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언적 해석

통상적으로 다수의 대부분 4개부터 5개까지 해석방법 혹은 해석의 전범규범(Kanon)들이 구별되는데, 그 분류와 특히 하위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가장 합목적적으로 보이는 것은 지금은 아래의 구별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의미있는 표지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제기된 문제들을 성공가능성을 가지고 해결을 
시도해 볼 수 있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하는 
규범을 위해 발견되어야 하는 ‘해석의소재‘(Auslegungsmaterial)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석이 필요한
법률상태에서만으로는, 제시된 해석의 문제들을 포함하여,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 그 이상을 도출해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 
전제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법률로‘(blok auf das Gesetz) 향하는 환원주의적 관점 (reduktionistische Blick)은, 아래에서 곧 언급되는 바와 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법학의 개별적 방법론들을 먼저 따로 떼어 
언급하고 예를 통해서생생하게 만들어 보기로 한다. 
우선순위 관계와 어려운 사례들에서 통합적으로 끌어 
모아 사용하는 것은 그 후에 이어서 언급하는 것이 
의미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서술할 수 있고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기 때문에 
(달리 말해 기본적으로 특별히 중요해서 그런 것이 아님) 
아래에서는 가능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반민법 제578조의 적용과 그 이전의 그 조문의 해석을 요구하는, 상속법적 사실관계가 그 예로 사용된다; 
그 곳에서는(독일민법 제2247조는 서명의 요구를 
상세하게 정하고 있는데 반해 예를 들어 스위스민법적 
제505조와 유사함) 사문서방식의 증인이 없는 유언의 
효력에 대해, 유언자(Erblasser, 상속인)는
a) 서면 글을 자신의 손으로 작성하고
b) 자신의 이름을 (기재하고)
c) 자신의 손으로 서명하였다는것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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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지성사의 복원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앞 세대 학자들이 하지 못한 작업, 즉 뒤늦게나마 
전통문화를 현대문명과 접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통 보존에 힘쓴 일부 선각자들의 지적 성과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실상 20세기 초반과 
중반의 주요 지성들이 이룩한 업적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우리는 전통문화와 현대문명의 올바른 결합 방식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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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법은 사건 하나하나마다 치밀한 논리를 설파하고, 
그걸 기초로 하나의 법 체계를 완성시킨 판사의 손에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다음 사건에서 판단의 근거가 되고, 선례구속의 원칙으로 
귀결된다. 영미에서도 물론 입법부를 따로 두어 어떤 국가 
못지않게 많은 법률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충적인 것이다. 영미에서 법은 판사가 선언하고 가꾼다. 
그래서 판사들은 행정부의 각종 월권행위에 대해 꾸짖기도 하고, 위헌적 요소가 있다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실정법이 존재하고, 행정부의 유권해석이 있다고 해도 
판사에게 더 많은 법률해석 권한이 있다. 이처럼 영미권에서는 판사가 말해주는 법을 더 맞는 법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사법부 우위의 원칙‘이 
법 문화 속에 정착되어 있다. 특히 미국의경우가 그렇다.

영미법 세계의 판사는 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경력을 쌓거나 공직을 거친 사람들이다. 특히 검사 출신이 
많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가령 성공적인 경력과 
동료 변호사들 사이의 좋은 평판, 정치적 영향력 등이 
그것이다. 판사가 된다는 것은 나이 들어서 받는 
훈장과도 같다. 판사가 되면 존경과 영예가 뒤따른다. 
판사는 사법부고위직이기도 해서 월급도 많이 받고, 
비서도 생기고, 연구원도 배정된다. 특히 주대법원과 
연방대법원에 오른 판사는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그들이 설시한 내용을 신문기사가 다루기 시작하고,
각종 연구논문에서 분석 대상이 된다. 그들은 이미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다.

대륙법 세계에서 판사는 그저 공무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중략))
특히 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을 통과해야 수습 판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프랑스 등 몇몇 국가에서는 판사 시험을 보려면 특수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다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주로 
지방의 심급이 낮은 법원에서 정식 판사로 임명되고, 소위 
연공서열형이라고 해서 능력과 나이 등의 요소를 감안해 
한계단씩 직급이 올라간다. 급여도 미리 예정된 대로 
올라가고,판사 역시 임금 인상과 근무 조건의 개선, 신분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판사 모임에 가입한다.
대륙법 국가에서 이 외에 다른 방식으로 판사가 되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변호사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나 법학 교수들이 바로 높은 직급의 판사로 임명되는 국가가 없지는 않지만(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헌법재판소 판사로 가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판사 직역은, 심지어 대법관까지도, 주로 전문적인 판사 경력자들로 채워진다. 
대륙법 국가의 판사 역시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존경과 예우를 받지만, 그건 판사에게만 국한된 대우는 아니다. 다른 
행정부 고위 관료가 받는 예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판사의 사고 체계나 편견, 선입견 등을 이해할 목적으로 
판결문을 읽는 사람은 없다. 판결문에 개인의 심오한 사상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대륙법 국가에서 고등법원 이상은 다 합의부로 되어 있다. 
찬반 숫자를 세서 단체 명의로 의견이 나간다. 대개는 
반대의견이나 보충의견을 작성하거나 출간하지도 않고, 
반대가 몇 명인지도 잘 세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합의부는 익명에 가깝다(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륙법 판사나 영미법 판사가 비슷한 일을 하는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역할이 다르다. 
대륙법 판사는 로마의 법관이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을 
이어받아 하고 있고, 판사에게 특별히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 전통은 혁명가들에 의해서더 강화되었다. 합리주의 
전통과 삼권분립의 원칙도 물론 대륙법판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대륙법 판사의 선발부터 승진, 사회가기대하는 
역할은 영미법 판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쉽게 말하면,
대륙법 판사에게 기대하는 바는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최근 들어서 성문헌법이 자리 잡고, 법률의 위헌심사가 강화되는 것과 보조를 맞추어 대륙법 판사의 이미지에 약간의 변화가감지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콜롬비아, 과테말라,스페인 등지에 특별법원이 설립되었고, 
여기 소속된 판사는 일반법원에 소속된 판사와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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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 제한의 가능성

기본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매우 강하게 보호를 받는 
권리이다. 국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헌법에서 정하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 개인의 기본권이 항상 최
대한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한 사람의 기본권 행사로 인하여다른 사람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기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각자의 
기본권을 적절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물론 기본권의 성격상 제한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등이다. 사람의 내심에 어떤 사상을 
가지는지에 대하여 강제하거나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본권도 개인의 내심의 영역을 벗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제한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 혹은종교적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7조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기본권 제한의 요건
위의 헌법 규정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 요건을 나타내고 있다. 
첫 번째로 기본권 제한의 목적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해당하여야 한다. 이 요건의 취지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기본권을 더잘 보호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에 기본권 
제한과 관련된 내용이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게 된다면,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없다.

과잉금지의 원칙

이와 같은 기본권 제한의 요건과 관련하여 과잉금지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다음과 같은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의 목적은 헌법과 법률의 체계 
내에서 정당하여야 하고(목적의 정당성), 수단이 입법 목적을 실현함에 있어 가장 적절하여야 하며(수단의 적합성), 
보다 완화된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지 모색함으로써
그 제한이 필요최소한의 것이 되게 하여야 하고(침해의 
최소성), 규제함으로써얻을 수 있는 공익이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적 불이익보다 크거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법익의 균형성).

헌법재판소의 구성

헌법에 관한 최종적 판단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가대한민국 역사에서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헌법률심판을 담당하는 곳은 헌법이 제정된 1948년부터 헌법의 개정 때마다 헌법위원회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으로 변경되었으며, 정치적 혼란으로 헌법재판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기도 하였다. 우리 헌법은 1987년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헌법재판소를 두어,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담당하도록 정하였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법이 1988년제정되어 비로소 헌법재판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시행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국민이 기본권 침해에 대하여 직접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헌법소원심판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헌법재판소는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6년이며 연임도 가능하다. 9명은 모두 대통령이임명하는데, 그중에서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장은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가 헌법재판관 선출에 참여하도록한 것은 3권에 대하여 중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권한

헌법에서 정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은 ①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② 탄핵 심판③ 정당의 해산 심판 ④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⑤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이다. 

•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는 선거권

헌법에서 직접 정한 선거권에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권이 있다. 국민은 보통·평등·직접 · 비밀선거에 의하여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한다. 국회의원은 각 
선거구별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모두 4년마다 
이루어지는 선거에 의하여 결정된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는 5년마다 이루어지며, 만일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구성 방법을 법률로정하도록 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지방자치법은 선거를 통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주민은 자신이 속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요한 행정과 입법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교육감도 
주민이 직접 선거를 통하여 뽑는다.

국민투표권

헌법은 국민이 직접 국가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권을 정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국민투표에 붙인 외교·국방 ·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관한 국민투표권이고(헌법 제72조).
다른 하나는 헌법의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권이다(헌법 제130조 제2항).

국민투표권은 국민이 국가의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는 권리이며, 선거권과 함께 국민의 참정권에 포함되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국민투표법에 의하면, 국민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선거권과는 달리 만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헌재결정례]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권
헌재 2016.6.1. 선고 2010헌마394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임과 동시에 소속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선거를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서는 국민이라는 자격만으로 충분한데 반해, 특정한 지역구의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과의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주민등록과 국내 거소 신고를 기준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권을 인정하는 것은 해당 국민의 지역적 관련성을 확인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선거권 조항과 재외선거인 등록신청 조항이 재외선거인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재외선거인의 선거권을 침해하거나 보통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국민투표는 선거와 달리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절차이므로, 국민투표권은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이처럼 국민의본질적 지위에서 도출되는 국민투표권을 추상적 위험 내지 선거 기술상의 사유로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부여한 참정권을 사실상 박탈한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재외선거인의 투표권을 제한한 국민투표법 조항은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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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럽에 《나폴레옹법전》(1804)과 같은 법전편찬이 유행했다. 그런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발간된 법전과 중세의 보통법, 그리고 19세기 법전들은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이 거의 같았다. 이 법전들은 서로 
기본 개념도 비슷하고, 구조도비슷하고, 무엇보다 목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여 년이 지나서 21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통용되고 있는민법전에조차 초창기 로마법, 중세 보통법, 19세기 민법전의 흔적이 선명하다. 로마민법은 이처럼 대륙법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가장 오래,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연구된 
텍스트다. 그래서 일부 민법학자들은 법 중의 법은 민법이고, 그중에서도 로마법이 최고의 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을 필두로 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이탈리아의 
독립부흥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전개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 독립전쟁,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터키로부터 그리스의 독립 등 세계사의 지형을 
뒤흔든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가히 질풍노도의 시대라 
할만했다. 이 시대의 산물이 바로 헌법과 행정법이라는 
두 공법이다.

앞서 로마민법과 교회법과 상법에서 나온 5개 기본법, 
즉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에 이 헌법,
행정법이 합쳐져 7개의 근대법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혁명을 겪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봉건잔재의 유무였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봉건제도의 찌꺼기가 남아서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 반면에미국에서는 봉건제도가 뿌리째 힘을 잃어 
사회 · 경제적인 영향이 미미했다 (미국은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이 세운 국가기 때문에 단절할 과거도 없었다). 

그래서 대륙법 세계에서의 혁명운동은 반봉건투쟁과 
연계되어 있었다. 개인의 소유권을 특히 강조한 것이라든지, 국가의 소유권 보호 의무를 강조한 것도 모두 봉건제도를 
끝장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국가 말고 다른 권력은 다 
필요 없다고도 했다. 신분도사라졌다. 사적 자치를 
강조하고, 장소와 신분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의사대로, 종으로 횡으로 
신분 이동을 할 수 있는 사회로 가고자 했다. 헨리 메인 
경이 말한 "신분에서 계약으로"는 이런 혁명운동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제는 같은 조건의 개인들만 남아 있다. 혁명운동에서는 ‘그들의 소유권은 절대적이며,
그들 사이 계약은 자유다‘라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혁명이 가는 길은 곧 민족국가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봉건질서가 무너지면서 이제 충성의 대상은 오로지 국가밖에 남지 않았다. 영주도 사라지고 교회도 사라졌다. 
종교적 의무는 더 이상 법적의무가 아니며, 교회법원은 
남아 있던 특권마저도 모두 빼앗겨버렸다. 가족관계조차 
교회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고 규율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가 폐지되고 길드와 조합의 규칙 제정권도 
없어졌다. 법은 전부 국법으로 통합되어 법적인 관계가 
순식간에 아주 단순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인과 
국가만 남은 것이다.

여기에 민족주의의 깃발이 추가되었다. 민족적 정체성, 
민족문화, 민족의 언어와 국가가 합쳐졌다. 
이제는 보통법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법이 우위에 
올라섰다. 물론 내용은 기존 그대로였다. 보통법의 내용을 
가져와서 그걸 국법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국법은 보통법보다 중요해졌고, 국법이 보통법의 
변형이라는 점은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자긍이 되었다.

혁명 이념은 이들의 혼합물이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것은, 이들 모든 요소가 조금씩 과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법과민족주의는 특히 강조되어 있다. 반면에 타파해야 할 과거는 더 어두운 색으로 대비되어 있다. 혁명이란 원래 그처럼 성급하고 이상적이다. 개혁 과정에서의 문제쯤은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혁명의 역사에서 이념이 
이성을 대체하고 신념은 교조로 바뀌며 이상이 공상으로 
부풀려진 이유다.

특히 프랑스는 10월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와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지나친 낙관론이 득세해서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면 "혁명이곧 종교"가 된 상황이었다. 이때쯤 프랑스 
바깥으로 퍼져나간 법을보면, 무엇이든지 한번 강조하기 
시작하면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권력분립을 강조하다 보니까 행정사건을 전담하는 
행정법원을 따로 둔다든지, 입법권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를 아예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사법권을 강하게 견제하다 보니 판사를 법원 
서기처럼 격하시킨다든지하는 식이었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이나 계약자유의 원칙도 지나친면이 있었다. 
공법과 사법의 철저한 분리도 사실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법은 신의 뜻이다. 신이 직접 말씀으로 
명령했든, 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통해서 만들었든 법은 
신의 선물이라는사상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자연법 사상이다.하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이런 사상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이후 미국의 독립 선언에서도 신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법의 창조자는 이미 신에서 국가로 바뀐 뒤였다. 자연법 사상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가 결국 승리한 것이다.

자연법 사상은 혁명의 주요 동력이기는 했지만, 국가 정책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자연법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어겨도 이를 응징할 기관이 없는 법이었다. 
그보다는 법실증주의가 현실적인 구상으로 생각되었다. 
법실증주의란 국가가 제정한 법의 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법학 교과서에서는 자연법 사상과 법실증주의가 다툰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세는
법실증주의로 오래전에 기울었다.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서구 세계는 법실증주의의 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법을 만드는 주체가 여럿 있었다. 가령 지방의 
영주부터 시의회, 황제, 교회까지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기관이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서구 세계에서 모든 
입법권은 국가 한 곳으로 수렴되었다. 

국가가 법을 공포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국가밖으로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내부적으로도 다른 어떤 법에 기속되지도 않았다. 
국가만이 법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법률제정권이 없었다. 

보통법이나 관습법도 국가가 인정하기 때문에 법이 되었던 것이지, 그 자체는 법이 아니었다. 유럽은 바야흐로 
법실증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법실증주의란 결국 국가가 국내외적으로 입법권을 
독점하는 체제를 뜻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이 바로 
혁명기에 발원한 권력분립이론이다. 법을 만드는 
기관은 하나여야 하고, 다른 기관, 특히 법원이 법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입법권은 국민이 선출한 기관에게 있다. 그래야 국민의 
뜻이 법에 구현된다. 이 이론으로 인해 판사라는 직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판례는 법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일단기억해두기를 바란다. 옛날에 판결한 것을 기초로 새로운 판결을하는 이른바 
선례구속의 원칙 (stare decisis)은 대륙법에 없다. 
대륙에서는 판례가 법이 아니다. 법원은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권력분립이론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륙법에서 법은 법률, 명령·규칙, 그리고 
관습법이다. 이것 외에 다른 법은 없으며, 이 법들이 
적용되는 순서 또한 정해져 있다. 법률이 가장 위에 있고, 
관습이 가장 아래에 있다. 법률과 명령이 모순될 때는 
법률이 우선하고, 명령과 관습이 모순될 때는 명령이 
우선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대륙법의 특징이다. 대륙법에서 판사는 법을 
기계적으로적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법인지 
판사에게 확실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해서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할때, 대륙법 판사는 법률, 
명령·규칙, 관습법 세 가지만 보면 된다.
그것 외에 다른 학설이나 교과서는 없다. 
판례도 마찬가지다. 판례는 법이 아니다.

반면에 혁명 이념과 그로부터 발전된 거의 교조에 가까운 
법이론의 영향을 덜 받은 영미법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가령 영미의 보통법(common law)은 법률과 판례와 관습법의 집합체이고, 그것을 법으로 인식하는 데 전혀 이견이 없다. 영미법 세계에서 보통법(common law)은 역사의 산물이지, 법 이론의 결과가 아니다. 

국회가 제정한 법이 법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것만이 법은 아니다. 또 국회가 만든 법이 판례보다 
위라는생각도 없다. 대강 순서를 매겨보면 법률, 명령·규칙, 판례라는 식으로 배열될 것 같지만 구체적 사건에서 보면 
늘 그런 것도 아니다.
영미 보통법(common law) 안에서는 이 법들의 순서에 
집착하거나특정 법의 우열을 주장하지 않는다. 
훨씬 더 유연하게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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