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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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맥도날드에서 새벽시간을 보내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담담한 문체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고 가며 주인공 맥레이디를 이야기한다.



『레이디 맥도날드』 맥레이디의 기구한 사연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두려워하는 일면을 소설로 엿보고 싶어 서기도 했다. 나의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지 못할 경우에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그것과 마주하고 싶었다.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계층 이동, 어마어마한 액수를 내야 가질 수 있는 내 소유의 집,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과 앞으로 닥쳐올 인플레이션이 두려웠다.





맥레이디는 자신을 정돈하고 타인을 배려한다.

집이 없어 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갈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못하다 보니 포기한다. 그러나 맥레이디 김윤자는 최대한 자신을 깔끔하게 정돈한다. 메마른 얼굴을 매만지고, 잔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실핀을 다시 꼽고, 구겨진 옷깃을 매만진다.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잠을 자지 않는다. 그저 앉아서 졸음에 점령당하다 깰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도 싫어한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길을 가면서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고, 카페든 도서관이든 조용하게 행동한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미루기보단 나서서 해결하려 하고, 친구들 사이에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드는 생각은 같은 돈을 내면서, 같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내가 정당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빼앗긴 것 같다. 남을 배려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서로의 배려가 아닌 일방적인 빼앗김. 『레이디 맥도날드』의 김윤자도 그렇게 침해당한다. 배려하는 사람은 자리를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고 나를 지키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한다.






맥레이디는 계속해서 공부한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불어를 배웠고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일간지와 영자신문을 읽는다. 배운 영어를 잊지 않으려 단어와 문장을 바꾸고 연습해 본다. 일간 신문과 영자신문을 보면서 읽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고 사회와 경제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길거리 생활에서 사람을 관찰하면서 배우고 성찰한다.


평생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흥밋거리를 찾는 나에게 『레이디 맥도날드』의 김윤자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가면서 외국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연륜이 쌓이면서 상대를 더 배려 하고 타인을 통해 배우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자신 스스로를 잡는 유일한 끈인 것임을 김윤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맥레이디는 우아함을 선택한다.

식사 대신 버터를 넣은 방탄 커피를, 디저트를 먹는다. 비싼 미용실, 백화점 쇼핑, 조선호텔 레스토랑과 사우나 모두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더 많은 소비를 한다. 우아함을 배웠으나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과거의 나도 경제력보다 많은 소비를 했다. 지금은 운 좋게도 사회와 기업이 조장한 것이란 걸 알아 버렸다. 조금씩 극복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다. 무엇을 위한 우아함일까? 나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디서부터 기인한 만족감일까.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성별일까 계층일까.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안타깝게도 난 사회가 『레이디 맥도날드』의 맥레이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레이디였지만 세상의 단면에 속아넘어가는 똑똑함이다. 이 구절이 이해가 잘 안됐으나 책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간다. 작가가 넣어둔 안타까움도.




그녀는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자신만큼 똑똑하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또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남들도 자기 자신을 특별히 여긴다는 것을. 단지 그녀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ㅣP. 309




능력 있는 직원이어도 여성이기에 직장에선 커피를 타놓고 책상을 닦아야 했다. 할 일 없고 집이 없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이 종로 3가 탑골공원이어도 여성이기에 갈 수가 없었다.




도서관 열람석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났어도 여유 자리가 있다면 최대한 띄어 앉기를 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남성들이 듬성듬성 앉은 자리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그들 사이로 가서 앉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계속해서 훌쩍이며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연신 내는 사람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앉을 기색을 비추면 의자에 올려둔 가방을 치우고 최대한 떨어지려 의자를 당겨 앉는다. 펜 뚜껑을 조심히 열고 책상에 물건을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둔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가득해서 마음이 편하다.




김윤자의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팔았다. 동생 김윤자는 살 곳을 구하지 못했다. 그동안 유지했던 삶이 몇 년 안에 무너졌다. 그동안 고수한 삶의 방식은 김윤자를 거리로 보냈다. 그리고 거리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게 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김윤자 죽음을 준비했다. 코팅된 메모를 갖고 다녔고, 장례에 보탤 작은 비용을 품고 다녔다. 죽음을 준비할 노력을 삶에 썼더라면 생각했지만, 이미 본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스스로를 속였고 속아주고 살았을 것이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슬프다. 자신을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길거리로 내몬 사회가 무섭다. 책임져야 할 몫이 커서 두렵다.



한은형 소설가가 조사하고 표현한 글이 매우 정교하다. 김윤자가 살았을 20대의 삶이 자세히 나온다. 일본 영화와 장면 묘사, 그시대 유명했을 연예인들과 광화문 일대의 모습. 2015-16년의 조선호텔과 레스토랑. 각자의 시선으로 본 생각과 경험이 실제보다 더 실제 같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한은형 소설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느낌 마음이 독자인 내가 느낀 것과 같아 조금 놀랐다. 다른 독자들도 이 마음을 갖고 이 책을 보겠지.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쯤 이 책을 보면 좋겠다.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고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면서 낯선 이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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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자신만큼 똑똑하다는 걸 알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또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남들도 자기 자신을 특별히 여긴다는 것을. 단지 그녀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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