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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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읽게 된 판타지소설. 육아하는 엄마이기에 최소한의 잠을 자야해서 책을 내려놓아야만 했고,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꼬박 3일에 걸쳐 읽었다.아. 그랬지.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했었지! SF 장르는 고등학생 시절에 그 유명한 '퇴마록'을 시작으로 열렬히 빠져 지내다가 20살 이후로는 간간이 봐온 것 같다.(하긴 20대부터는 독서량이 극적으로 줄었다. 책에 빠질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사라졌다) 10대 시절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3일간이었다. 

 

 제미신이라는 작가는 부서진대지 3부작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전부 수상한 이력의 작가다. 보통 나는 책을 고를때 제목을 보고 고르는 편이기 때문에 읽고도 작가가 누군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고서야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작가는 궁금했다. 왜인지는 나중에 밝히는 걸로...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는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알랭드보통', '기욤뮈소', '김훈', '황석영',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다.^^) 

 

다섯번째 계절은 부서진 대지 연작 중 1편이다. 제목인 다섯번째 계절은 우리가 지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나누는 중간 중간 크게 변화하는 것을 기점으로 ~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던 어느날 생존을 위협하는 암흑과도 같은 계절.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 지 예측가능하지 않은 계절을 의미한다. 처음엔 어떤 묘한 기후를 지닌 계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했다. 그래서 인물들이 계절을 이야기 할때 묘한 뉘앙스로 지나가야했다. (만약, 이 책을 읽을 예정인 사람이 있다면 맨 뒤의 주석을 읽고 시작하길 바란다. 계절과 용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나역시 그랬을거다. 그랬다면 아마도 이틀 정도에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ㅎㅎ)

 

작가는 정말로 이야기를 잘 설계했다. 다 읽고나니 든 생각은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 천재아니야? 이게 겨우 1/3이라니!!!'였다. 그래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을 것 같은 판구조론, 환경오염, 계급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이토록 환상적으로 버무리면서 시간을 편편이 나누어 섞어두는 설계. 인물을 추측하며 시간의 축을 추측해보는 건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다

 

 

 SF를 읽을때의 감각이 살아나질 않아서 처음엔 이야기에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 SF소설에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보통의 세상과는 다른 환경과 규칙 또는 힘이 존재하고 창조적인 말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이 익숙해져야 글이 글 답게 읽힌는 법인데.. 그 감각을 잊고 살았다. 하하.

이 이야기엔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능력(소설 속에선 조산술이라고 부른다)을 지닌 존재들이 나온다. 오리진 또는 로가라고 불리는 이들. 이들의 능력이 인간들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구하기도 한다.

 

시작부터 나오는 '보님', 처음엔 이게 뭔가 했다. 작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자신과 연결된 세상을 느끼는 보님기관을 창조해냈다.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정말로 이런 기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진이 일어나는 걸 미리 알고 대처하는 동물들처럼 그런 기능이 우리 안 깊숙한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스톤이터, 오벨리스크, 도통 기능을 알 수없는 미지의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처음엔 그래서 일단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에쑨이 아이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이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 이야기의 축이 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녀의 비밀들이 드러나고 그 비밀로 인해 위험해 처하지만, 조력자들의 도움과 자신의 숨겨진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면서 여인이 감추고 있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에쑨'을 그리는 3인칭 작가시점은 어느 순간 독자를 '너'로 환원하며 이야기 안으로 독자를 가둔다. '너'가 된 나는 이제 슬슬 판타지의 흐름을 기억해내고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이어간다. 50페이지즈음의 나는 '에쑨' 캐릭터 명을 가진 신작 게임 안의 플레이어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에쑨'의 이야기는 '너'로 환원되어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다르다. 다마야와 시엔의 이야기는 각각 에쑨의 여정과 교차되어 그려진다. 어린 오리진인 다마야와 펄크럼의 유능한 오리진인 네반지의 시엔의 이야기는 인간과는 다른 (마치 영화속 X맨 같은) 능력을 지닌 오리진 또는 로가들이 어떻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구원자가 되기도 하는지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잠재된 '다름'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세상인 '고요'제국은 현재 지구의 이전이거나 이후인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읽는 현실 속의 우리는 움직이는 맨틀 위에서 서로 떨어진 대륙에서 살고있지만 고요 대륙은 단 하나의 대륙이다. 그래서 북위권 남위권 중위권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인도의 카스트 처럼 각 마을(소설 속에선 향이라고 불린다)에서 맡은 역할과 재능에 따라 쓰임새 명이 부여된다. 지도자, 혁신가, 완력꾼, 번식사, 의사 등.... 쓰임새 명은 어머니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의지에 따라 바꿀 수도 있나보다. 어쨌든 공동체에게 필요한 능력을 지닌 개인은 선택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내쳐지는 것으로 보인다. 향의 바깥에선 거의 야생과도 같은 생활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쓰임새 명에 따라 한 사람의 가치가 등급 메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게 좀 더 극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그리고 '오리진'으로 구별되는 존재들이 있다. 지구 맨틀 아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힘의 위력만큼이나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다른 존재이기에 그들을 향한 차별과 멸시 그리고 폭력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진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시엔'이 수호자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내뱉는 그 말.

"이건 옳지 않아." 그 속에 이 장면들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비상식적인 논리가 단순한 이해관계에 의해 죄없는 존재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상식이라는 기반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들과 다툼 끝에 그 위에 선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상식'만큼 발전하지 못한게 아닐까. 제 아무리 똑똑하다고 잘난체를 해 보아도 밑바닥엔 '짐승'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면면이 숨어있는 것이다.

 

작가는 일부러 '오리진'일는 단어를 쓴 걸까? 오리진이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 세계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원시의, 비문명의 존재들을 일컫는 단어. 서구의 사람들이 대륙을 발견하고 뻔뻔하게 침략하면서 파괴한 집단을 부르는 단어. 얼마전에 호주의 오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봐서인지... '오리진'이라는 단어에 작가가 넣고 싶었던 생각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소설은 오리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병기가된 오리진 '시엔'의 깨달음과 인내, 그리고 분노를 따라가다보면 이 이야기는 '오리진'에 대한 속죄를 그리고 싶었던 건가.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 생각이 들었을때 스치듯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읽던 페이지를 접고 맨 앞으로 간다.

소설은 이 문장을 앞에 두고 시작한다.

 


다른 이들과 마땅히 동등한 존중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이 글에 대한 총평은 할 수가 없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서사를 읽었지만,

나는 이제 겨우 셋 중 하나를 읽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작가가 미쳤어!" 정도?

'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느냐.'라고 묻는 알라베스터에 대한 시엔의 대답을 그리고 그들이 행하려는 다음 챕터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부서진 대지2를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고마워요황금가지 #부서진대지시리즈 #오랜만에SF #다섯번째계절

 

본 리뷰는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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