 푸어는 빈곤 문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불안정한(precario)’노동자계급(prolatariat)’을 합성한 신조어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삶의 불안정성과 계층화에 초점을 둔 용어.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미국에서는 워킹 푸어라고 불리지만, 일본에서는 프리터라 불린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이 담긴 이 프리터라는 용어는 일본의 불안정노동, 노동빈곤의 문화적 측면을 역설적으로 포착하게 해 준다. 당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일이라는 신념은 가난뱅이끼리 치열하게 헐값 경쟁을 하면 할수록 부자가 득을 보는 시스템”(p.84)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자유주의 문화정치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아마도 일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빈곤 활동가인 아마미야 가린이 프리터라 불리는 일본의 불안정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이 책의 미덕은 물론 우울한 노동의 디스토피아를 적확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일 게다. 하지만 일본의 반-빈곤 활동가 지식인들, 특히 이 책의 저자 아마미야 가린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부조리한 노동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정당화하는 문화정치의 논리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없이 그저 표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손쉽게 국가라는 공동체와 접속하게 된다. p.103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혔던 지점은 많은 프리터들이 자신의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사회 탓은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 꿈을 가진 프리터와 그렇지 않는 프리터를 나누는 등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태도 등 일견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착한 근성의 기저에 놓인 프리터들의 심리적 상황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불안정노동 속에서 살아갈 공간도, 인간관계도 상실한 채 사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사회와의 접속감을 찾아서 우경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어버이연합의 어르신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약자가 자기보다 더 약자인 사람들을 증오하게 만드는 구조의 사회. 이런 곳에서는 아무도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p.104

 

저자는 이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일본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분노라는 처방을 접할 때마다 조금 뒷걸음치게 된다. 본디 분노라는 정서는 미움과 닮아있고, 에너지의 특성 상 환부의 원인을 어딘가에 돌리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난다. 분노라는 에너지는 당면한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미 나눠질 대로 나눠진 사람들 사이의 틈을 더욱 벌어지게 만들고, 분노의 주체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자기 책임론이라는 신자유주의 함정에서 우리 모두가 구출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덮고 나서 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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