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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서른의 반격」


그녀의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손원평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서른의 반격」.
무거운 내용이었지만 가독성이 좋아 잘 읽혔다.
「서른의 반격」은 그녀의 흔한 이름만큼이나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지금 이 시대의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다. 보통 사람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세상은 그 보통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아갈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 생각해 볼 것들도 많은 이야기. 너무나 현실적이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짓게 되는 이야기이다.
점점 각박해져가고, 영악해져가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끼여 살아보려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가 자꾸만 작아지고, 숨고 싶고, 그러다 결국 세상에서 스스로를 소외시켜 버린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이런 비슷한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소외되어 버린 작은 존재들. 정규직 취업에 실패하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는 비정규직 직원. 애써 쓴 대본을 대기업에 빼앗겨 버린 무명작가. 몸을 망쳐가며 레시피를 개발했지만 사기당해 빼앗겨 버린 전직 떡볶이 가게 사장. 자신이 거의 쓰다시피 한 책이 그대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되어 억울한 사람. 이들이 모여 이룬 작은 반란! 사소하게 하지만 용기 있게 지속되는 그들의 존재에 대한 외침.
p.8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그전에 벌어진 피, 광장, 투쟁의 흔적은 사진과 다큐에서나 본 겪지 못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세상은 몇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몇 벌자국이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부당함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대세에 머리를 조아려 수긍하면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몹시 특별난 사람이라고, 그러니 제발 나를 좀 주목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나는 하필이면 이 시대에 청춘의 끝자락을 맞이한 숱한 여럿 중 하나이다. |
'보통'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서 '보통'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의 '보통'이다.
'보통'이라는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 보통이었던 것이 지금은 더 이상 보통이 아닐 수도 있듯이 지금 보통이라는 것도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보통'의 기준이 다를지라도 보통 사람이 원하는 것은 시대에 상관없이 같지 않을까.
p.9 나는 추봉(秋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운명이었다. |
추봉이라니! 추봉으로 살게 되면서 앞으로 겪을지 모르는 일들에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읽어내려가던 중. 역시 엄마는 위대했다. 출산이 임박해 통증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각서를 결국 받아내었다. 추봉이 될 뻔한 주인공은 대신 김지혜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첫 번째 수단을 갖는 셈이다. 이름은 '나'라는 존재에 속한 일부인데 간혹 그 일부에 의해 존재가 이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개명을 하기도 한다.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아무튼 추봉은 할아버지의 유언처럼 남겨진 이름이라 개명도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주인공에게는 참 다행한 일이다.
주인공 김지혜는 그 당시 흔했던 이름만큼이나 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녀는 현재 서른 살의 나이로 DM 아카데미의 말단 인턴으로 일해오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정직원이 되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갖겠다는 꿈을 가지고서.
p.32 그 자리는 팔짱을 낄 수 있는 자리였다. 다리를 꼴 수도 있고 갑자기 울린 핸드폰에도 여유 있게, 잠시만요,라며 전화를 받아도 되는 자리.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생각할 거다. 설사 그게 별 볼 일 없는 작은 아카데미의 인턴 자리 면접일지라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결정권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일정 수준의 경험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앉을 수 있는 다리. |
'그래, 그 자리에 있으면 그런 태도가 당연한 거야.'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싫다. 하지만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더 싫다.
interviewee의 태도가 중요한 만큼 interviewer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해 온 노력은 충분히 인정받을만하다. 또한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에게 자신의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실제적으로, 직접적으로 제일 먼저 보여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하고 듣는 말들에 의하면 마치 회사의 이미지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권위의식에 취해 무례하기까지 한 경우도 종종 있다. 면접자들도 어찌 보면 일단은 회사를 찾은 손님들인데도 말이다. 서로 기본적인 예는 갖추었으면 좋겠다.
p.34 정진 씨에겐 그런 수고나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다. 정진 씨는 내 친한 친구지만 존재하지 않으니까. 정진 씨를 만들어낸 건, 이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언제나 같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숨 막히는 일이다. ~ 다들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렵진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도피처가 필요했다. p.35 어딘가 정말 있었으면 좋겠는데, 정진 씨같이 아무 때고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
p.37 생전 만나볼 일 없는 연예인의 사생활이 나를 웃게 한다.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었으니 조금쯤은, 적어도 하루쯤은 다시 버틸 수 있을 거다. |
힘들고 서러운 비정규직의 직장생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장이라는 곳이 맡은 일 외에도 감정 소모 또한 엄청난 곳인 것 같다. 그곳은 직장생활이 아니라 직장 버텨내기이다.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버텨내는 곳. 그곳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원동력을 제공해줄 자신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p.87 그에 따르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건, 장난 혹은 놀이였다. 놀이하듯 부당한 곳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변하거나 확산될 것이다. 그게 그의 주장이었다. |
세상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은 함께 뭉쳐 용기를 내기로 한다. 더 이상 세상이 자신들을 얕보고 이용하지 않도록 자신들의 인생 연극에서 반전 스토리를 만들 계획이다. 스스로가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당당히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모든 관객들이 무대 위로 당당히 올라갈 수 있는 사회.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소신 있게 행동하면 그것이 모여 바뀔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고 사소할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p.233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륙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
온몸으로 나는 특별한 사람이니 나를 보아 달라고 외쳐야 하는 세상에서 그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인정하며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힘든 현실이 자꾸 그것을 잊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개인은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특별함의 기준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답게 반짝인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