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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 - 2025 볼로냐 라가치 어메이징 북쉘프 지속가능성 부문 선정작 ㅣ 작은별밭그림책 20
린롄언 지음, 김예원 옮김 / 섬드레 / 2024년 12월
평점 :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 한 끗
『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린롄언 지음, 김예원 옮김, 섬드레, 2024)
어느 날, 마당 앞 숲에 죽은 나무가 보였다. 겨울 나목이었을 때 잘 보이지 않았던 나무였다. 옆에 선 나무의 나뭇잎이 푸르러지자 부러져 꺾인 나무의 모습은 무참했다. 보기 싫었다. 차라리 나무가 베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때로 마음 불편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은 눈 감고 싶고 멀리하고 싶다. 모른 척 무관심으로 눈 돌리고 싶다. 『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린롄언 지음, 김예원 옮김, 섬드레, 2024)의 주인공 달시 씨도 그랬을까. 이 그림책은 분홍 나무의 밝은 표지와 달리 시작되는 면지부터 어둡다.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는 2021년 책 『집』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타이완 작가 린롄언의 작품이다. 그는 아크릴 물감, 수성 크레용, 콜라주 기법 등을 이용해 순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창작의 주제로 삼는다고 한다. 이 그림책은 오랫동안 모아온 솔방울 천만 개를 써서 분홍 나무에 집을 짓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달시 씨가 주인공이다. 달시 씨는 종종 밖으로 나가 꽃과 풀을 캐와 자신의 집을 꾸미고,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책 읽는 평화로운 시간을 좋아한다. 어느 날 꽃을 따기 위해 집을 나선 달시 씨는 숲에서 쓰러진 나무를 만나고, 새들이 웅성거리며 숲을 망가뜨리는 독벌레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모습에 무관심하다. 그저 자신의 평화로운 시간을 깨는 소음으로만 들렸고, 별일 아닌 것에 대한 그들의 호들갑으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무 일 없을 것이라며 일상을 이어간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본문에서)
앞의 문장은 두 개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위로의 문장으로, 또 하나는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도 읽을 수 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이라면 따뜻함이 전달되어 상대가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숲에 독벌레가 나타나고 이상한 냄새가 퍼져 코를 막는 상황에서의 별일 없을 거라는 말은 그저 안일한 태도, 무관심에 해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달시 씨는 왜 숲, 공동체에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할까. 숲에 들어온 지 2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그는 왜 숲속 동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관심 없는 것일까.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안일한 삶의 태도 때문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 꿈틀대는 독벌레를 마주할 용기를 피한다면 독벌레를 더 살찌우게 하고, 결국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삶은 무참히 짓밟히고 공동체 또한 위협당하지 않을까. 달시 씨의 부드러운 아침이 “늘 그랬듯”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가 일상에 깨어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스스로 나만은 괜찮겠지, 하는 무관심과 오만에서 벗어날 때 말이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달시 씨’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라는 ‘오만’한 인물에서 착안했다고 작가는 밝혔다. 달시 씨, 그는 오만과 편견에 휩싸인 인물일까. 그가 오만했다면 무엇이었을까. 그림책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때로 눈감고 피하고 싶은 장면으로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다. 어떤 독자는 그림책에서까지 이런 묵직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독벌레는 무엇이며, 나는 달시 씨는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섬드레’ 출판사는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중화권 그림책을 다수 번역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부분, 삶의 질문을 품은 그림책을 종종 독자 앞에 데려다 놓는다.
이 그림책 또한 묵직하다. 작가는 그림책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그림과 색감으로 이 묵직한 질문들을 풀어놓는다. 『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는 보는 이에 따라 예쁘거나 아름다운 그림체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어두운색의 숲은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한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질문한다. 어려움 앞에서 숲속 새들은 연대한다. 마치 얼굴도 이름도 없는 의병처럼 용맹한 전사가 되어. 덧붙여 이 그림책에서 눈여겨 볼 점은 그래픽노블 형식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면의 분할로 달시 씨의 행동과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림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림책에서 그림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그림책을 처음 번역했다는 김예원 번역가는 번역을 하기 위해 수없이 이 그림책을 마주한 모양이다. 마치 국내 그림책처럼 자연스러운 번역은 그림책 독자들의 손길을 닿게 한다. 그림으로만 이야기하는 열린 결말 또한 독자로 하여금 상상과 사유하게 한다. 해서 이 그림책을 마주한 독자는 더 다양한 생각거리를 품지 않을까.
관심과 무관심은 한 끗 차이다. 한 끗은 비단이나 무명천을 한 번 접은 만큼의 아주 작이 길이다. 이 작은 한 끗이 모여 비단 한 필이 되듯 한 끗의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서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존속을 좌지우지 할 수도. 연대, 공동체, 소통, 공존, 문제 해결 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의 주제어 그림책을 찾는 독자라면 펼쳐보길 권한다. 여러 질문과 사유로 그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 에 그치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