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나신 부모님에 대한 추억과 내밀한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오래 머문다. 작가가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 아버지‘로 호칭하듯,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엄마와 아버지라 부른다. 그만큼 아버지와는 가까워지지 못한 채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엄마와도 많은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부모님이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등에 대해 할머니나 이모를 통해 조각처럼 들은 것이 전부다. 오랜 후에 나에 대해서도 내 아이들은 이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아니, 친척과의 교류가 없는 시대이기에 나의 과거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의 아무런 얘기도 못듣게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다. 이 글은 보게 될까.
📖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
📖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며, 그걸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어렸을 때 나의 꿈은 어떤 직업이 아니었다. 나는 두 가지의 ‘상태‘에 이르고 싶었다. 유능과 교양. 무엇이든 잘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나는 누구에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몰랐고, 알아도 줄 수 없었다. 사공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 지금은 고전이 된 두편의 논문에서 토머스 네이글과 버나드 윌리엄스는 인간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른바 도덕적 운, Moral Luck이다. 이들은 도덕적 평가는 운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과 무관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반박한다. 거칠게 말해 1930년대 독일에 살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악행을 방관하거나 그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는 도덕이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 게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고귀한 행위를 하기가 쉽다. 이런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흔히 ‘행복‘이라 번역되는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은 완전한 삶을 통해 덕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인데, 덕을 갖춘 사람이 되려면 올바른 양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행위자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은 운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내 삶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 이 한없는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단한번의삶 #김영하 #산문 #복복서가 #일회용_인생 #인생사용법 #필멸자 #야로 #전업_독자 #사바사나 #무용 #도덕적_운 #MoralLuck #에우다이모니아 #선한_운명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머리쓰기 #글쓰기 #주말자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