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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알랭드보통의 주절주절 문단 끝에는 그래도 촌철살인 메시지가 있다. '뉴스미디어의 이해' 등과 같은 학부 3학점 교양강좌 정도 들으면 중간고사에 나올법한 내용을 한권에 책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 예전 신앙이 하던일을 이제 뉴스가 하고 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식을 전하면서 그 일이 착한건지, 나쁜건지 가치판단을 하고 심지어 나쁜 일을 한 사람은 혼을 내주고 착한일을 한 사람은 칭찬해주기까지 바란다. 언론에게 말이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뉴스는 우리가 한때 신앙심을 품었을 때와 똑같은 공손한 마음을 간직하고 접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역시 뉴스에서 계시를 얻기 바란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인인지 알기를 바라고, 고통을 헤아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존재의 이치가 펼쳐지는 광경을 이해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 의식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경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프롤로그 11쪽)
- 아침에 눈을 뜨고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이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지구 저 멀리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데 비해 자신의 일상이 매우 정상적임을 깨닫고 안도하려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다.
"어째서 우리 대중들은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걸까? ....이런 사건들은 분명 말도 안되는 일인지라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정상적이고 축복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뉴스를 접하고 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의 쳇바퀴 앞에서,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우리가 정말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인 결코 없는 자신의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16쪽)
- 독재자들이 뉴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우리나라.
"권력을 공고히 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 통제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그 또는 그녀는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단신을 흘려보내게만 하면 된다. 뉴스의 가짓수는 엄청나되 사건의 배경이 되는 맥락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고, 뉴스 속 의제를 지속적으로 바꾸며, 살인자들과 영화배우들의 화려한 행각에 대한 기사를 끊임없이 갱신하여 사방에 뿌림으로써, 바로 조금 전 긴급해 보였던 사안들이 현실과 계속 관계를 맺은 채 진행중이라는 인식을 대중이 갖지 않도록 조처하기만 하면 된다." (37쪽)
- 뉴스란 무방비로 받아들여야할 진리가 아니라 아니라, 어떤 소식을 어느 순서로 어느 프레임에서 보내줄 것인지 지극히 정제되고 의도된 메시지이기 때문에 정신차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째서 언론은 어두움에 그렇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출까? ...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잠재적 기삿거리에 맞닥뜨리면, 언론은 지금 국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이 되는 것을 골라내기 마련이다." (53쪽)
- 뉴스를 볼때는 또 원근감을 가져야 덜 피로해진다.
"우리의 두려움을 부채질하는 데, 뉴스는 잔인하게도 원근감에 대한 우리의 나약한 지각 능력을 악용한다. ... 원근감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 누가 봐도 분명 충격적인 사건을 인류가 역사 전체에 걸쳐 겪은 경험과 비교하는 능력과 연결된다. 이 사건이 사실상 어느 정도의 관심과 우려를 요하는지 헤아리기 위해서 말이다. 마음속에 원근감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뉴스가 암시하는 바와 정반대로) 어떤 것도 전적으로 새로운 게 아니며, 아주 일부의 사건만이 진실로 놀라운 것이고, 정말로 무시무시한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대 수준에 달려 있다."(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