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밑줄 긋기]

1.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2.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히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3.가장 먼저 주인공을 결정해야 한다.(일인칭 시점일때는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관찰자 시점일때는 가장 매력적이고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선정하라.) 그리고 주인공에 대해서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보여줘야한다.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고칠 때는 구체적이면서 활용빈도수가 낮은 단어를 생각해내어 고친다. 작가는 거짓말을 `진실처럼`(=핍진성 있게) 말하는 사람이다.(비소설에서 진실이란 실제로 벌어진 일을 뜻하지만 소설에서 진실이란 반박할 부분이 한 곳도 없는 완벽한 이야기를 뜻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플롯이 이끄는 소설(사건 중심, 추리소설, 계속 `어떻게`를 물으며 이야기 전개) vs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동기를 중요시, 계속 `왜`를 물으며 이야기 전개)

4.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 창작의 대략 팔십 퍼센트는, `아, 잘못 썼구나`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캐릭터 설정때문에 다리를 불태우면 캐릭터 중심, 캐릭터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외부의 사건 때문에 다리가 불타면 플롯 중심이다. 캐릭터 중심의 소설은 내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느리며, 플롯 중심의 소설은 외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빠르다. 소설을 다 쓰고 난 뒤에 우리는 플롯을 짤 수 있다. 그러니까 플롯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불타는 다리를 건너갈 때까지 일단 토고(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초고)부터 쓰자.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 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들이다.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5.(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그에게 없는 것)/세상의 갖은 방해=생고생(하는 이야기)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소설의 대화는 현실의 대화와 차이가 난다. 현실의 삶에서는 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하지만, 소설에서는 감추기 위해서 말한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절망한다는 사실을 표정 및 몸짓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진부하지 않은 독특한 이야기를 쓰겠다면 전락의 이야기보다 회복의 이야기에 집중하는게 더 좋을 것이다. 좌절은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아주 중요한 도구다.

6.독자를 감정이입시키기 위한 문장:미문(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 문장)을 써라. 소설에서는 흔한 일을 흔치 않게 쓸 때 미문이 된다.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익숙치 않은 숨은 단어를 많이 쓰면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쉽고 더불어 캐릭터가 생생해진다.

7.해결 방법을 찾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생각이 아니라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말라.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다. 소설을 쓰겠다면 생각하지 말자. 쓰고 나서 생각하자. 우선 감각하고 쓰고 그후에 자신이 쓴 글을 보면서 생각하라.

8.소설가의 일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라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글 쓰는 일˝이라고 대답하겠다. 자신이 잘 몰랐던 일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소설 속 인물과 세계에 대한 정보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날마다 이 재미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 그게 바로 소설가의 일이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하루에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5매 정도라면 최고다. 글을 얼마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숄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됐다. 느리게 쓴다는 것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소설은 혼자 쓰면 안된다. 소설을 쓸 때는 일인칭과 이인칭과 삼인칭을 모두 동원해야만 한다. 쓰려는 소설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해도 마찬가지다. 소설 바깥, 소설가의 자리에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동시에 소설 속 시공간을 초월해 그 모든 사건의 의미를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앉을 것이다.

9.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오해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마음 쓰기]

소설쓰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삶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 `소설가의 일`과 더불어 `글쓴이 자신`에 대해 알게 해준 책.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 쓰는 방법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리라. 소설을 왜 쓰는지에 대한 소설가 자신의 물음과 그에 대한 답으로서의 소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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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9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의 의미와 가장 어울리는 문장들이군요. 쓰기님은 이 책을 가장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