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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와 장난감 쥐 - 1970년 칼데콧 아너 상 수상작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61
레오 리오니 지음,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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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누군가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친다면...

 

알렉산더는 새앙쥐다. 사람들은 알렉산더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기겁을 한다. 그저 배가 고파 음식 부스러기를 조금 주워 먹으려고 한 것뿐인데 말이다. 반면 윌리는 애니가 좋아하는 장난감 쥐다. 사람들이 태엽을 감아 줘야만 움직일 수 있다. 어느 날 윌리를 본 알렉산더는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장난감 쥐가 되고 싶다.

 

레오 리오니의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시공주니어, 2019)의 원제는 Alexander and the Wind-Up Mouse이다. 1969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1970년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9911'마루벌'에서 <새앙쥐와 태엽쥐>로 번역되었으며, 20196'시공주니어'에서 원제에 가까운 제목으로 새롭게 옷을 입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알렉산더는 "나도 윌리처럼 장난감 쥐여서 사람들이 안아 주고 사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매일 쫓겨 다니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랑만 받는다면 사람들이 태엽을 감아줘야 움직일 수 있는 장난감 쥐여도 괜찮다. 해서, 누구든 원하는 동물로 변신 시켜준다는 마법사 도마뱀을 찾아간다. 도마뱀은 둥근 달이 뜨는 밤에 보라색 조약돌을 찾아서 오라고 한다. 간절한 소망을 품은 알렉산더는 날마다 정원을 뒤지며 보라색 조약돌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보라색 조약돌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보라색 조약돌을 찾다 지쳐 집으로 돌아 온 알렉산더는 상자에서 망가지 인형들 사이에 껴 있는 윌리를 본다. 그리고 그 상자 옆에서 그토록 찾던 보라색 조약돌을 발견한다. 알렉산더는 보라색 조약돌을 가지고 도마뱀을 찾아간다. 도마뱀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잠시 생각에 빠진 알렉산더는 "윌리를 저 같은 진짜 쥐로 만들어 주시겠어요?"라고 주문한다. 알렉산더는 윌리의 삶을 위해 자신의 소망을 내려놓는다.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자신의 고단한 삶보다 친구의 곤경을 먼저 생각한다. 레오 리오니는 이 둘의 우정과 알렉산더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이에 독자들은 행간에서 느껴지는 알렉산더의 마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우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레오 리오니, 그가 그림책을 끌고 가는 힘이지 않을까.

 

너 누구니?

 

그림책은 질문한다. 알렉산더와 윌리, 그리고 독자들에게. 우리는 고달프고 지치는 상황일 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하지만 자발적 노예가 되기도 한다. 자신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모른 체 말이다. 알렉산더는 쫓겨 다니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기에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 한다. 정체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적 자세와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형성하는 내면적 상태를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고 장난감 쥐의 삶을 추구했던 세상의 알렉산더에게 정체성은 먼 나라 이야기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정체감을 인식하려면 자신을 알고 있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알렉산더가 자신과 윌리의 정체성을 찾아 줄 수 있었던 건 윌리라는 거울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런지.

    

 

50년이 훌쩍 넘은 그림책이다. 반세기를 지난 그림책이지만 레오 리오니의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21세기에 사는 독자들에게도 유효하다. 우화의 거장답게 생쥐라는 캐릭터로 작가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탈피한다. 레오 리오니는 손으로 찢어 붙이거나 가위로 자르는 콜라쥬 기법으로 시각적 입체감과 촉감을 느끼게 한다. 생쥐의 몸 부분을 옷 패턴처럼 자른 단순한 선과 형태, 색상과 레이아웃은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색채와 조화를 이룬다. 1960년대에도 2020년 현재도, 현대인들이 삶에서 놓쳐서는 안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는 늘 새롭게 읽히는 그림책의 고전이다.

 

너 누구니?”

    

https://blog.naver.com/rkh0918/22183152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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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가로막힌 오또
모 구티에레스 세레나 지음, 임유진 옮김 / 곰세마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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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담장은 안녕하신가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모 구티에레스 세레나 지음, 곰세마리, 2024)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는 무언가를 배우러 갈 때 발걸음이 설레지요.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건 설레고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는 일이거든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에 나오는 강아지 오또는 봄이 되면 산딸기를 따 먹으러 갈 때 참 즐겁습니다. 길고 긴 담장을 따라 좁은 길을 달려도 담장이 높은지, 길이 좁은지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요. 오또는 자신이 원하는 하나, 산딸기를 충분히 따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는 봄날 긴 담장을 따라 산딸기를 따러 가는 오또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또가 가는 길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 하나가 떡하니 막아버렸지 뭐예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지요. 오또는 대체 이 바위는 왜 여기 있는 거야라며 바위를 원망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보았지만, 바위는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짠하고 바위가 사라지기를 기도하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급기야 커다란 바위를 굴려 보낸 산이 미워지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운이 한탄스럽습니다. 온 세상이 원망스럽고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요. 씩씩대던 오또는 이제 다시는 산딸기를 먹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지쳐 바위에 기대 쉽니다.

 

무언가 내가 가는 앞 길을 막는다면 여러분은 어떨까요? 오또처럼 길을 막은 대상을 원망하고 급기야는 뭘 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화를 불러오기도 하지요. 화는 차분히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극상의 분노 속에서는 사유하기 어렵거든요. 생각, 사유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을 때 가능해요. 오또가 바위 옆에 앉아 쉴 때처럼이요. 오또는 바위에 기대어 쉬면서 다음으로 움직일 힘을 얻습니다. 쉰다는 것은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할 수 있게 하거든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바로 아래가 아닌 옆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바위를 올라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본문에서

 

바위 위로 올라간 오또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지금까지 봤던 세상 그 너머를 보았을까요?


바위에 올라가 내려다본 세상은 오또가 지금까지 봐 온 담장 안 세상은 아니었을 거예요. 오또는 길 한가운데 바위가 가로막기 전부터 이미 담장 안에 갇힌 오또였지요. 아무런 장애 없이 산딸기를 따 먹을 수 있었던 담장 안 세상은 오또에게 그저 안락하고 안정된 생활이었지요. 안정된 삶은 평온하기는 하지만 물음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잖아요. 긴 담장은 오또를 보호하는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는 가림막이기도 했어요. 오또가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담장은 오또를 가로막았던 바위 이전의 가림막 담장은 아니었을까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가림막 담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바위,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은 바위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절망일 때 희망을 노래하고, 슬플 때 기쁨을 이야기하지요. 캄캄한 어둠일 때 별이 더 반짝이듯 길 한가운데를 막은 바위 덕분에 가로막은 긴 담장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지요. 오또가 만난 바위는 골치 아픈 문제, 절망에만 해당했을까요. 오또가 커다란 바위, 움직이지 않는 바위를 만나지 않았다면 담장 너머로 슈우웅 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나 삶에서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그 안락함에 젖어 보호막인 듯 가림막인 담장을 알아채지 못하지는 않은지요?

 

당신의 담장은 안녕하신가요?

 

이 그림책은 경쾌함으로 시작해 중간중간 오또의 감정을 여과 없이 비춰줍니다. 덕분에 오또의 표정만으로 여러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회색의 바위는 오또에게 더 묵직한 문제로 다가가기도 합니다. 오또보다 몇 배나 크게 그려진 크기 또한 오또가 처한 문제 상황을 두드러지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작은 오또가 더 작게 보이고, 문제 앞에서 더 절망스러워하는 극적인 효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림책 판형은 귀여운 오또와 참 잘 어울립니다. 하얀색의 여백과 간결한 그림은 작은 판형에서 올 수 있는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간단한 색을 사용했지만 색감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 귀여운 그림책이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바위에 가로막힌 오또, 한동안 곁에 두고 자주 펼쳐 볼 듯합니다.

 

봄이 오면 오또는 담장을 따라 좁은 길을 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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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뭐 먹었냐고 묻지 마라 가족그림책 5
박티팔 지음, 보람 그림 / 곰세마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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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점심때 뭐 먹었어?

- 김치찌개.


딸과의 대화다.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물음표 다음 바로 마침표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딸의 물음에 “고기 뺀 김치찌개”라고 답했다면, 바로 마침표가 붙지는 않았을 터. 고기를 뺐다는 말에 궁금증과 상상력이 따라올 수도.


『점심때 뭐 먹었냐고 묻지 마라』(박티팔 글, 보람 그림, 곰세마리, 2023)는 박티팔 작가의 첫 그림책이다. 티팔? ‘티팔’은 무슨 뜻일까? 박티팔 작가는 정신과 임상 심리사이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스키조티팔 퍼스널리티 디스오더Schizotypal Personality Disorder’에서 따온 필명이라고 한다. 이 그림책은 아이가 엄마한테 점심에 뭐 먹었는지 물으면서 시작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이야기가 길다며 소파에 앉아보라고 한다. 점심에 좋아하지 않는 꽁치가 반찬으로 나와 밥을 쪼끔 먹었던 엄마. 시간이 지나 배가 출출해지자 엄마는 호두과자를 사러 간다. 회사 근처 ‘다 있어 빵집’에 물으니 간판과는 달리 호두과자는 없다.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한테 물으니 호두과자를 왜 여기에서 묻냐며 “천안으로 가 봐요!”라고 한다.






엄마는 호두과자를 사러 천안으로 갔을까. 이 그림책 속 엄마는 간다. 엄마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꼬박 삼 일 밤낮을 걸어 드디어 ‘다람쥐도 울고 갈 맛있는 천안 호두과자’ 가게에 도착한다. 드디어 맛있는 호두과자를 먹겠구나 싶었는데 호두과자 가격이 심상찮다.


호두과자 가격

호두 농장에서 일하기


호두과자를 먹으려면 호두나무부터 심어야 한단다. 씨앗을 심고 잭과 콩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란 호두나무에서 호두를 따 엄마의 하이힐로 호두까기까지.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줄을 서고 호두과자를 받아먹고, 드디어 엄마 차례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두과자를 입에 막 넣으려는데... 엄마는 호두과자를 먹었을까.


『점심때 뭐 먹었냐고 묻지 마라』는 상상력 갑이다. 평소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박티팔 작가는 아이들과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상상을 더해 들려준다고 한다. 티팔 작가의 이런 실제 경험이 씨앗이 되어 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림책은 일상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그린다. 이런 장면을 보고 어떤 독자는 뭐야, 개연성이 없는걸 할 수도. 어떤 이들은 오호 어떻게 이런 상상을,라며 감탄할 수도 있다. 32쪽의 짧은 그림책에 담긴 상상력은 결코 짧지 않다. 상상력은 창의력을 동반하고 그저그런 대화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티팔 작가의 글에 보람 작가의 유머스러운 그림은 이 그림책의 재미를 한껏 더한다. 강을 건너 호두과자를 사러 가는 그림은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보람 작가가 이모티콘 작가로 활동해서일까, 그림은 크고 시원시원하면서도 귀엽다. 그림책에서 말하는 상상력을 그림이 한껏 고조시킨다. 그림 곳곳에 보물 찾기를 하듯 숨겨진 소소한 그림은 이 그림책의 또 다른 재미다.


답답한 현실인가. 아이와 소소한 대화가 그리운가. 그렇다면 이 그림책을 펼쳐보는 것도 괜찮으리. 유쾌한 상상이 그저 그런 일상을 조금은 특별한 날로 만들 수도. 호두과자를 사러 가는 엄마의 모험담 아닌 모험담을 듣다보면 어느새 호두과자를 사러 천안으로 가고 있을 수도.


당신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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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이디스 워튼 지음, 최현지 옮김, 하성란 추천 / 엑스북스(x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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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도롱뇽을 만나고 싶다면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디스 워튼, 엑스북스, 2023)

예약 구매를 했다. 모든 책을 예약 구매하지는 않지만 때마침 글쓰기 도반들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기였고, 무엇보다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디스 워튼, 엑스북스, 2023)이란 책 제목이 궁금했다. 이 에세이의 원제는 The Writing of Fiction이다. 사뭇 다른 느낌의 제목을 앉힌 이유는 뭘까. 번역서의 제목이 품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번역서의 책 제목에 묘한 끌림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이디스 워튼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소설 쓰기’에 대해 말한다. 소설은 무엇이며, 단편소설은 어떻게 쓰고 구성하며, 인물과 상황은 어떻게 전개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알고 적용하면 좋을 방법들을 발자크, 스탕달,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이해가 잘 되기도 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읽은 책을 사례로 언급하면 반갑기까지. 특히 마르셀 프루스트는 5장, 한 장을 할애한다. 이는 “프랑스 문화의 일반적인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문학 지식을 자신만의 특별한 시야와 결합”(160쪽) 하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수용된 형식을 활용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프루스트만의 힘은 아닐까. 프루스트의 힘은 무엇일까, 도롱뇽일까.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디스 워튼, 엑스북스, 2023, 61쪽)

누구나 소설은 쓸 수 있다. 나도 쓸 수 있고, 당신도 쓸 수 있다. 아니 이미 우리들은 소설가일 수도. 누구나 이야기는 쓸 수 있지만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도롱뇽, 독자의 마음을 순간 사로잡는 그 무엇은 아무나가 아니다. 이디스 워튼은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이야기의 영혼인 도롱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을 쓸 때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안내한다. 생생한 도입부로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현재성과 생생함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오랫동안 충분히 바라보고 작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어떤 주제든 그것을 온전히 발현하려면 오랫동안 품고 생각하며 창작자가 길러온 모든 인상들과 감정들로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라는 이디스 워튼의 메시지이기도. 자신을 마주하고 부서질 수 있는 내면을 가질 때 진정한 독창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 있다 하니 말이다.

이 책은 1925년 생이다. 100여 년, 한 세기가 되었다. ‘소설 쓰기’의 고전인 셈이다. 문학도 아니고 에세이가 100여 년, 고루하고 진부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단언컨대, 진부하지도 고루하지도 않다. 반짝반짝 통통은 아니지만, 100여 년 전의 이디스 워튼이 짚는 소설의 요소는 현재 소설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디스 워튼은 “소설가가 영원히 고민할 문제는 인물들을 전형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하게 만드는 것이다”(149쪽)라고 했다. 이 말은 소설 작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 실제로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100여 년 전 여성 작가이다. 충분히 전형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디스 워튼은 개별성과 특수성을 발현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탐구하고 논의한다. 이 책은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 성취된 것이다.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디스 워튼, 엑스북스, 2023, 183쪽)

당신의 소설에서 도롱뇽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디스 워튼의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디스 워튼, 엑스북스, 2023) 은 어떤가. 이 책이 당신에게, 당신의 소설 쓰기에 가치 있는 그 무엇으로 자리 할 수도. 또한 내 삶에 질문이 생기는 독자라면 그저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내 삶의 적용으로 사유할 수도 있다. 내 삶에는 살아 움직이는 도롱뇽이 있는가.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어떤 주제로 구성하고 있는지, 나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를 사유하게 될 터이니.

당신의 소설, 당신의 삶에서 도롱뇽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살아 움직이는 도롱뇽을 만날 수도.


소설의 관행을 다룬다는 것은 가장 새롭고, 가장 변화무쌍하며, 가장 덜 공식화된 예술을 다루는 일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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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진태원 지음 / 그린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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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을 오디오북으로 듣거나 읽고 '사기다, 장난질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책을 읽는 이라면 책값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관점을 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는 USB가 유용했습니다. 오디오로 듣고 책을 읽으니 훨씬 도움 되기도 했고요. 저자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으로 오디오북은 더없이 반가웠고, 녹음하면서 고생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USB 오디오를 들어보셨으면 저자의 목소리가 간간이 잠기는 걸 느낄 수 있지요. 


저자가 서문에서 "쉬우면서도 충실한 개론서, 아마도 모든 개론서가 지향하는 것일 이 목표는 이 책이 또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의 전부입니다"라고 밝혔듯이 이 책은 쉬우면서도 충실한 개론서였습니다. 오디오북은 이동하면서 수시로 반복 듣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정판이라 아쉬웠지만 이런 구성을 해준 저자와 출판사가 있다는 건 독자로서 고마운 일이지요. 


스피노자 윤리학은 천천히 최소 10번은 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스피노자 윤리학이 마냥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라면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을 권합니다. 여기에 오디오북을 같이 듣는다면 더 재미난 읽기, 공부가 되겠지요. 올해 곁에 두고 읽고 들을 책 중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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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마음 2022-02-23 15: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꾸 ‘초판 한정 usb 증정’이라고 하시는데, 책 표지에 ‘오디오 x 북 초판한정’이라고 인쇄되어 있지요. 님이 말하는 ‘증정’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물건 따위를 성의 표시나 축하 인사로 줌” ‘한정’은 “수량이나 범위 따위를 제한하여 정함. 또는 그런 한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살펴보세요. 제가 ‘증정’ ‘한정’ 까지 구분을 해 가면서 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강조를 하시니 짚습니다.

님 말처럼 USB가 필요 없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럼 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이 책을 사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제가 저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출판사 직원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제가 책을 사라 마라 강요를 하겠습니까. 전 그저 독자일 뿐입니다.) 설령 제가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고 한들 책을 읽고 읽지 않고 또한 개인이 선택하고 판단할 일이지요.

사생팬덤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고 했지 팬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성을 상실한 비논리적 주장을 자랑스럽게 해대며 상대를 무지성의 장문으로 비방하신다고 하셨는데 님이 하는 이것이 상대를 비방하는 것이고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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