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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가로막힌 오또
모 구티에레스 세레나 지음, 임유진 옮김 / 곰세마리 / 2024년 1월
평점 :
당신의 담장은 안녕하신가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모 구티에레스 세레나 지음, 곰세마리, 2024)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는 무언가를 배우러 갈 때 발걸음이 설레지요.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건 설레고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는 일이거든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에 나오는 강아지 오또는 봄이 되면 산딸기를 따 먹으러 갈 때 참 즐겁습니다. 길고 긴 담장을 따라 좁은 길을 달려도 담장이 높은지, 길이 좁은지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요. 오또는 자신이 원하는 하나, 산딸기를 충분히 따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는 봄날 긴 담장을 따라 산딸기를 따러 가는 오또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또가 가는 길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 하나가 떡하니 막아버렸지 뭐예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지요. 오또는 ‘대체 이 바위는 왜 여기 있는 거야’라며 바위를 원망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보았지만, 바위는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짠하고 바위가 사라지기를 기도하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급기야 커다란 바위를 굴려 보낸 산이 미워지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운이 한탄스럽습니다. 온 세상이 원망스럽고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요. 씩씩대던 오또는 이제 다시는 산딸기를 먹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지쳐 바위에 기대 쉽니다.
무언가 내가 가는 앞 길을 막는다면 여러분은 어떨까요? 오또처럼 길을 막은 대상을 원망하고 급기야는 뭘 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화를 불러오기도 하지요. 화는 차분히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극상의 분노 속에서는 사유하기 어렵거든요. 생각, 사유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을 때 가능해요. 오또가 바위 옆에 앉아 쉴 때처럼이요. 오또는 바위에 기대어 쉬면서 다음으로 움직일 힘을 얻습니다. 쉰다는 것은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할 수 있게 하거든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바로 아래가 아닌 옆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바위를 올라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본문에서
바위 위로 올라간 오또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지금까지 봤던 세상 그 너머를 보았을까요?
바위에 올라가 내려다본 세상은 오또가 지금까지 봐 온 담장 안 세상은 아니었을 거예요. 오또는 길 한가운데 바위가 가로막기 전부터 이미 담장 안에 갇힌 오또였지요. 아무런 장애 없이 산딸기를 따 먹을 수 있었던 담장 안 세상은 오또에게 그저 안락하고 안정된 생활이었지요. 안정된 삶은 평온하기는 하지만 물음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잖아요. 긴 담장은 오또를 보호하는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는 가림막이기도 했어요. 오또가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담장은 오또를 가로막았던 바위 이전의 가림막 담장은 아니었을까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가림막 담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바위,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은 바위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절망일 때 희망을 노래하고, 슬플 때 기쁨을 이야기하지요. 캄캄한 어둠일 때 별이 더 반짝이듯 길 한가운데를 막은 바위 덕분에 가로막은 긴 담장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지요. 오또가 만난 바위는 골치 아픈 문제, 절망에만 해당했을까요. 오또가 커다란 바위, 움직이지 않는 바위를 만나지 않았다면 담장 너머로 슈우웅 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나 삶에서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그 안락함에 젖어 보호막인 듯 가림막인 담장을 알아채지 못하지는 않은지요?
당신의 담장은 안녕하신가요?
이 그림책은 경쾌함으로 시작해 중간중간 오또의 감정을 여과 없이 비춰줍니다. 덕분에 오또의 표정만으로 여러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회색의 바위는 오또에게 더 묵직한 문제로 다가가기도 합니다. 오또보다 몇 배나 크게 그려진 크기 또한 오또가 처한 문제 상황을 두드러지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작은 오또가 더 작게 보이고, 문제 앞에서 더 절망스러워하는 극적인 효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림책 판형은 귀여운 오또와 참 잘 어울립니다. 하얀색의 여백과 간결한 그림은 작은 판형에서 올 수 있는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간단한 색을 사용했지만 색감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 귀여운 그림책이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 한동안 곁에 두고 자주 펼쳐 볼 듯합니다.
봄이 오면 오또는 담장을 따라 좁은 길을 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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