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변천
이기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중세에는이기심을 일곱 가지 죄악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다스렸다. 중세 정치철학을 청산하고 근대적인 정치철학을 전개하였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홉스도 이기심에 대한 분석을 정치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인의 이기심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를 고안했다. 그는 이기심을 가진 개인이 살아가는 ‘자연 상태‘, 국가가 존재하기이전 상태를 야만의 상태로 상정함으로써 국가의 필요성을 정당화하였다. - P33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죄는 사람이 자유의지에 따라 지은 모든죄의 근원이 되는 죄이며, ‘다른 많은 죄의 근원이면서 악습을 만드는죄들‘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 (590-604) 시대부터 이를 일곱 가지로정리하였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탐욕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탐욕은 ‘자기를 위한 열망‘이다. 탐욕의근원은 자기만을 원하는 마음 곧 이기심이다.
주원준, 구약성경의 세가지 ‘탐욕‘」, 「인간 연구』 제22호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2012.봄), 7쪽 각주 2, 15쪽, 18쪽 참고,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과 욕구의 대상을 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추구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이기적인 개인이 아무런 양보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 인간은 ‘고독하고, 곤궁하고, 험악하고, 무자비하고 그리고 단명한다. ‘ 자연 상태에서는 산업이 발전할 여지가 없다. 토지의 경작이나 항해, 편리한 물건, 지표에 대한 지식, 학문과 예술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력의 성과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홉스는 개인이 모두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살 때 나타날 참혹한 결과를 기술하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 절대국가라고 주장했다. 이기심을 제어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장치가 개인에게존재하지 않고 오직 외부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기심을 제어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장치가 개인에게존재하지 않고 오직 외부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죽음과 절대국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절대국가를선택하는 것이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것이다.
120여 년이 지난 뒤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을 경제활동의 원동력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윤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근대 산업 사회가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이기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아담 스미스 이래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은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발전과 공익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재인식되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개인의 자율적 절제와 이것을 바탕으로한 자율적 사회 규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다른사람을 속이거나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절제 안에서 추구되는개인의 자기 이익 추구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경제 메커니즘 속에서 개인의이기심이 한 나라의 부의 축적에 기여하고 타인의 복리에 기여하고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성이 초래할 수 있는부정적인 결과, 인간 소외를 초래한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개인의이기심이 번영을 가져오는 강력한 엔진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탐욕으로 확장될 경우 사회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루소는 사유재산제도가 초래한 인간의 불평등에 주목하여 초기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했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20세기 초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성립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는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망하고 자본주의는 적이 없는 체제로 자리를 잡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다시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랫동안 지속되지않았다. 2008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08년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가진 자들의 탐욕 또는 이기심‘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이기심을 자신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P36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다른 사람의 행운과 불행에 관심을 갖게 하고, 비록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제외하면 얻는 것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사람의 행복을 원하게 하는 어떤 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런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 연민의 정(pity)과 측은지심 (compassion)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비참함을 볼 때 또는 아주 생생한 방법으로 그것을 상상할 때, 그들에게 연민의 정과 측은지심을 갖는다. 다른 사람의 슬픔으로부터 우리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증거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인간 본성의 다른 본원적 정념(passion)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감정(sentiment)을 유덕하고 자비심이 깊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덕하고 자비심이 깊은 사람은 아주 민감하게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하다. 가장 포악한 사람, 사회의 모든 법을 극단적으로 어기는 범법자도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심‘뿐만 아니라 연민과 동정심과 같은 다른 천성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해도 타인의운명이나 처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스스로 어떤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능력을 스미스는 ‘공감(sympathy)‘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인간은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도덕적 가치의 토대를 감정에서 찾았다. 흄도 도덕철학에서 감정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아담스미스는 흡의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흄은 인간의 마음은 서로서로 거울이어서 내 마음에 타인의 마음이 비치고다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이 비친다고 했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통해 나의 마음을 알고 다른 사람은 나의 마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다. 마음의 이런 기능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기쁨과 슬픔을 나의 기쁨과 슬픔처럼 느낀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공감한다. 공감능력은 인간을 서로서로 엮어주고, 이런 엮임은 인간의 도덕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반사회적인 이상(異常)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 P39
공감이 도덕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이성을 도덕의 기초로 삼아 이성이 감정을 억제하거나 통제할 때 인간은 도덕적이 된다는 전통적인 주장에 맞섰다. 서양 전통에서 감정에 대한 이성의 지배가 도덕의 기초라는 주장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등은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도덕적 법칙을 세울 수 있고, 이성이 감정을 지배할 때 이법칙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홉스와 맨더빌은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 존재이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며, 이성은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강구에만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대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이성주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허치슨, 흄, 아담 스미스와 같은 ‘도덕 감정론자‘들은 도덕 합리론자와 홉스, 맨더빌의 입장을 거부했다. 이성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도덕적 행동을 하게 한다는 주장과 인간은 이기적 목적을 위해 이성을 사용한다는 주장을 함께 거부한 것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을 통해 우리는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으며, 타인에대한 공감 능력의 작동으로 이기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공감이 도덕의 기초이고, 공감을 통해 이기성은 통제될 수 있다는것이다.
공감 능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곧 인간의 공감 능력은 보편적이다. 공감 능력은인간의 보편적 특성이기 때문에 도덕 감정론은 진화론적 도덕 이론과 맥락을 함께한다.
아담 스미스는 흄의 공감에 기초한 도덕 이론에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추가했다. 아담 스미스는 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적인 시인(approval)과 부인(disapproval)의 역할에 큰 의미를 두게 되었으며, 공감과 상상력이 도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의 도덕철학의 핵심 개념인 ‘공정한 관찰자‘, ‘일반적 규칙‘, ‘정의의 규칙‘, ‘의무‘는 모두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에서 도출되었다.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공감은 타인의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옮겨 상상력을 이용해 그것과 같은 감정을 끌어내려 하는, 또는 끌어낼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인간 감정의 역동적인 능력이다. 우리는 이런 공감 능력을 사용해 타인의감정과 행위를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시인 또는 부인의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공정한 관찰자를 형성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또 다른 자기다. 우리는 관찰자로서의 경험그리고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공정한 관찰자가 타인의 감정과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배운다.
‘공정한 관찰자‘는 아담 스미스의 고유한 개념으로 공감과 함께 그의 도덕철학의 근간을 구성하는 개념이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공정한 관찰자를 설정하고 공정한 관찰자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 행동하기 전에 그에게 묻고, 조언을 구하여, 그가 시인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공정한 관찰자의 근원은 이기심이 아니라 공감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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