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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기회 -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 / 에쎄 / 2015년 8월
평점 :
몇년전에 글로벌금융위기백서에서 배경부분 작성에 그래프 좀 그리는 역할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 미국 금융위기 관련 보고서를 검색하다가 정부 보고서를 읽으면서 '오, 잘썼다.'라고 생각한게 있었다. 그런데 그 보고서가 바로 Elizabeth Warren이 있었던 COP에서 낸 첫 보고서 "Questions about the $700 Billion 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Funds"였다. 사실, 난 금융위기 당시에 외자원에 있었고, 또 그 후엔 이렇게 백서 집필에도 부분적이지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외면해왔다고 해야 맞겠다. 왜 금융위기가 발생했느냐, 정말 월가 은행들이 그렇게 나쁘냐, 믿어왔던 배워왔던 많은게 흔들릴까봐 두려워서였다. 심지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우리팀의 친구가 자기는 IB에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었고, 자기의 신념, 정치 이야기로 이어지자 그냥 내 영어의 한계이겠거니 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싸울기회를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쳐다보는 나의 시각이 매우 우파적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애써 바꾸고 싶지 않아 했었다는걸 인정하게 된거다. 난 모두가 그린스펀을 존경하고 자유경쟁체제가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거라고 믿던 2000년대 초중반에 대학교를 다녔고, 그것도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지금 직장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나의 core를 밑바닥까지 부정하기엔 대체할만한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웠었다. Elizabeth Warren은 상식적 수준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기좋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도드프랭크 법안의 복잡한 내용이 아니라 왜 금융규제가 필요한지 토스트기에 빗대어 설명한건 정말 인상적이었다. 옛날에는 토스트기에 타이머가 없어서 빵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과열되어 빵이 타고 토스트기가 다 녹고 부엌에 불이 날 때까지 열이 가해졌는데, 지금은 일정 온도를 넘으면 자동으로 꺼진다는 거다. 정부가 그 정도의 보호를 해줘야 한다는게 요지다. 복잡한 금융계약서를 모두 읽고 싸인해야 하는게 개인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너무 어렵고 불리한 조건이 주어지면 누가 중간에 나서서 걸러 주고 이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거다. 멋지다.
싸울기회를 읽으면서 이 책이 또 자서전이기 때문에 주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아이들, 손주들, 강아지들, 오빠들, 이모들, 부모님들. 대학가기를 반대하는 부모님들을 뒤로 하고 하버드 법학 교수가 되고 상원의원이 되기까지 Elizabeth Warren은 그 순간 순간 삶에 감사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엄청난 행운, 엄청난 도전과 극복의 극적 순간이 있었다기 보다 한걸음 한걸음 갈길을 걸어가고, 자신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면하는 용기가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에 대해서 배웠다. 요즘 주변에서 "헬조선" 또는 "이민가야겠어" 이런 푸념섞인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 역시 답답하면 동조한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끈기에 대한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끈기: 자기의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쉽게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
여자 후배들에게 널리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