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 3,500km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다
이하늘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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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갈과 흙, 그리고 연식이 제각각인 낙엽과 풀이 뒤섞인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냥 여행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글을 쓰는 전문가의 유려한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문장들이 눈 앞에서 덜컥 걸릴 때면 '어. 뭐지?'하며 멈칫했다.

지금껏 읽어본 여행에세이들은 좀 더 감성적이었다고 하면, 이 책의 글은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다.

다 읽고나니, 아마도 이 글의 여정이 그러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AT(애팔래치안 트레일)를 걷는 동안 저자가

그 길에 대해,

자신과 자신의 동반자에 대해,

그리고 길 위에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타임라인에 따라 한알 한알 정리해 길 위에 내려놓은 조약돌들 같다.

신혼일기같기도 하고, 걷기일기 같기도 한 이 책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책을 읽는 동안의 나도 산맥을 따라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게 된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어도 미국에 PCT니 AT니 하는 하이킹 트레일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동부와 서부의 산들을 이어 걸을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유명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국 동부에 살고 있는 엉클빌과 내 사촌들이 왜 그렇게 한국에 오면 관광지에 가지 않고 큰이모네 동네 뒷산을 헤메고 다니는 건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게된 덤이다.)

내가 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페이지다.

나는 험준한 산보다는 이렇게 나무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드는 산이 좋다.

그러고보니 중간중간 이렇게 눈이 쉴 수 있는 페이지가 있어서 참 좋았다.

트레일매직,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 트레일매직이라는 게 참 재밌었다.

과일 몇개, 물, 얼음바스켓에 담긴 음료수, 응급약품 같은 것들을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는 마음이 따스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두다리에만 의존한채 걷는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상냥한 마음을 '트레일 엔젤'이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나 예쁘지 아니한가!!

길 위에서 만난 예상하지 못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행복이 된다는 걸.... 그녀는 투박한 글 위에서 터져나오는 행복감으로 생생하게 알려줬다.

장거리 트레일을 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장거리하이킹을 한다 해서 나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던 따뜻한 샤워가 이 길 위에서는 아주 소중하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거나 인테닛을 하는 것이 장거리하이킹에서는 특별한 일이 된다. 한국에서는 밤늦은 시간에도 전화 한 통이면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치킨을 하이킹 내내 떠올리다가 마을에 도착해서 먹었을때의 기분을 생각해보라. .... 이 작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62p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

아들 둘의 엄마에겐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매일의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산행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텐트에서 발 뻗고 눕는 그녀의 고단함과 비슷하게 양치만 겨우 한채로 아이들 틈에 끼어 잠드는 게 엄마들의 일상이다.

그런 나의 일상에, 큰 아이가 써오는 '엄마. 아깐 미안했어요. 고맙고 사랑해요.'라고 적힌 노란 편지지가 내게는 길 위에서 만난 트레일매직 같은 순간이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그날 하루의 기분때문에 눈물 흘리는 나에게 두 아이가 심각하고 안쓰러운 눈을 하고 다가와서는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그 순간이 그러하다. 새삼, 내가 가진 행복을 다시 새길 수 있게 해준 그녀의 트레일매직 이야기가 고맙다.

그런 와중에도 행복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걷지만 행복감으로 차오르고 있는 그녀와 세번째 트레일을 완성해가는 그녀의 동행은 그 길에 대한 감흥이 다르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길을 걷다보니 배우는 것이 또 생겼다. 행복한 삶이 꼭 100%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만족감을 주는 삶이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행복이라는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가야할까?,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90p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시간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것도 예상보다 빈번하게.

좋았으면 하는 날조차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또한 흘러가는 우리 삶의 시간 중 하나다.

그녀는 길 위에서 정말 좋은 인생의 지혜를 얻은 것 같다. 몇 일 전 우리 부부에겐 좋은 날이 있었다.

나는 팡팡 뛰며 축하하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남편은 자기가 처한 상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그 순간 나는 조금 서운했다. 다음 날 함께 축하하고 싶었지만 칭얼대는 아이들 덕에 완전 망치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 조차도 우리 넷의 추억 한 장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날이 된다.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신혼여행 중에 맞이한 결혼기념일, 특별한 이벤트 없이 그저 다시 걷는 그 날의 모습이 참 한결같은 이 두부부의 진짜 모습 같아서 귀여웠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고민이 마치 몇년은 살아본 부부의 그것 같아서 신기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에 지쳐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한 논의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이런 점이 좋았다. 결혼은 결혼식 단 하루가 아니라,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결혼생활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해피 애니버서리 - 결혼에 대한 작은 생각,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112p

내게도 '나만의 특별한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우리 부부만의 의미가 있으면 좋겠고, 흔한 결혼식의 모습과는 달라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축하는 진심으로 받았으면 좋겠고... 그런데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준비하다보니 지금의 결혼식 형식이 잡히게 된 데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와 살아가는 모습이 반영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엔 특별한 사람만 초대하고 싶지만 딱 잘라 너까지는 친한 사람. 너부터는 좀 덜 친한 사람이라고 하는 법을 우리는 못 배웠다.

그래서 중고교 동창부터 직장동료까지 부르다 보면 신랑신부의 지인만해도 100명을 훌쩍 넘긴다.

결혼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여자의 집안과 남자의 집안이 유대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가족주의 덕분에... 숙부, 숙모, 이모, 고모, 사촌에 조카까지 참석을 권하게 되니 양가의 8촌이내 가족만 모여도 그 쪽도 몇 십명은 가볍게 넘긴다.

아마도 예전의 마을잔치의 모습이었을 결혼식은 요즘엔 이래저래 200명에 가까운 사람을 모아놓고 할 수 있는 파티가 됐다. 밤에는 술 먹고 참 잘 노는 한국 사람들이 벌건 대낮에 한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는 못 논다. 그러니 그저 묵묵히 밥을 먹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같은 주례사를 듣고 앉아 있는게 편한 거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로 자란 우리 부부는 그 '보통','평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도 그 날을 기억하면 행복하다.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의 얼굴이, 남편의 이름을 세번이나 잘못 부른 주례선생님의 당황스러운 눈빛이, 축가를 불러주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가, 긴장한 채 나와 버진로드를 입장하던 아빠의 손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요즘엔 다양한 방식의 결혼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현실적인 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살면서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결혼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두 사람이 매일같이 걸으며 부딪히면서 함께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뷰는 산행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그녀의 글을 따라 산을 오르고 중턱에 올라 함께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런지. 숨이 차오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나보다. 단 둘이 길을 걸어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 아닐까.

사실 결혼을 하고도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특히나 우리 부부처럼 허니문 아기가 생긴 경우엔 신혼생활이라고 할만한 시간이 아이를 맞이할 준비와 고민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두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아이'에 대한 대화를 주로 하게 된다.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부부만의 대화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서로를 모른채로 함께 사는 것 만큼 헛헛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트레일을 하는 와중에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성화봉송주자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신혼여행 도중에 생각했을 여행루트를 바꾸면서까지 성화봉송 요청을 수락한걸 보면 그녀가 진정한 경험주의자ㄴ탰라는 걸 알 수 있다. 갈 수록 그녀에게 정이간 건 나와 같은 경험주의자라서였나보다. (나도 '엄마'라는 길을 온전히 전부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라는 길을 선택했다.ㅎㅎㅎ)

장거리트레일에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표지판들이 있다. AT를 걸으면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은 길의 표식과 관련된 것이다. PCT나 CDT는 고유의 트레일 마크를 이용해서 해왔던 반면, 이곳은 나무에 별도의 표시를 해두었다. '화이트 블레이즈'라고 불리는 흰색 표시는 공식적인 AT루트, 하늘색은 우회로, 식수, 쉘터 등으로 가는 공식 트레일 외의 사이드트레일을 표현한다. ....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식트레일을 나타내는 흰색과 사이드 트레일인 하늘색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174p

같은 생각의 결을 발견해서 너무 기뻤다. 너와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다른 길을 갈 수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결혼'식' 대신 산위에서의 언약식을 결혼'일'로 정한 사람.

신혼여행 대신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

보통의 신혼부부가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조금은 과감하고 색다른 도전을 한 그녀가 낯설지만 낯익었다.

나의 지인들 중에도 '다수'가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자신들만의 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인가보다.

10년의 결혼생활을 그만두고 멋지게 솔로의 삶을 사는 사람.

아이를 가지려다 이뤄지지 않아서 여행을 즐기며 사는 부부.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캠핑을 하러다니는 가족.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난 부부.

우리 부부처럼 아이를 하나 또는 둘 낳고 기르는 가족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 사는 법과 생각하는 가치관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그 다름에 대해 타박하거나 훈계를 하려는 사람도 없다.

이들 부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을 따뜻하게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고.

서로 모자라다고 타박하지 말고, '너는 그렇구나.'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냥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행복과 다양성에 대한 외침을 닮은 책인가 보다.


본 포스팅은 푸른향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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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 상속제도는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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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여 온 '상속'제도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책.

상속.

사실 어릴땐 (아직도 어리다.. 한참 어리다 ㅎㅎ) 이런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의 자산이라고 할만한 종목들이 늘어나고 아이가 생기자 상속이라는 글자에 절로 눈이 갔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들의 유전자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종교적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미 세속적인 것들과 멀리할 수 있는 이치를 깨달아서(득도하여) 물질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어가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 가 닿아서 읽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불행히도 책을 읽는 기간동안 일신상의 이슈가 생겨서 빠르게 바짝 읽지 못했다.

역사서들이 그러하듯 장면장면이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기기 때문에 아마도 자꾸 손에서 내려간것 같다.

그래도 아주 흥미로운 관점의 책을 보게 된 것 같아서 좋았다.

이책에 꽂히게 만든 건 세종의 조카사위가 벌인 유산싸움이라는 부분때문이었는데, 인간의 본성은 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푼이라도 더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어딜가나. 누구에게나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홍보된 사례가 세종시대의 이야기라서, 조선시대의 상속제도를 주로 살펴본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중세부터 근대까지 유럽각지의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십자군 전쟁이 가능했던 게 장자상속때문이라는 이야기도 기발했다.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관이 그 지역에 적합한 생존을 위한 상속제도를 만들어간다는 통찰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 같다.

독일의 중소기업이 발달한 이유가 균등분배를 통해 더이상 토지로부터 얻을 이익이 작아서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높아진 해수면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제방을 쌓고 간척을 통해 평민이 자기 소유의 농지를 갖게 되었다는 등. 현재 그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국민성이나 특성들이 먼 옛날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나갔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게 발달해 간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땅의 조상들은 장자상속을 통해 가문의 명예와 양반의 체면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은 것 같다.

선택되지 못한 장자 이 외의 사람들은 소작농이되거나 조선시대의 경우 노비가 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은 그렇게 갈등을 많이 겪는 것일까?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계급론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도 좋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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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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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읽게 된 판타지소설. 육아하는 엄마이기에 최소한의 잠을 자야해서 책을 내려놓아야만 했고,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꼬박 3일에 걸쳐 읽었다.아. 그랬지.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했었지! SF 장르는 고등학생 시절에 그 유명한 '퇴마록'을 시작으로 열렬히 빠져 지내다가 20살 이후로는 간간이 봐온 것 같다.(하긴 20대부터는 독서량이 극적으로 줄었다. 책에 빠질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사라졌다) 10대 시절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3일간이었다. 

 

 제미신이라는 작가는 부서진대지 3부작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전부 수상한 이력의 작가다. 보통 나는 책을 고를때 제목을 보고 고르는 편이기 때문에 읽고도 작가가 누군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고서야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작가는 궁금했다. 왜인지는 나중에 밝히는 걸로...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는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알랭드보통', '기욤뮈소', '김훈', '황석영',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다.^^) 

 

다섯번째 계절은 부서진 대지 연작 중 1편이다. 제목인 다섯번째 계절은 우리가 지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나누는 중간 중간 크게 변화하는 것을 기점으로 ~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던 어느날 생존을 위협하는 암흑과도 같은 계절.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 지 예측가능하지 않은 계절을 의미한다. 처음엔 어떤 묘한 기후를 지닌 계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했다. 그래서 인물들이 계절을 이야기 할때 묘한 뉘앙스로 지나가야했다. (만약, 이 책을 읽을 예정인 사람이 있다면 맨 뒤의 주석을 읽고 시작하길 바란다. 계절과 용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나역시 그랬을거다. 그랬다면 아마도 이틀 정도에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ㅎㅎ)

 

작가는 정말로 이야기를 잘 설계했다. 다 읽고나니 든 생각은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 천재아니야? 이게 겨우 1/3이라니!!!'였다. 그래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을 것 같은 판구조론, 환경오염, 계급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이토록 환상적으로 버무리면서 시간을 편편이 나누어 섞어두는 설계. 인물을 추측하며 시간의 축을 추측해보는 건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다

 

 

 SF를 읽을때의 감각이 살아나질 않아서 처음엔 이야기에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 SF소설에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보통의 세상과는 다른 환경과 규칙 또는 힘이 존재하고 창조적인 말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익숙해져야 글이 글 답게 읽힌는 법인데.. 그 감각을 잊고 살았다. 하하.

이 이야기엔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능력(소설 속에선 조산술이라고 부른다)을 지닌 존재들이 나온다. 오리진 또는 로가라고 불리는 이들. 이들의 능력이 인간들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구하기도 한다.

 

시작부터 나오는 '보님', 처음엔 이게 뭔가 했다. 작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자신과 연결된 세상을 느끼는 보님기관을 창조해냈다.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정말로 이런 기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진이 일어나는 걸 미리 알고 대처하는 동물들처럼 그런 기능이 우리 안 깊숙한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스톤이터, 오벨리스크, 도통 기능을 알 수없는 미지의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처음엔 그래서 일단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에쑨이 아이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이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 이야기의 축이 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녀의 비밀들이 드러나고 그 비밀로 인해 위험해 처하지만, 조력자들의 도움과 자신의 숨겨진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면서 여인이 감추고 있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에쑨'을 그리는 3인칭 작가시점은 어느 순간 독자를 '너'로 환원하며 이야기 안으로 독자를 가둔다. '너'가 된 나는 이제 슬슬 판타지의 흐름을 기억해내고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이어간다. 50페이지즈음의 나는 '에쑨' 캐릭터 명을 가진 신작 게임 안의 플레이어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에쑨'의 이야기는 '너'로 환원되어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다르다. 다마야와 시엔의 이야기는 각각 에쑨의 여정과 교차되어 그려진다. 어린 오리진인 다마야와 펄크럼의 유능한 오리진인 네반지의 시엔의 이야기는 인간과는 다른 (마치 영화속 X맨 같은) 능력을 지닌 오리진 또는 로가들이 어떻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구원자가 되기도 하는지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잠재된 '다름'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세상인 '고요'제국은 현재 지구의 이전이거나 이후인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읽는 현실 속의 우리는 움직이는 맨틀 위에서 서로 떨어진 대륙에서 살고있지만 고요 대륙은 단 하나의 대륙이다. 그래서 북위권 남위권 중위권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인도의 카스트 처럼 각 마을(소설 속에선 향이라고 불린다)에서 맡은 역할과 재능에 따라 쓰임새 명이 부여된다. 지도자, 혁신가, 완력꾼, 번식사, 의사 등.... 쓰임새 명은 어머니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의지에 따라 바꿀 수도 있나보다. 어쨌든 공동체에게 필요한 능력을 지닌 개인은 선택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내쳐지는 것으로 보인다. 향의 바깥에선 거의 야생과도 같은 생활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쓰임새 명에 따라 한 사람의 가치가 등급 메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게 좀 더 극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그리고 '오리진'으로 구별되는 존재들이 있다. 지구 맨틀 아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힘의 위력만큼이나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다른 존재이기에 그들을 향한 차별과 멸시 그리고 폭력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진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시엔'이 수호자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내뱉는 그 말.

"이건 옳지 않아." 그 속에 이 장면들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비상식적인 논리가 단순한 이해관계에 의해 죄없는 존재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상식이라는 기반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들과 다툼 끝에 그 위에 선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상식'만큼 발전하지 못한게 아닐까. 제 아무리 똑똑하다고 잘난체를 해 보아도 밑바닥엔 '짐승'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면면이 숨어있는 것이다.

 

작가는 일부러 '오리진'일는 단어를 쓴 걸까? 오리진이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 세계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원시의, 비문명의 존재들을 일컫는 단어. 서구의 사람들이 대륙을 발견하고 뻔뻔하게 침략하면서 파괴한 집단을 부르는 단어. 얼마전에 호주의 오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봐서인지... '오리진'이라는 단어에 작가가 넣고 싶었던 생각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소설은 오리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병기가된 오리진 '시엔'의 깨달음과 인내, 그리고 분노를 따라가다보면 이 이야기는 '오리진'에 대한 속죄를 그리고 싶었던 건가.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 생각이 들었을때 스치듯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읽던 페이지를 접고 맨 앞으로 간다.

소설은 이 문장을 앞에 두고 시작한다.

 


다른 이들과 마땅히 동등한 존중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이 글에 대한 총평은 할 수가 없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서사를 읽었지만,

나는 이제 겨우 셋 중 하나를 읽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작가가 미쳤어!" 정도?

'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느냐.'라고 묻는 알라베스터에 대한 시엔의 대답을 그리고 그들이 행하려는 다음 챕터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부서진 대지2를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고마워요황금가지 #부서진대지시리즈 #오랜만에SF #다섯번째계절

 

본 리뷰는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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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다큐 더하기 로맨스 소설이다.

소설이라기엔 너무나도 현실같은 상황묘사. 그리고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우리 집에 카메라라도 달아놓은 걸까 싶었다 ㅎㅎ 요즘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도 이런 내용을 다루는 것 같던데... 입시코디라는 소재로. 잠깐 봤는데 내용이 아주 자극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라이딩인생은 아주아주 솜털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바로 앞 전에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는데 이 책은 이상한 정상가족의 소설버전 같았다!

내겐 두 아들이 있다. 하나는 올해 한국나이 7살. 하나는 3살. 이제 일곱살이 되는 첫째는 직장어린이집을 다닐때 매일 라이딩을 했고, 유치원 버스를 타긴 하지만 엄마 차 타고 가는 걸 참 좋아한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 또래 친구가 사라진 지난 여름부터 축구클럽 라이딩도 시작했다. 둘째는 본의 아니게 엄마의 라이딩에 늘 동행한다.

그래서일까.....

찬찬히 읽고 싶었는데 감정이입이 너무 되어서인지 570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밤새 읽었다. 하루만에 통독했다. 하하핫;;

그만큼 글이 참 재미지다. 아빠들은 빨리 읽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이들 학원과 유치원 라이딩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그럴거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 마음이 갔다. 주인공인 클레어할머니, 지아에게는 당연히 한웅큼 마음이 쏟아졌다.

우선 엄마들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의 다큐 부분을 담당한 대치동 엄마들의 교육열이야기. 비단 대치동만 그럴까? 피하고 피해서 한적한 동네로 이사했지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엔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희, 정은, 그리고 주변인물로 등장한 엄마들 모두가 마치 나 또는 내가 아는 지인들 같았다.

죽자고 아이 교육에 매달리면서 아닌척 초연해 하는 사람, 진심도 아니면서 정보만 쏙쏙 빼가는 사람, 자신의 가치관을 옆 사람에게 의지해 만들어 가는 사람, 자신의 뜻과는 다른데도 그저 끌려가는 사람, 다른 이에게 자신의 것이 진리인양 퍼부어 대지만 사실은 자신도 불안해 하고 있는 사람.

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 아닐까... 작가가 참 인물구성을 잘한 것 같다.



이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속상했던 점이 있다면, 아이를 가르치거나 기르는 모습이 전부 엄마(엄마든 엄마의 엄마든)들의 책임처럼 그려진다는 것이었다. 모든 의사결정은 엄마들이 내린다. 그들끼리 조언을 구하고 경쟁하고 시기하며 말이다. 아빠들은 방관자로 있거나, 헛소리만 늘어놓거나, 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와모의 책임일텐데. 맞벌이인 정은의 집에서조차 늘 술 먹고 늦는 남편의 모습만 보여준다.

아이의 앞날을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모습은 후반부에 가서야 나온다.



주인공인 지아를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 수많은 지인들의 '엄마들'이 생각났다. 손주를 돌보다 병을 얻고, 딸 또는 며느리와 부딪히며 사는 삶. 그 대가를 바라지도 못하는 삶. 그 삶에 대해 나는 할말이 많지는 않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배짱이 없는 엄마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게 내가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지금까지 진심으로 웃으며 볼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아의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고 누구나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아이를 키워냈기에 벅차게 힘겨웠을 삶이 이제 쉬어야 할때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홀로 키웠기에 미안한 그 마음에 그녀는 아마도 냉정히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내가 준 것보단 못 준 것이 눈에 밟힌다. 그러려면, 개인의 희생이 아닌 사회가 아이를 케어할 수 있게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 나를 비롯해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경단녀와 워킹맘들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도 마음이 넉넉할 수 있게 말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주희다.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녀의 삶은 아이 그 자체였다.

이제 삶의 유일한 초점은 민호였다.

아이가 똑똑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라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주었겠지만 그 아이가 진짜 원한 7살의 하루하루가 정말 그 모습일까? 민호가 클레어와 놀고 싶어서 놀이터에 남겠다고 떼를 쓰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상가족에서도 언급되었던 중산층 가족의 아동학대. 놀 권리의 박탈. 엄마가 정신과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강박감을 가지고 매달리는 아이의 인생이 행복한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고 해서 그녀는 행복할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답을 안다고 생각한다. 아마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로맨스로 만들어준 인물. 영욱.

이 양반의 멋짐에 박수.

자신의 뜻을 젠틀하고도 분명하게 표현해준 그에게 나또한 반했다.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지아와 영욱이 이 소설의 뒤에서 행복하길 빌었다.

마지막 반전에서 눈물이 왈칵 났던건 아마 내가 이 영욱이란 인물에게 뿅~하고 반했었기 때문이리라.



새해 선물 같이 찾아온 '라이딩인생', 아주 흥미진진한 다큐같은 소설을 읽어서 올해 시작이 아주 좋다.

읽는 내내 씁쓸한 웃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사실 우리에겐 여기 등장하는 인물 그 누구도 욕할 자격이 없다. 선택의 뒷면엔 각자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책 속의 인물들이 알았으면 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서로 진심으로 대화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또 다시 하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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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삶과 죽음에 대한 찬가같다.

내가 왜 읽는다고 손을 들었을까 중간중간 후회하기도 했다. 책의 흐름을 막 타기 시작할 무렵. 민족 명절인 추석연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ㅠㅠ 이런 책 읽기는 권장하기 힘들다. 앞의 흐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다시 흐름을 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보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읽은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단 읽어낸 책에 가깝다. (나는 이 분류를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읽어낸 책들은 그냥 너무 어렵거나. 어렵진 않지만 내용을 베베 꼬았거나. 아니면 나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들과 부딪히는 경우다.
이 책의 경우는 일단, 그냥 읽기엔 학구적인 용어나 사례가 너무 많아 어렵고 나의 가치관 중 그 무엇과 시시때때로 부딪혀 싸워댔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나는 5살에 세례를 받은 카톨릭 신자다. 하지만 내 자유 의지에 의해 종교를 선택하지 않아서 내 종교에 대한 어떤 의심이 있었다. 많은 신자들이 유아세례를 받으면 성인이 되어서 단교를 하곤 한다. 나는 출산과 결혼이라는 사정상 더 이상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미사에 참여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신자로, 말하자면 휴교중이다. 내 주변에는 나와는 다르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별 다른 거리낌없이 종교의 감사함과 혜택을 이야기 나누곤 해왔다. 아마도 이 점이 이 책의 한장 한장과 싸우듯 읽어야 했던 요인일거라고 생각한다.

종교인이 왜 '종교없는 삶'을 선택해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몇 년 전에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으면서 껄끄러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책은 8개의 장으로 나뉘어 무종교적 삶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무종교인들의 삶에 대해 낱낱이 설명하고 때론 설득해 준다.

1.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2. 종교에서 멀어지면 좋은 사회에서도 멀어질까?
3. 종교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4. 종교없는 부모들은 아이를 어떨게 키울까?
5. 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할까?
6. 종교없이 삶의 고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7. 죽음 앞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8.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8개의 질문을 보면.
'종교없음'이 결코 '종교있음'보다 어느 부분에선가 부족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한 책이겠구나라고 짐작하게 한다. 그건 아마도 저자를 비롯한 많은 종교'없는'사람들이 받아온 비판적인 시선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이 책은 지극히 미국적인 시선에서 쓰여졌지만 그게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전 세계에서는 날이 갈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적어지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다니던 성당의 분위기와 가끔 나가서 느껴지는 성당의 묘한 공기의 차이는 단지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성경의 말씀이 이제는 흥미를 잃었고 재미있고 종교만큼이나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선 곳에서 쉴새없이 벌어진다.
책의 도입부에서 설명하는 것 처럼 종교의 기능을 선진화된 많은 국가의 각종 기관과 제도들이 대신해 수행하게 되었고, 어느 하나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종교로 묶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너무나 커졌고 커진 여러 나라와 집단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기능들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는 더욱 무 종교인들이 늘어났다.
이것은 종교 유무의 충분 조건은 아니어도 필요조건은 되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재밌는 사실은 비합리적이고 폭력이 만연한 나라가 더 종교적이고 합리적이고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나라가 덜종교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류의 발달과정 가운데 종교라는 과업을 거쳐 성숙한 가치관이 사회를 안정화 시키고 나면 종교는 그 필요를 다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이 나의 종교에 대한 관점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책 속에 소개 되는 몇몇 부분이 그런 충격을 더욱 더해줬다.
교회에 회에 나가지 않고 믿음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감내해야 했던 많은 갈등들에 대해 토냐와 대화를 나눈 후, 무 종교적인 육아 덕분에 경험한 좋은 점들도 물어보았다. ... "그들에게는 제한이 없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면에서 많은 종교인들이 아주 제한되어 있거든요. ... 종교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저는 제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길 원해요."


바로 종교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는 이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 결정하기 전부터 가져온 종교의 힘이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선택에 오히려 선택권이 더 많다고 생각해왔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종교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서 사용되었다는 건 바로 납득이 되었는데 내 삶에 있어서 선택을 제한해왔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 같았다. 이런 시선을 스스로 가질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 개인의 자유와 성향, 지속적인 선택이라는 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가 없는 부모가 자녀에세 가장 확실하게 물려주는 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들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낸 의식들, 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무전통의 전통 말이다. 이 것을 이단자들의 유산이라 불러도 좋다. '이단(heresy)'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하이레시스(hairesis)'에서 파생되었고, 그 근본적 의미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내 아이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카톨릭 신자가 되길. 신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카톨릭 교리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 건 구복신앙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른 이를 스스로처럼 여기고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며 가졌을때 남과 나눌 수 있는 가슴을 갖길 바래서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종교가 아니더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아이에게 쥐여 주는 종교가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거기 앉아 있을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아기의 심장병을 고쳐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해? 이게 말이 되나? 신이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라면... 그러니 아기의 심장병도 신의 계획이 아닐까? ... 이게 도대체 무슨 신이지?' ... 모두들 죽어가는 아기를 둔 젊은 부부에게 사랑과 연민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된 행위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도움을 낳고 있었다.
바로 이게 종교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불편했던 건 나는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위안과 즐거움 그리고 지지를 얻어왔다는 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는데, 저자도 이 부분을 간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같은 독자가 많을 거라는 걸 알았나? ㅎㅎ
내게는 큰 의미 없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종교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내게는 그렇다는 거다. 저자에겐 '신비로움'과 '경외주의'라고 표현되는 것이 내게는 '신이라는 어떤 힘'으로 존재하는 것 뿐이다. 인간다움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서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에서 발현하는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간에 말이다.

아직은 책 속의 내용들이 일련의 이어짐으로 정리가 되진 않는다. 너무 많은 사례가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저자가 말하는 삶을 사는 방식이 많은 종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부적인 가르침이야 어떻든 간에, 그것이 카톨릭이건 기독교건 불교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라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나?

어쩌면 사람들이 사는 어디에서나 관통하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모습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용은 바로 '지금. 여기'의 자신의 삶을 만끽하며 충실히 살라고 이야기 한다는 점이었다.
그의 말대로 종교적 관점에서의 현생은 내세 또는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성서엔 서로 사랑하라는 아름다운 이야기 말고도 사후의 벌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신이라고 표현되는 존재가 죄를 지은 이들을 어떻게 벌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마도 '공공의 선'이 덜 정립된 사회에는 그런 일종의 '협박'이 악한 행위들을 막는데 효과를 발휘해왔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지켜주는 암묵적 규칙들이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향해 얼마든 잔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목적과는 별개로 도구가 목적이 되어온 경우들이 많다.
신은 어쩌면 인간이 창조해 낸 가장 기발한 규율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 여기 함께 사는 서로를 위함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 무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지금. 여기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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