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마음을 읽는 법 - 개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아는가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전행선 외 옮김 / 동그람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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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 같은 보송한 털 뭉치에 까만 콩 세 개가 콕콕콕 박힌 작은 생명체가 화면 가득히 들어온다.


제주도에 있던 나와 우리 반려견의 첫 만남이다.





벌써 5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당탕탕 울고 웃고 싸우고 지지고 볶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서 지금까지 어찌어찌 지내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알듯 말듯 한 반려견의 생각이 궁금해 『개의 마음을 읽는 법』을 펼쳤다.



반려견의 생각이 궁금해서 읽은 책인데 오히려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얼마나 내 중심적이었는지 그리고 나의 세계관에 그 작은 존재를 맞추려 억지를 부리고 있었는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두서없이 마구 올라왔다.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개체를 나의 세계에 들여놓고 나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는 했었다. 개를 이해하려는 방식이기도 했으나 더 기대하고 실망하고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저자인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이 '개를 의인화하는 행위'를 내려놓고 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 보라고 말한다.






'개는 인간을 관찰하는 인류학자'라는 표현이 참으로 멋지다. 우리 입장에서만 생각했기에 개가 우리를 관찰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일련의 패턴을 알 때에는 그저 우리 반려견의 천재성에 의미를 더 둔거 같다. 관찰력이라는 강점을 활용해 훈련보다는 스스로 깨침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도 어릴 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경험하며 자랐다. 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 원하는 것을 주는 것으로 개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동물 병원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두려움의 냄새인 항문낭 분비물 냄새 때문이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매번 긴장하며 예민하게 구는 반려견에게 짖지 말라는 다그침만 했었다. 기본적으로 개에게 좋은 곳으로 인식될 리 없는 곳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간식도 주고 여유를 갖고 방문해야겠다.



사람 눈엔 보이지 않는 전구의 깜빡임과 티브이 화면의 변화가 개에게는 보인다니. 외출 시에 티브이보다는 음악을 틀어 주는 게 더 낫겠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귀를 접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꾸짖는 소리를 아는 관찰자 인류학자인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여러모로 개에겐 불편한 환경이다. 인공적인 향이 계속 채워지고 소음은 끊임없이 들리고 실내는 끊임없는 깜빡임과 느린 화면 프레임 등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등을 마주하며 안심하고 외출 후 그 누구보다 반겨준다. 함께함을 즐거워하고 매일같이 반복해도 항상 그대로 좋아해 준다. 저자가 펌프와 함께한 시간을 묘사할 땐 마음이 뭉클해진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따스하고 고마운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든든해지고 위로가 되는 경험이다.







『개의 마음을 읽는 법』 인간인 나의 입장에서만 했던 생각을 바꿔 생각해 볼 기회를 줬다. 개는 평생 책임지고 돌봐주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하는 위로하고 위로받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우리 둘 사이의 유대관계는 오직 우리만 아는 스텝으로 출 수 있는 고유한 춤이다. 이 춤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길들이기와 관계 발전이다. 우선 길들이기는 무대를 마련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의식 절차는 둘이 함께 만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투영하거나 서로를 분석하기 전,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P. 354



둘만의 세계가 새로 구축되는 것이다. 우리만의 세계. 그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새로운 세계가 그렇게 자라난다.





반려견이 두 살을 갓 넘겼을 때 헤어짐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책이라고 했다. 지금은 다섯 살을 넘겼다. 그래도 눈물이 난다. 함께함이 기쁜 만큼 헤어짐이 너무 슬플 것 같아 지레 겁이 난다. 그래서 지금을 더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저자인 알렉산드라도 이 마음으로 책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개가 이해하고 관심 두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길 바란다고. 옮긴이의 글도 마음에 와닿았다. 이 책을 통해 반려동물의 복지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나의 반려견에게


함께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덧, [2022 서울국제도서전] 동그람이 부스 넘 기여웠어요 :D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개의마음을읽는법 #알렉산드라호로비츠 #전행선옮김 #동그람이 #반려견 #견주추천책



우리 둘 사이의 유대관계는 오직 우리만 아는 스텝으로 출 수 있는 고유한 춤이다. 이 춤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길들이기와 관계 발전이다. 우선 길들이기는 무대를 마련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의식 절차는 둘이 함께 만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투영하거나 서로를 분석하기 전,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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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온다 - 곧 찾아올 절호의 타이밍에 대비하는 구체적 방법
이광수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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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이란 공간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느끼지 못한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넓은 거실과 아늑한 침실, 넉넉한 책상 위 공간이 간절해졌다.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부동산 입구에 붙은 월세 매물을 봤다. 우리 동네는 비싸서 이사 올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그 옆에 붙은 매매란에선 헛웃음이 나왔다. 모두 억 단위였다. 어릴 적 갖고 놀던 부루마블도 억 단위가 없었는데, 동네 집값은 '억'만 붙어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 저축만 해서 얼마 만에 1억을 모을 수 있을까? 가족과 은행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을까? 사업이 대박 나거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 아니고선 저런 집을 누가 사는 것일까? 의문만 가득 품다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참으로 힘들구나 생각했다.






『집이 온다』는 위로가 있는 재테크 도서이다. 돈 벌기 힘드니까 부동산 투자하세요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 집 한 채 정도는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광수 저자가 펜을 들었다고 맺음말에 밝히고 있다.



"엄마, 우리는 언제 우리 집에서 살아?"라는 아이의 질문에 마음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책을 썼습니다. 투자나 투기로 집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집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ㅣ P.264




부동산 관련 책은 처음이라 얇은 책이지만 읽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직도 명확하진 않지만 첫 출발부터 많은 욕심은 금물이란 생각에 책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투자 스킬이 아니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보는 법, 부동산 시장의 특징, 정부 정책에 따른 부동산 시장 변화, 저자만의 대안 제시를 한다는 점에서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최근 집값 폭등의 원인



19대 정부 정책 실패로만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것을 이광수 저자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설명해 준다. 현재 주택시장이 수요 증가 인지 공급 감소 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한다. 2014년도부터 주택 가격이 폭등했으나 2016년부터는 공금이 감소했다. 주택 총량은 증가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원인은 다주택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럼 왜 다주택자가 증가했는가?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어주면서 투자를 목적으로 다주택자들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2016년부터 시작된 주택 공급 감소는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민간 임대 사업자를 등록하게 하면서 시작됐다. 주택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고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세금 회피 방법으로 사용됐다.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고 임대조건을 충족시키면 공시가격 6억 원 이하인 경우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합산을 배제하는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시적인 정책 시행과 여러 정책이 나왔다 들어가면서 다주택자들은 매도보다 보유를 선택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가 주택 소유자가 아니라 배경지식이 적긴 했지만, 실보다 득이 더 많은 상황에서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란 건 명확했다. 치솟는 집값에 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웃음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상승하는 돈 단위가 몇 천, 몇 억이니 로또보다 확률이 높지 않은가.





또한 20, 30대가 소규모 주택을 많이 구매했고 코로나로 저금리 시대를 맞이한 우연도 컸다. 영끌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 가격 폭등 현상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저금리로 대출을 동반한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됐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벼락 거지'의 기분만 느끼고 패배감만 느끼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제20대 대선 선거 승리와 패배의 이유



패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지만 저자의 말처럼 더 성장하기 위해 복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 측면에서 이 부분을 분석한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우리는 지나간 것을 떠올렸을 때 패배의 쓴맛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그러나 지나간 것에서 우리는 개선할 점을 찾아 성장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힘과 인간의 본능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자신이 손해 볼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표를 던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위험을 피하고 싶고 눈앞에 이익을 좇으며 깊이 생각할 문제를 피한다. 먹고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세상에서 불로소득을 제제할 절대자가 없으면 기꺼이 불로소득을 얻으려 뛰어들 사람들이다. 한쪽은 남들이 다 갖는 불로소득을 너도 얻을 수 있게 작은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그럼 다른 한쪽은 불로소득을 얻는 구조를 바꾸겠다고 해야 싸움이 되지 않을까?


뇌물을 주는 것을 일일이 거절하기 힘들어 사무실에 CCTV를 단 사람이 더 용기 내고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다시 기회는 오기 마련이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건 '준비된 자'이기 때문에.






절호의 타이밍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부동산 불패는 없다는 잘못된 주장에 허점을 기억하자. IMF 때와 서브 프라임 시기가 있었다. 예외라고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부동산 시장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이 어느 때인지 파악하고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를 가늠하면 우리도 '꿈에 그리던 집을 갖는 소망'에 한 걸을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와 3기 신도시 분양이 연달아 이뤄지고 있다. 신도시 계획 발표부터 입주까지는 약 9년 정도 걸린다. 과거 1기, 2기 신도시 계획 진행을 살펴보면 공교롭게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신도시 계획을 내놓고 입주시기에 IMF와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진다. 미분양 아파트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2027년 3기 신도시 분양시기를 유의 깊게 봐야 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준비를 할 시기다. 미혼 20-30대가 채울 수 없는 청약 점수를 갖고 끙끙댈 게 아니다. 마련할 집의 위치를 선정하고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세세한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약 4년 반의 시간은 꽤 충분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회사 생활 5년이면 고인 물이 되는 세상이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몰라도 5년 동안 보고 들으면 부동산 보는 능력 하나쯤은 생길 것이다. 단, 좋은 정보를 꾸준히 공부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아무 노력 없이 정부만 탓하고 있을 것인지 작은 노력이라도 더 해서 '내 집 마련의 운'을 잡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자도 희망을 빛을 나누어 주기 위해 『집이 온다』를 썼을 거라 굳게 믿는다.




『집이 온다』는 부동산 재테크 초보를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보니 자세하고 친절한 용어 설명과 자세한 정책 관련 이야기가 없다. 관련 용어도 풀어썼다 줄여 썼다 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으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좋은 기회를 알았으니 장기적 관점으로 본격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내 집 마련 이제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



#와이즈베리 #집이온다 #집테크 #부동산서적 #부동산책 #재테크도서 #재테크책 #경제도서 #부동산시장전망 #책선물 #책선물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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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 미술관에서 명화를 보고 떠올린 와인 맛보기 Collect 14
정희태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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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명화라는 완벽한 매력을 가진 두 분야가 연결고리를 찾았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함께 해온 와인과 그림에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고 저자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지 같이 들어보면 좋겠다.






2021년 6월 코로나로 지치고 힘들었을 때 프랑스 현지 유튜브 라이브 강연을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센 강을 배경으로 다양한 작품을 설명해 주셔서 마치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온 듯했다. 현지 강연자 중 한 분인 정희태 님은 『90일 밤의 미술관 : 루브르박물관』의 공동 저자로 프랑스에서 국가 공인 가이드로 프랑스 문화재에서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분이 와인에 조예가 깊은 까닭은 요리를 공부하다 와인에 빠져 프랑스로 유학 가고 그곳에서 소믈리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부한 분야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흥미롭게 풀어나갈 수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표지부터 매우 매력적이다. 텀블벅 사이트에서 펀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인기가 많아 정식 출간까지 이어졌다. 매력적인 내용과 아름다운 표지까지 더해져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명화와 와인이 갖는 연결고리

그림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와인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 시키고 와인을 만드는 다양한 포도 품종과 그림을 그리는 물감의 종류를 빗대는 등등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와인과 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통점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지금이야 우리가 명명한 세부 분야가 있고 전문가가 있지만 몇백 년 전만 해도 다양한 직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재로 칭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수학가, 발명가, 화가, 조각가, 도시계획자 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동하며 능력을 보여줬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정희태 저자는 보고 이야기해 준다. 빛의 화가 모네가 빠르게 그린 그림과 숙성기간이 짧은 보졸레 누보 와인을 엮은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모네의 작품이 처음엔 벽지보다 못한 그림으로 취급받았다니. 그리고 빛이 변화를 담기 위해 단 7분 만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수많은 노력과 연습으로 기본기를 갖췄기에 이만한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색감과 부드러운 붓놀림을 한 작작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모네라는 작가 인식이 정말 새롭게 바뀌었다.


4~6주 만에 숙성되는 보졸레 누보 와인을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마실 수 있는 햇와인'이라고 홍보한 와인 중개상 조르주 뒤뵈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놀라웠다.




깊이 있는 와인 이야기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은 와인을 처음 접할 때 찾아보는 기본적인 내용인 와인잔 종류, 와인을 어떻게 즐기는지, 디캔팅은 무엇인지, 내추럴 와인은 무엇인지 등 앞부분에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물론 미술과 명화와 연결고리를 갖고 재미나게 풀어낸다. 진짜 이 책의 매력은 쉽게 들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와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임파스토 기법(물감을 뭉쳐 색조를 짙게 만드는 기법)처럼 향과 맛이 짙게 응축되어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와인이 있습니다. 바로 귀부 와인입니다. '귀부'는 한자어로 의미를 풀면 귀할 귀貴, 썩을 부腐로 귀부와인은 '귀하게 썩은 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l P.81



귀부와인이란 것을 처음 들어봐서 매우 흥미로웠다. 자연과 사람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마실 수 있는 귀부와인은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성실함,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신기해서 친구에게 소개해 주며 훗날 함께 마실 것을 약속했다.






쉽게 다가가는 명화와 와인

다양한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게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의 매력이다. 평범한 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 작품과 와인 이야기를 하려면 배경과 용어를 많이 설명해야 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딱딱하게 설명만 나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마치 도슨트 강의를 듣는 것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필요한 것만 쉽고 재밌게 들려준다. 문체가 주는 편안한 느낌이 매력적이긴 또 처음이다. 아마 10여 년 동안 문화 해설가로 일하신 경험이 녹아있어서 그런가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아름다운 책과 자랑스런 한국 화백

책이 매우 예쁘다! 소장 욕구를 뿜뿜 불러일으킬 정도로 표지도 아름답고, 안에 담긴 명화와 와인 사진도 매우 매우 예뻐서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다시 봤다. 책 어느 곳을 펼쳐도 멋진 작품과 와인 사진이 나오다니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한국 화가와 작품이 담긴 와인도 주요 포인트다! 우리나라 최초 와인 이야기부터 우리나라 최초 상업용 와인인 노블 와인 포스터도 담고 있다. 이우환 작가가 디자인한 무통 로칠드 라벨 이야기도 있다. 방혜자 화백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을 장식한 것은 매우 자랑스러웠다. 또한 방혜자 화백의 작품이 브루노 파이야르 샴페인 라벨로 올라간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을 읽으면서 나오는 와인의 맛을 상상해 봤다. 코로나 이전에 와이너리 투어를 계획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빨리 와인 여행을 가고 싶다. 그리고 프랑스란 나라와 프랑스 와인에 관심도 높아졌다.


프랑스에서 와인을 배우고 활동하는 저자분이라 그런지 프랑스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탈리아 혹은 다른 국가도 시리즈로 내주시면 좋겠다 :)










동양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그림을닮은와인이야기 #와인책 #와인책추천 #정희태 #동양북스 #콜렉트 #90일밤의미술관 #90일밤의미술관루브르박물관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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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Edge of the Dark Sea of Darkness : (Wingfeather Series 1) (Paperback) - 『윙페더 사가 1』원서 Wingfeather Series 윙페더 사가 (Paperback, 영국판) 1
Andrew Peterson / Hodder & Stoughton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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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가제본 입니다.




다짜고짜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그다지 안 좋아하고 그나마 트와일라잇만 좀 보는 아주 평범한 독자이다. 그런데 『윙페더 사가 1』는 아주아주 재밌게 읽었다. :)





결말을 조금 남겨두고 인스타 구경하다가 스포 당해서 아쉬웠지만,, 이 포스트에는 마지막에 경고 문구 올리고 스포가 담긴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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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할 때 에어위아 원정대가 어떤 건지 정말 궁금했다. 책을 받아들고는 가장 먼저 찾은 게 에어위아였다. 역시 책 가장 앞에 친절하게 설명이 나온다.



에어위아(Aerwiar) 원정대

에어위아(Aerwiar)는 윙페더 사가 세계관을 지칭하는 말로 이기비 가족이 떠날 모험에 함께하는 독자들을 에어위아 원정대라고 부른다.





『윙페더 사가 1』의 줄거리를 조금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12살 재너 이기비가 주인공이다. 엄마 니어, 남동생 팅크와 여동생 리리, 할아버지 포도, 반려견 너깃과 함께 글립우드 타운에 있는 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악마인 이름 없는 네그가 댕대륙을 점령한 후 암흑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 이기비 가족이 살고 있는 스크리대륙까지 점령했다. 글립우드 타운은 이름 없는 네그의 수하인 팽족의 지배를 받고 있다. 도마뱀을 닮은 팽족은 무기가 될만한 모든 것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한 농기구를 매일 신고하고 빌려야 했다. 글립우드 타운 주민들은 팽의 불합리한 처우에도 저항도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기비 세 남매는 1년에 단 하루 용의 날 축제를 보러 할아버지와 엄마보다 먼저 시내로 나간다. 축제 시작 전 막냇동생 리리가 사라진 것을 알고 재너와 팅크가 리리를 찾아 나선다. 어디선가 리리의 비명소리를 들린다. 이렇게 이기비 가족의 시련과 모험이 시작된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주인공인 『윙페더 사가』는 주인공이 아이들일 뿐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들도 재밌게 볼 수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들

재미난 식물과 동물이 나온다. 토테이토와 쌥쥐가 무척 웃겼다. 토테이토는 아마 토마토와 포테이토를 합쳐서 만든 것 같다. 포도 할아버지를 약 올리는 쌥쥐도 웃겼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도비와 비슷할 거 같은 리지너러인 주재브도 등장한다. 용의 날 축제 때는 암흑의 어두운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용이 나오고 리리와 화음을 맞추는 용의 노래도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가장 웃겼던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설명하는건데 바지를 얼마나 올려입는지 밸트가 턱아래에 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팽족을 묘사할 때는 더럽고 냄새난다고 하여 어디선가 맡은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팽족이 좋아하는 구더기로프를 만드는 설명은 정말이지 몸서리치며 봤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전개

책에서 대놓고 재너의 할아버지 포도가 이야기를 할 때는 긴장감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윙페더 사가 1』 전채 전개도 궁금한 부분을 조금씩 보여주고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보여준다. 긴장감을 줘서 조였다 풀었다 하는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끝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가장 소중한 가족 이야기

재너,팅크,리리 삼 남매와 엄마인 니어, 할아버지인 포도, 반려견 너깃까지 애틋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우 미국적인 가치관이긴 하지만 시대와 국가를 통틀어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족이란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미국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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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페더 사가 1』를 재밌게 본 포인트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맏이의 비애

주인공 재너는 삼 남매 중 첫째이다. 할아버지 포도와 엄마인 니어는 재너에게 동생들을 잘 돌봐줘야 한다고 누누이 가르친다. 재너는 그 말뜻을 알지만 가끔 제멋대로 행동하는 팅크를 따라다니기 힘들고, 다리가 불편한 리리를 배려하며 도와주는 것이 버겁기도 하다. 나도 맏이라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맏이인 재너에게 정말 이입해서 읽었다.






서점과 책

'책과 틈새'라는 서점 주인인 오스카가 인용하는 말이 너무 당연해서 헛웃음이 나온다. 일본 전 총리 아들 같은 재질 이다ㅋㅋㅋ 이기비 삼남매도 책을 좋아한다. 전쟁 후 불타버린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록인 책을 소중히 모으는 모습에서 글과 책이 주는 가치를 어떤 건지 엿볼 수 있다.





깨알 같은 주석

이런 생각 어떻게 하나 싶은 가상의 책과 어원 등을 보는 재미가 있다. 판타지 세계관 설정이 매우 세세한 건 알고 있었지만 『윙페더 사가』에서도 매우 진심이다. 최근에 영화화된 듄 소설에도 이런 설정이 많아서 부록을 열심히 찾아봤었다. 작은 글씨로 적힌 주석을 보는 재미가 있다. 아쉽게도 가제본에는 부록이 없어 정식 출간본에 부록 부분을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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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어요







『윙페더 사가 1』를 재밌게 읽고 다른 판타지 소설은 왜 흥미가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해리포터 주인공은 매우 불쌍한 설정으로 친척 집에서 거의 학대를 당한다. 초반에 조금 나오긴 하지만 이런 모습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주인공인 호빗이고 멋진 주인공이 안 나온다. 흥미가 안 생기는 설정. 그나마 호빗 영화에서 레골라스 아빠 스란두일이 멋져서 재밌게 봤다. 역시 등장인물이 중요하다!



그런데 윙페더 사가는 리리의 아픈 다리 빼고는 설정도 괜찮고 (나중에 사고로 밝혀지지만) 주인공에게 숨겨진 엄청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혈통의 비밀이 있긴 하지만 『윙페더 사가 1』에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어린아이들과 가족이 나온다. 이제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좋다. 어린아이들 특유의 호기심이 이끄는 모험이 성인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요소인 것 같다. 그리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소재인 '책과 틈새'라는 서점이 나오는 것도 맘에 든다. 작가인 앤드류 피터슨은 싱어송라이터로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린다. 그래서 재너,팅크,리리가 배우는 '위대한 세 가지 과목'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설정이 매력 요소이다. 주인공 재너가 왕이 아니라 왕을 지키는 왕좌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보통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선 그런 통념을 비틀어 왕을 수호하는 사람에게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예측불가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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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에 『윙페더 사가 1』이 끝났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무척 궁금해서 2권을 못 기다리고 원서로 볼 것 같다. 번역 빨리해서 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에어위아 원정대 함께 떠나요!






다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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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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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맥도날드에서 새벽시간을 보내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담담한 문체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고 가며 주인공 맥레이디를 이야기한다.



『레이디 맥도날드』 맥레이디의 기구한 사연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두려워하는 일면을 소설로 엿보고 싶어 서기도 했다. 나의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지 못할 경우에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그것과 마주하고 싶었다.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계층 이동, 어마어마한 액수를 내야 가질 수 있는 내 소유의 집,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과 앞으로 닥쳐올 인플레이션이 두려웠다.





맥레이디는 자신을 정돈하고 타인을 배려한다.

집이 없어 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갈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못하다 보니 포기한다. 그러나 맥레이디 김윤자는 최대한 자신을 깔끔하게 정돈한다. 메마른 얼굴을 매만지고, 잔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실핀을 다시 꼽고, 구겨진 옷깃을 매만진다.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잠을 자지 않는다. 그저 앉아서 졸음에 점령당하다 깰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도 싫어한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길을 가면서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고, 카페든 도서관이든 조용하게 행동한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미루기보단 나서서 해결하려 하고, 친구들 사이에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드는 생각은 같은 돈을 내면서, 같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내가 정당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빼앗긴 것 같다. 남을 배려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서로의 배려가 아닌 일방적인 빼앗김. 『레이디 맥도날드』의 김윤자도 그렇게 침해당한다. 배려하는 사람은 자리를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고 나를 지키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한다.






맥레이디는 계속해서 공부한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불어를 배웠고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일간지와 영자신문을 읽는다. 배운 영어를 잊지 않으려 단어와 문장을 바꾸고 연습해 본다. 일간 신문과 영자신문을 보면서 읽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고 사회와 경제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길거리 생활에서 사람을 관찰하면서 배우고 성찰한다.


평생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흥밋거리를 찾는 나에게 『레이디 맥도날드』의 김윤자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가면서 외국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연륜이 쌓이면서 상대를 더 배려 하고 타인을 통해 배우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자신 스스로를 잡는 유일한 끈인 것임을 김윤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맥레이디는 우아함을 선택한다.

식사 대신 버터를 넣은 방탄 커피를, 디저트를 먹는다. 비싼 미용실, 백화점 쇼핑, 조선호텔 레스토랑과 사우나 모두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더 많은 소비를 한다. 우아함을 배웠으나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과거의 나도 경제력보다 많은 소비를 했다. 지금은 운 좋게도 사회와 기업이 조장한 것이란 걸 알아 버렸다. 조금씩 극복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다. 무엇을 위한 우아함일까? 나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디서부터 기인한 만족감일까.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성별일까 계층일까.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안타깝게도 난 사회가 『레이디 맥도날드』의 맥레이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레이디였지만 세상의 단면에 속아넘어가는 똑똑함이다. 이 구절이 이해가 잘 안됐으나 책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간다. 작가가 넣어둔 안타까움도.




그녀는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자신만큼 똑똑하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또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남들도 자기 자신을 특별히 여긴다는 것을. 단지 그녀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ㅣP. 309




능력 있는 직원이어도 여성이기에 직장에선 커피를 타놓고 책상을 닦아야 했다. 할 일 없고 집이 없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이 종로 3가 탑골공원이어도 여성이기에 갈 수가 없었다.




도서관 열람석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났어도 여유 자리가 있다면 최대한 띄어 앉기를 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남성들이 듬성듬성 앉은 자리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그들 사이로 가서 앉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계속해서 훌쩍이며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연신 내는 사람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앉을 기색을 비추면 의자에 올려둔 가방을 치우고 최대한 떨어지려 의자를 당겨 앉는다. 펜 뚜껑을 조심히 열고 책상에 물건을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둔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가득해서 마음이 편하다.




김윤자의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팔았다. 동생 김윤자는 살 곳을 구하지 못했다. 그동안 유지했던 삶이 몇 년 안에 무너졌다. 그동안 고수한 삶의 방식은 김윤자를 거리로 보냈다. 그리고 거리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게 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김윤자 죽음을 준비했다. 코팅된 메모를 갖고 다녔고, 장례에 보탤 작은 비용을 품고 다녔다. 죽음을 준비할 노력을 삶에 썼더라면 생각했지만, 이미 본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스스로를 속였고 속아주고 살았을 것이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슬프다. 자신을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길거리로 내몬 사회가 무섭다. 책임져야 할 몫이 커서 두렵다.



한은형 소설가가 조사하고 표현한 글이 매우 정교하다. 김윤자가 살았을 20대의 삶이 자세히 나온다. 일본 영화와 장면 묘사, 그시대 유명했을 연예인들과 광화문 일대의 모습. 2015-16년의 조선호텔과 레스토랑. 각자의 시선으로 본 생각과 경험이 실제보다 더 실제 같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한은형 소설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느낌 마음이 독자인 내가 느낀 것과 같아 조금 놀랐다. 다른 독자들도 이 마음을 갖고 이 책을 보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쯤 이 책을 보면 좋겠다.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고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면서 낯선 이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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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자신만큼 똑똑하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또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남들도 자기 자신을 특별히 여긴다는 것을. 단지 그녀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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