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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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16년 12월에 읽었던 책을 2년 반만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정이현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녀에게는 우리가 은연중에 느끼고 언어로는 내뱉지 못하는 감정들을 세세하게 잡아내 문장으로 쏟아내는 재능이 있다. 몇몇의 작가들도 그런 문장들을 한 두어번 짚어내는 경우가 있으나 그 정도는 운이 좋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종종 든다. 정이현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의심하는 순간 그런 문장 몇 개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마구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나는 사실 국내 단편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 이유는 삶과 인생에 대해 논하는 소설들을 읽다가 불평하는 상사와 한심한 남편과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에 대한, 그런 시답지 않은 것들에 대해 불평하는 소설을 읽노라면 삶은 참 구질구질한 것이다, 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빠져버리는 탓이다. 물론 그런 구질구질한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이루어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태여 하루하루의 그 자잘한 일들과 감정에 대해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 (이런 걸 보면 정말 삶이란 그런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하고 일상적이며 편린적인 것들의 모음인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구질구질함 조차도 아름답게 만드는 작가들을 종종 본다.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개인의 일상조차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작가들 말이다. 한동안 정이현 작가를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예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시금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지켜봐야 그런 문장들을 그런 감정들을 이야기하게 될까? 그녀가 오래도록 글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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