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와 코뿔소 날개달린 그림책방 60
노에미 슈나이더 지음, 골든 코스모스 그림, 이명아 옮김 / 여유당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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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은 엄마의 2주기 기일이었다. 다시 말해, 엄마를 못 본 지 2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재에서 존재한다는 말처럼 엄마가 떠나고 엄마를 더 많이 생각하고 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늘 내 안에 존재한다.

존재와 부재, 부재와 존재. 있다와 없다, 없다와 있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것처럼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 희미한, 섞여있는 그 어디쯤을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수평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처럼 내게 철학은 굉장히 관념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해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철학이라고 말하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철학이 뭔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내게 그림책 <루트비히와 코뿔소>가 그랬다. 알쏭달쏭 관념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재 내가 천착하는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를 사유하게 했다.


<루트비히와 코뿔소>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의 코뿔소가 있다 없다 논쟁을 모티브로 한다. 이 그림책은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 방에 온 아빠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루트비히를 보고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코뿔소랑요.

<루트비히와 코뿔소> 본문에서

아빠는 루트비히 방에서 코뿔소를 볼 수 없었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트비히는 책상 아래, 침대 밑, 옷장 안에 코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빠는 왜 루트비히 방에 코뿔소가 없다고 하는 걸까, 그는 왜 보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아빠의 말처럼 정말로 방에 코뿔소가 없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고정관념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잘 변하지 않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은 생각이나 행동을 견고하게 묶는다. 자유로움에서 멀게 하는 특징이 있다. 코뿔소는 덩치가 크다. 그러니 방 안에 살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미 여기서부터 코뿔소는 방에서 볼 수 없는 대상이 된다. 그러니 있다고 한들 아빠의 눈에 보이겠는가. 여기서 작가는 이 그림책을 보는 독자에게 질문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가?

루트비히는 묻는다. 그럼 달은 보이냐고. 아빠는 “지금까지 달을 천 번도 넘게 봤으니까 지금 서 있는 곳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오늘도 달은 있어”라고 한다. 덧붙여, 아빠는 지금 저쪽에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알고는 있”다고 한다. 경험한다는 것을 무엇일까. 잦은 경험으로 그 무엇을 확정 짓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증명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어떤 차이점일까. 방에 있는 코뿔소를 본 적이 없다고 코뿔소가 방에 없다고, 앞으로 절대 방에 없을 거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없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을까?

이 그림책에서 아이들의 유연한 상상력에 반해 어른의 견고한 사고를 마주할 것이다. 무디어진 감각과 고정관념에 의한 논리가 어떤 벽을 만드는지 사유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고 대화하는 아빠의 태도는 중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고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아빠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고정관념으로 코뿔소는 방에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아빠는 루트비히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코뿔소가 방에 있다는 아이에 말에 여기저기 찾아본다. 상상력은 윽박이 아닌 질문하고 사유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질문으로 꽉 찬 그림책은 읽고 보는 내내 철학 해 보기를 권한다. 그림책은 많은 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빨강, 파랑, 노랑 세 가지 색깔로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린다. 그림 작가 골든 코스모스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빛과 그림자로 사물과 공간을 정의하고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림의 리듬을 설정한다. 또한 그림자 속 코뿔소는 무형의 상상력을 상징’하고, 루트비히의 명료한 자기주장은 붉은 형광색 머리카락 색깔로 드러낸다. 이 그림책의 또 다른 재미는 루트비히 잠옷에 그려진 코뿔소 패턴이다. 코뿔소 그림은 빛의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이는 이 책이 시종일관 말하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할 수 있는가’와 일맥 상통한다.

2년 전 소풍을 떠난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엄마는 없는 것일까?

밤 하늘의 달을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그리울 때면 집장을 먹는다. 엄마는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소풍을 떠난 지금도. 나는 엄마가 없다고 증명할 수 없다. 엄마는 늘 내 곁에 내 마음에 있으니, 그리움의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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