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밀레니엄 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소설로도 인기를 끌었고 영화로 제작되어 더 관심을 끌었던 밀레니엄 시리즈.
밀레니엄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본 영화 속 여주인공인 리스베트의 상당히 강한 스타일에 살짝 거부감이 들어 선뜻 볼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그런 여주인공의 스타일이 꽤 설득이 되었다. 러닝타임이 약 3시간이나 되었지만 시간을 내어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에 점수를 훨씬 더 주고 싶다.
책의 제목이자 소설 속의 '밀레니엄'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회고발 잡지의 이름을 말한다.
687페이지라는 결코 적은 수의 페이지가 아님에도 몰입도가 상당했다. 저자 스티그 라르손이 생전 기자 생활도 하고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생전 추구했던 기자정신이 글 속에 녹아들었을까? '밀레니엄' 속 등장인물이며 기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추구하는 기자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p.82 그는 동료 기자들을 경멸했고, 그 경멸은 인간의 기본적 윤리만큼이나 명백한 진실들에 기반했다. 그가 보기에 등식은 간단했다. 터무니없는 투기로 수백만 크로나를 날린 은행 이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사욕을 채우려고 유령회사를 만든 CEO는 감옥에 가야 한다. 마당에 공용 화장실을 놓고 비좁은 원룸을 학생들에게 임대하면서 세금까지 떼먹으려고 월세 영수증을 발행해주지 않는 악덕 집주인은 죄인 공시대에 매달아놔야 한다. |
어느 나라나 비리, 부정부패 없는 나라가 없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p.36 "~ 정부가 수조에 이르는 혈세를 퍼주었고, 거기다 보너스로 외교부를 동원해 동유럽의 문까지 열어주었다. 기업들은 돈을 받아 '현지 합작 벤처회사' 따위를 만들어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비즈니스 판에선 흔히 있는 일 아냐? 어떤 사람들이 죽어라 세금을 내면 다른 놈들이 그 돈으로 호주머니를 두둑이 불리는 것,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지!" |
처음에는 스웨덴 어의 낯선 발음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 등이 익숙지 않았지만 그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페이지 터너였다. 예쁘게 정돈된 목가적 마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은 마을의 예쁜 풍경과는 대조적인 면 때문에 더욱 사건을 잔인하게 보이게 만든다.
밀레니엄의 사회 고발 잡지라는 특성상 처음엔 주로 기업 간 비리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대기업 간 비리, 혹은 기업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리들을 파헤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밀레니엄의 일 외에 많은 양의 페이지를 할애해 말하고 싶은 것은 더 있었다.
p.16 스웨덴 여성의 18퍼센트는 살면서 한 번 이상 남성에게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 |
p.156 스웨덴 여성의 46퍼센트는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 |
p.318 스웨덴 여성의 13퍼센트가 심각한 성폭행을 당하 경험이 있다. |
p.520 스웨덴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 중 92퍼센트는 고소하지 않았다. |
p.521 " ~ 여자들은 끊임없이 실종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든. 예를 들어 이민자들 말이야. 러시아 출신 매춘부랄지.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으로 들어오고 있잖아." |
여성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여성이어서, 사회적 약자여서, 자신보다 힘이 약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범죄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너무나 화가 난다.
잠시 밀레니엄과 떨어져 헨리크의 일을 맡게 된 미카엘. 전혀 진전이 없던 사건은 끔찍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처음에는 드러나는 끔찍한 일들에 충격적이었다가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되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그 희생자들의 고통을, 맺힌 한을,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슬펐고, 화가 났다.
예전에 나는 오히려 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땐 나 스스로 겁이 많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내가 겁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이 간다.
여성 혐오, 남성 혐오. 혐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절대로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누군가를 그토록 혐오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제대로 된 생각,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진지한 생각도 없이, 지식도 없이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에 현혹되어 내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예쁜 것만 보아도 부족할 시간이라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도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가 가득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무 자주 뉴스에서 보도되는 범죄 소식을 들을 때면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범죄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약자를 가려낼 뿐이다. 하지만 성범죄에서 여성 피해자의 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기도 하다. 잠재적 피해자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아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사람들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1부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헨리크 방에르가 원하던 진실도 밝혀졌고,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원하던 진실도 밝혀졌다.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밝혀낸 벤네르스트룀의 각종 비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살짝 감정 이입을 해보았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진실. 전 정권들의 비리도 깨끗하게 밝혀졌으면 얼마나 통쾌하고 속이 시원할까.
헨리크와 미카엘은 각자가 당시 가장 원했던 것을 찾았지만 1부 전체에서 어찌 보면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도 없고, 그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도 얻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2부로 이어져 다뤄지지 않을까. 영화 포스터 때문에 살짝 호감도가 떨어져 있었던 리스베트에대한 이미지는 책장을 넘길수록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을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다니. 나도 아직 멀었나 보다. 그녀의 과거가 어떤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음 시리즈에서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스티그 라르손이 남긴 작품이 밀레니엄 시리즈 단 3권이라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그의 글은 상당히 흡인력이 있었다. 스티그 라르손이 남긴 밀레니엄 시리즈는 3권이지만 또 다른 스웨덴의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이 그 뒤를 이어받아 밀레니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출간했다. 그가 스티그 라르손이 남긴 앞의 시리즈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만의 개성을 살려 이어갔을지 궁금해진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