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내용과 주체와 고유한 의미

법형식에 특수한 고유성은 그것의 순수하게 법학적인 
성격 속에서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서에는 결정이 갖는 
법적 효력의 철학적 의미나, 메르클이 주창한 불변의 
시공을 초월한 법의 ‘영원성‘에 대한 사변 등을논 하지는 
말자. "법형식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발전은 
동일성을 포기하는 것이니까"라고 메르클이 말할 때, 
결국 이 말은 그 스스로의내면에서 형식에 대한 조잡한 
양적 관념이 기능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을 이렇게 생각해서는 어떻게 인격적 계기가 법이론 
및 국가이론에 도입되는지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은 단순하게 보편적인 법규만이 
기준일 수 있다는 데에 입각한 예로부터의 법치국가적 
전통에 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법이 권위를 부여한다"고 로크는 말하는데, 그는 여기서 법률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명령, 즉 군주의 개인적 명령과 대립시켜 
사용한다. 그러나 법률은 누가 권위를 주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로크는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임의의 법규를 누구나 집행하고 실현시킬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 P49

결정규범으로서의 법규는 결정이 내려져야 함을 말할 뿐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만약 최종 심급이 없다면 규범의 내용적 타당성은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최종심급은 결코 
결정규범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권한이다. 이 권한의 문제는 법조문이 
담고 있는 내용적인 법적 성질로부터 도출될 수도,
나아가 그것을 통해 답을 내릴 수도 없는 것이다. 
권한 문제에 대해 자료를 참조하라고 답하는 것은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결단주의적‘ 사유의 예시로서의 홉스

아마 법률과학에는 두 개의 유형이 있을 텐데, 그것은 
법적 결정의 규범적 특성에 대한 과학적 의식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구분된다.(일부러 신조어를 
만들자면 결단주의적 유형의 고전적 대변자는 홉스이다. 
다른 쪽 유형이 아니라 그가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률을 만든다"(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라는 
대립의 고전적 정식화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이 결단주의적 유형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자명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권위 대 진리의 대립은 슈탈이 내세운 "다수파가 아니라 
권위"라는 대립보다 근본적이며 명료한 것이다. 

홉스는 더 나아가 이 결단주의와 인격주의 사이를 관계 
짓는 동시에 구체적 국가주권대신에 추상적으로 효력을 
갖는 질서를 내세우려는 온갖 시도를 배격하는 결정적인 
논점을 제시했다. 그는 영적 권력이 한 단계 위의 질서이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여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 
심사숙고한다.

그리하여 이런 논거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즉 하나의 ‘권력‘이 다른 권력에 복종해야 하다면, 그것은 
어떤 권력의 소유자가 다른 권력의 소유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이다. 상위와 하위 
질서에 대해 언급하고 추상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는 
시도 따위는 그에게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We cannot 
understand"). "왜냐하면 복종, 명령, 권리, 그리고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인격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가 상식적인 건전함과 냉정함으로 정확하게 
사용하는 비유 중 하나를 통해 홉스는 이를 그려내 보인다. 
하나의 권력 혹은 질서가 하위에 놓인다는 사실은 
말 안장 제조 기술이 승마 기술보다 하위에 놓인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데, 이런 추상적인 질서의 위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개개의 안장 제조 기술자들이 
모든 개개의 승마 기술자에 종속되어 복종하도록 
의무화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중요한 점이다.

17세기 추상적 자연과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이가 이토록 
인격주의의 입장을 취했음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홉스가 철학자이자 자연과학 사상가로서 자연계의 현실을 
파악하려 한 것처럼, 법학 사상가로서 사회적 삶의 실제 
현실을 파악하려 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 P51

그는 자연과학적 실재의 현실성과는 상이한 법학적 현실과 삶 따위는 자각하지 못했다. 또한 수학적 상대주의나 
유명론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 P51

그는 국가라는 통일체를 어떤 것이든 주어진 한 
기점으로부터 언제라도 구성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홉스의 과학성이 아무리 강했다 
하더라도, 그로 하여금 법령스 속에 있는 법적 삶 특유의 
실재성을 간과하게 할 정도로 당시의 법학적 사고가 
자연과학적 사고에 의해 압도당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탐구하고자 했던 형식은 구체적으로 규정된 
심급으로부터 비롯되는 결정이다. 결정이 독자적 
의미를 가짐으로써 결정의 주체가 그 내용과 함께 
독자적 명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법적 삶이라는 현실에서 중요한 점은 누가 결정하느냐이다. 내용의 올바름 문제와는 별도로 결정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를 물을 필요가 있다. 결정의 주체와 내용의 
대립이라는 점과 그 주체 고유의 명료성이라는 점이야말로 법학적 형식 문제의 거처이다. 법학적 형식은 법학적 
구체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초월적 형식의 
초월론적 공허함과 무관하다. 그것은 또한 기술적 
명료화의 형식과도 다르다. 

이는 본질적으로 객관적이고 비인격적인 목적에 관심을 
갖기 대문이다. 또한 법학적 형식은 감성적 형태의 형식도 
아니다. 그런 것은 결정과 무관한 것이기에 그렇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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