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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딱 책을 펼쳐 죽죽 읽어 가다가, 뭐야 단편이었잖아, 뭐야 글이 굉장히 찰지네.. 라며 읽어대다 며칠을 보냈다. 책의 중간쯤, 다섯번째 단편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고 나서 도저히 안되겠다며 검정색 제도샤프를 들었다. 수능 언어영역 풀듯이 "나", "그" 같은 주어나 "진짜 산악부원", "꿈", "나머지 일" 같은 중요한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다시 읽었다.
이 단편에서 "나"는 왕오천축국전을 옮기고 주석을 단 여자 H 이다. 이것만 제대로 파악해도 이해가 쉽고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줄거리는, 이 단편의 주인공인 "그"는 여자친구의 자살로 인해 매우 괴로워하다가 우연히 여자친구가 자살 직전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 바로 그 왕오천축국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가 왜 자살을 했으며, 왜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으며, 유서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는지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일년동안 쓴 소설을 왕오천축국전의 주석을 달았던 "나"에게 보냈고, "나"가 출판사에 그 원고를 보내 "그"가 출판사에 원고를 되돌려 달라고 오게 된다. "나"와 "그"는 그렇게 만났고 사랑하게 된다. 1년뒤인 1988년, "그"는 한국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합류하여 등반하게 되지만 정상을 앞두고 죽는다. 그가 남긴 등반일지를 바탕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적고 있다.
수능 공부하듯, 나름대로 내가 의미를 재해석해본다. 물론 틀릴 수도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걸 대단한걸 깨달았다는 듯 쓰는게 우스울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나는 누군가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다 못해 교탁에 문학 선생님이 오셔서 초록 칠판에 A=B 상징 이라고 적어주고 필기하라고 시켜주면 더 속이 시원할 지경이다.
< 주석, 소설, 등반일지 >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다는 행위
=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해보려고 소설을 쓰는 행위
= 등반일지를 읽으며 그를 더 이해해보려는 행위
< 꿈, 패배의 의미 >
'지금까지 책에서 읽었거나 사람들에게 들은 지식을 총동원해' 라는 어느 책의 한 문장에서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총동원해. 그 문장을 통해 그는 세상에는 아무리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납득했다." "그"는 총동원해 여자친구의 자살 이유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꿈은 여자친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패배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그"의 소설 그리고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 >
"소설안의 모든 문장은 서로의 인과관계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개개의 문장은 모든 문장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그 어떤 문장도 외따로 존재할 수 없었다." ..."인과관계에 어긋나는 일들은 문장으로 남기지 않았다. 소설이 점점 완성돼 갈수록 소설 속 여자친구의 삶에서 자신이 점점 지워진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결국 정상에 올랐다. 거기가 바로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일 것이다. 그 지점은 어떤 사람의 등반일지에도 나오지 않는다. 현실과 꿈이 서로 뒤섞인 공간이라 어떤 논리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등반일지를 쓸 때, 그 지점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여자친구와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거듭해서 문장을 고쳐썼다.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진짜 산악부원, 나머지일 >
"그"는 소설을 다 쓰고 산악부 선배에게 자신은 히말라야에 가야겠다는 '꿈'을 키우며 충분히 체력단력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히말라야에 가는건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설악산 동계등반에서 선배가 한 말을 얘기한다. "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형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진짜 산악부원이 됐던 거예요." 그는 일년동안 도서관에서 소설을 썼지만 그게 자신에게는 여자친구 자살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체력훈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체력, 육체적은 오히려 정신적인 것,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등반일지를 적으며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지점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점이나 소설쓰며 보낸 1년을 체력훈련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이 주인공이 왜 여자친구를 따라 처음부터 자살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그는 진짜 산악부원이었다.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고, 체력단련을 한다. 소설을 쓰면서, 인과관계를 정리해가며 무엇이 자살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소설에 쓰지 않은 나머지 일들은 모두 히말라야로 가져갈 작정이었다." 나머지일. 인과관계에 나타나지 않은 소통할 수 없고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그가 여자친구의 자살을 포기하지 않는 한 패배, 여자친구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의 소설 첫 문장은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소설만으로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편집장과 출판사에게 눈길끄는 연애소설을 얻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머지 일'을 가지고 제4캠프를 떠난 그는 "아주 천천히 벌거벗은 봉우리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 속으로 걸어간다. 눈물은 그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따뜻하게 감싼다.".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왔던, 그의 등반일지 마지막 문장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그가 꿈을 포기한다거나 패배를 인정한게 아니라 설산을 넘기 위해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곳"으로 한걸음 더 나아감을 내포한다. 그냥 여자친구 따라서 자살이 아니라 아픔을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면서 계속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진짜 산악부원 말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었다.
적고 나니 나도 무리해서 해석하는 성향과 자살에 대해 미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단 생각이 든다. 그냥 이런 날도, 이런 사랑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