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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의 음악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0년 10월
평점 :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좋아서 살아생전 마주하지 못한 게 아쉬워지며 울적해지는 순간.
장자크 상페의 전시회를 볼 때 그랬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며 그랬다.
무척 오랜만에 미메시스에서 발간한 그림 에세이 '상페의 음악'을 읽으면서도 역시나.
마지막 장을 덮기 아쉬우면서 울적한 감정이 올라왔다.
상페의 음악은 [뉴욕의 상페]와 [상페의 어린 시절]에서 함께 대담을 나눈 저널리스트 마르크르카르팡티에와 음악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이다. 책에서 S로 표기되는 사람이 상페다.
둘의 대화는 소위(?) 프랑스적이다. 시니컬하다고 해야 할까? 풍자적이라고 해야 할까? 책 전체적으로 그렇다.
가령 저널리스트는 반복적으로 상페가 좋아하는 음악의 종류를 구분 지어 말하지만 상페는 그냥 나에게는 클래식이고 재즈고 구분 필요 없어. 저스트 음악이야. 음악이라고! 정정해 준다. 또 음악이 그렇게 좋으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볼 만하지 않냐고 지적하니깐 음악을 하는 걸 꿈꿀 순 있지만 그걸 위해 노력은 안 한다고 되받아 치고 ㅋㅋ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와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경외와 감탄의 멘트가 나오는 편이고 그 외에는 시니컬 시니컬한다. 근데 그게 또 매력인 거.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패턴으로 둘이서 핑퐁을 주고받는 게 참 재밌었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빛나는 문장과 음악가와 곡들을 참 많이 주워 담았다.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욕구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물론 가장 나의 마음을 뒤흔든 건 상페의 그림이다. 상페의 그림은 저널리스트가 말한 것처럼 유쾌하다. 상페가 그린 음악과 관련된 스케치를 보고 있으면 '유쾌'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는다. 고로 기분 좋아질 수밖에 없다.
★ 겸손함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죠! 재능이 없을 땐 겸손해지기가 아주 쉽죠. (p.20)
★ 사람들은 언제나 영감을 말하지만, 사실 연습과 노력의 문제인 거죠. (p.20)
★ 부모님이야 계속해서 살림살이를 죄다 깨부수건 말건, 라디오가 있는 한 내 인생은 구원받은 거니까....... (p.30)
★ 그제야 나는 세상엔 아주 단순한 것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주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p.30)
★ 네, 나한테는 그저 다 '음악'이었어요. (p.37)
★ 더는 고집부릴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데에는 한 번으로 충분했지요...... (p.55)
★ 단언컨대 레이 벤투라는 나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p.61)
★ 난 무엇이든 거짓말을 했어요. 난 정말이지 사람들이 내가 아주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싫었다고요!(p.81)
★ 내가 몹시 좋아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나의 삶을 구원해 줬죠. 그래요, 그 사람들은 유쾌한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따금씩 비극적인 짓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유쾌한 사람들입니다. (p.87)
★ ...그런 그가 '나는 선의를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선의는 모든 것입니다. 그냥 그런 거예요. (p.102)
★ 몸이 저절로 덩실거려지다니 대단한데, 머리 안 망가지게 조심해! (p.115)
★ 드뷔시는 듀크 엘링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음 두 개만 있으면 '달빛'이 나오니까요. (p.129)
★ 나는 뭐든 시도해 보는 사람들에 대해 크나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