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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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친구, 평안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랑, 남편에게 잔소리 끝에 "사랑하니까 이런 얘기 하는거야" 해봤더니 비실비실 웃으며 넘겨준다. 친구, 나도 친구가 별로 없고, 그다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별로 외롭지도 않아서... 돌아보니 가족이나 동료들, 친구들이 다 친구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의 과거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금 내가 참 평안하단 생각도 들었다. 당장 암투병을 하더라도 - 좀 극단적이지만 - 병가낼 수 있는 직장, 설령 내가 투병 끝에 죽더라도 우리 아들 잘 키워줄 남편, 틈틈히 책 읽고 독후감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양철북 읽는 와중 무겁고 어려운 마음을 가볍게 "괜찮슈" 해주는 고마운 책. 참, 그리고 난 이석원이 가수인지 몰랐다. 글만 보고도 이 사람 좋더라. 음악도 들어볼까 했다가 관뒀다. 그래도 이석원이란 사람은 내가 이 책을 좋아했단 사실로 좋아할 것 같다. 안들어봐도 노래가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듣겠지 싶다. 아, 그 책 그 사람 이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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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K 님 덕분에 이석원이란 사람에 대해 호감 모드 돌입~ ^^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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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1948)

이러한 그의 일본춤 이야기가 여자로 하여금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그의 지식이 모처럼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었다고나 해야 할 처지였지만, 역시 시마무라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서양무용 취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따라서 자신의 무덤덤한 여수 어린 한마디가 여자의 생활 한가운데 급소를 찔렀다고 느끼자, 여자를 속이고 말았군 하고 뒤가 켕길 정도였는데,

"감상을 써두는 거겠지?"
"감상 따윈 쓰지 않아요.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관계 정도예요."
"그런걸 기록해 놓은들 무슨 소용 있나?"
"소용없죠"
"헛수고야"
"그래요"하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대답했으나 물끄러미 시마무라를 응시했다.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 먹은 시골 게이샤의 샤미센쯤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하다, 객실인데도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켜고 있질 않나, 나 자신이 산에서 느끼는 감상에 불과하다, 라고 시마무라는 생각하려 애썼다. 고마코는 일부러 구절을 단조롭게 읽어내리기도 하고, 여기는 천천히, 성가시다며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신들린 듯 소리가 높아지자, 발목 소리가 얼마만큼 강하고 맑게 울리나 싶어 시마무라는 무서워져서 허세를 부리듯 팔베개를 하고 드러눕고 말았다.

간진초가 끝나자 시마무라는 겨우 숨을 돌리고 아아, 이 여자는 내게 반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또한 왠지 처량했다.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하고 눈 온 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고마코가 말한 적이 있었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봄세" 처녀에게 말을 남기고 기차에서 내렸다.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 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두 사람이 그저 우연히 합승한 사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남자는 행상인쯤 되리라.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샤미센 발목이 든 통이며 겉옷이며, 무엇이건 가져와서 그의 방에 두고 가길 좋아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고요하고 차가운 쓸쓸함과 동시에 뭔가 요염한 경이로움을 띠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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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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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X의 헌신 처럼 시간과 인물이 서로 잘 얽혀 있는 잘 짜여진 구성, 알고보니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있었더라 하는 감동이 있다. 사피엔스를 읽고 난 직후 읽어서 그런지 "기적"이라든지 하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진 못했지만 재미있긴 정말 재미있었다.


영화 중에 비슷한게 떠올랐는데, "시월애(2000)"..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리고 성격은 좀 다르지만 "러브 액츄얼리(2003)" 같은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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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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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 최고였다. 챕터 구분, 소제목이 내용을 잘 정리해주는 깔끔한 책이다. 다시 읽고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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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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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딱 책을 펼쳐 죽죽 읽어 가다가, 뭐야 단편이었잖아, 뭐야 글이 굉장히 찰지네.. 라며 읽어대다 며칠을 보냈다. 책의 중간쯤, 다섯번째 단편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고 나서 도저히 안되겠다며 검정색 제도샤프를 들었다. 수능 언어영역 풀듯이 "나", "그" 같은 주어나 "진짜 산악부원", "꿈", "나머지 일" 같은 중요한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다시 읽었다. 


이 단편에서 ""는 왕오천축국전을 옮기고 주석을 단 여자 H 이다. 이것만 제대로 파악해도 이해가 쉽고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줄거리는, 이 단편의 주인공인 ""는 여자친구의 자살로 인해 매우 괴로워하다가 우연히 여자친구가 자살 직전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 바로 그 왕오천축국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가 왜 자살을 했으며, 왜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으며, 유서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는지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일년동안 쓴 소설을 왕오천축국전의 주석을 달았던 "나"에게 보냈고, "나"가 출판사에 그 원고를 보내 "그"가 출판사에 원고를 되돌려 달라고 오게 된다. "나"와 "그"는 그렇게 만났고 사랑하게 된다. 1년뒤인 1988년, "그"는 한국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합류하여 등반하게 되지만 정상을 앞두고 죽는다. 그가 남긴 등반일지를 바탕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적고 있다.


수능 공부하듯, 나름대로 내가 의미를 재해석해본다. 물론 틀릴 수도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걸 대단한걸 깨달았다는 듯 쓰는게 우스울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나는 누군가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다 못해 교탁에 문학 선생님이 오셔서 초록 칠판에 A=B 상징 이라고 적어주고 필기하라고 시켜주면 더 속이 시원할 지경이다.


< 주석, 소설, 등반일지 >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다는 행위 

=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해보려고 소설을 쓰는 행위

= 등반일지를 읽으며 그를 더 이해해보려는 행위


< 꿈, 패배의 의미 >


'지금까지 책에서 읽었거나 사람들에게 들은 지식을 총동원해' 라는 어느 책의 한 문장에서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총동원해. 그 문장을 통해 그는 세상에는 아무리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납득했다." "그"는 총동원해 여자친구의 자살 이유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꿈은 여자친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패배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그"의 소설 그리고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 >


"소설안의 모든 문장은 서로의 인과관계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개개의 문장은 모든 문장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그 어떤 문장도 외따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인과관계에 어긋나는 일들은 문장으로 남기지 않았다. 소설이 점점 완성돼 갈수록 소설 속 여자친구의 삶에서 자신이 점점 지워진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결국 정상에 올랐다. 거기가 바로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일 것이다. 그 지점은 어떤 사람의 등반일지에도 나오지 않는다. 현실과 꿈이 서로 뒤섞인 공간이라 어떤 논리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등반일지를 쓸 때, 그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여자친구와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거듭해서 문장을 고쳐썼다.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진짜 산악부원, 나머지일 >


"그"는 소설을 다 쓰고 산악부 선배에게 자신은 히말라야에 가야겠다는 '꿈'을 키우며 충분히 체력단력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히말라야에 가는건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설악산 동계등반에서 선배가 한 말을 얘기한다. "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형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진짜 산악부원이 됐던 거예요." 그는 일년동안 도서관에서 소설을 썼지만 그게 자신에게는 여자친구 자살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체력훈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체력, 육체적은 오히려 정신적인 것,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등반일지를 적으며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점이나 소설쓰며 보낸 1년을 체력훈련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이 주인공이 왜 여자친구를 따라 처음부터 자살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그는 진짜 산악부원이었다.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고, 체력단련을 한다. 소설을 쓰면서, 인과관계를 정리해가며 무엇이 자살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소설에 쓰지 않은 나머지 일들은 모두 히말라야로 가져갈 작정이었다." 나머지일. 인과관계에 나타나지 않은 소통할 수 없고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그가 여자친구의 자살을 포기하지 않는 한 패배,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의 소설 첫 문장은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소설만으로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편집장과 출판사에게 눈길끄는 연애소설을 얻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머지 일'을 가지고 제4캠프를 떠난 그는 "아주 천천히 벌거벗은 봉우리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 속으로 걸어간다. 눈물은 그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따뜻하게 감싼다.".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왔던, 그의 등반일지 마지막 문장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그가 꿈을 포기한다거나 패배를 인정한게 아니라 설산을 넘기 위해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곳"으로 한걸음 더 나아감을 내포한다. 그냥 여자친구 따라서 자살이 아니라 아픔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면서 계속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진짜 산악부원 말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었다.



적고 나니 나도 무리해서 해석하는 성향과 자살에 대해 미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단 생각이 든다. 그냥 이런 날도, 이런 사랑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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