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럽에 《나폴레옹법전》(1804)과 같은 법전편찬이 유행했다. 그런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발간된 법전과 중세의 보통법, 그리고 19세기 법전들은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이 거의 같았다. 이 법전들은 서로 
기본 개념도 비슷하고, 구조도비슷하고, 무엇보다 목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여 년이 지나서 21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통용되고 있는민법전에조차 초창기 로마법, 중세 보통법, 19세기 민법전의 흔적이 선명하다. 로마민법은 이처럼 대륙법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가장 오래,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연구된 
텍스트다. 그래서 일부 민법학자들은 법 중의 법은 민법이고, 그중에서도 로마법이 최고의 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을 필두로 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이탈리아의 
독립부흥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전개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 독립전쟁,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터키로부터 그리스의 독립 등 세계사의 지형을 
뒤흔든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가히 질풍노도의 시대라 
할만했다. 이 시대의 산물이 바로 헌법과 행정법이라는 
두 공법이다.

앞서 로마민법과 교회법과 상법에서 나온 5개 기본법, 
즉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에 이 헌법,
행정법이 합쳐져 7개의 근대법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혁명을 겪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봉건잔재의 유무였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봉건제도의 찌꺼기가 남아서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 반면에미국에서는 봉건제도가 뿌리째 힘을 잃어 
사회 · 경제적인 영향이 미미했다 (미국은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이 세운 국가기 때문에 단절할 과거도 없었다). 

그래서 대륙법 세계에서의 혁명운동은 반봉건투쟁과 
연계되어 있었다. 개인의 소유권을 특히 강조한 것이라든지, 국가의 소유권 보호 의무를 강조한 것도 모두 봉건제도를 
끝장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국가 말고 다른 권력은 다 
필요 없다고도 했다. 신분도사라졌다. 사적 자치를 
강조하고, 장소와 신분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의사대로, 종으로 횡으로 
신분 이동을 할 수 있는 사회로 가고자 했다. 헨리 메인 
경이 말한 "신분에서 계약으로"는 이런 혁명운동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제는 같은 조건의 개인들만 남아 있다. 혁명운동에서는 ‘그들의 소유권은 절대적이며,
그들 사이 계약은 자유다‘라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혁명이 가는 길은 곧 민족국가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봉건질서가 무너지면서 이제 충성의 대상은 오로지 국가밖에 남지 않았다. 영주도 사라지고 교회도 사라졌다. 
종교적 의무는 더 이상 법적의무가 아니며, 교회법원은 
남아 있던 특권마저도 모두 빼앗겨버렸다. 가족관계조차 
교회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고 규율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가 폐지되고 길드와 조합의 규칙 제정권도 
없어졌다. 법은 전부 국법으로 통합되어 법적인 관계가 
순식간에 아주 단순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인과 
국가만 남은 것이다.

여기에 민족주의의 깃발이 추가되었다. 민족적 정체성, 
민족문화, 민족의 언어와 국가가 합쳐졌다. 
이제는 보통법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법이 우위에 
올라섰다. 물론 내용은 기존 그대로였다. 보통법의 내용을 
가져와서 그걸 국법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국법은 보통법보다 중요해졌고, 국법이 보통법의 
변형이라는 점은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자긍이 되었다.

혁명 이념은 이들의 혼합물이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것은, 이들 모든 요소가 조금씩 과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법과민족주의는 특히 강조되어 있다. 반면에 타파해야 할 과거는 더 어두운 색으로 대비되어 있다. 혁명이란 원래 그처럼 성급하고 이상적이다. 개혁 과정에서의 문제쯤은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혁명의 역사에서 이념이 
이성을 대체하고 신념은 교조로 바뀌며 이상이 공상으로 
부풀려진 이유다.

특히 프랑스는 10월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와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지나친 낙관론이 득세해서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면 "혁명이곧 종교"가 된 상황이었다. 이때쯤 프랑스 
바깥으로 퍼져나간 법을보면, 무엇이든지 한번 강조하기 
시작하면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권력분립을 강조하다 보니까 행정사건을 전담하는 
행정법원을 따로 둔다든지, 입법권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를 아예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사법권을 강하게 견제하다 보니 판사를 법원 
서기처럼 격하시킨다든지하는 식이었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이나 계약자유의 원칙도 지나친면이 있었다. 
공법과 사법의 철저한 분리도 사실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법은 신의 뜻이다. 신이 직접 말씀으로 
명령했든, 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통해서 만들었든 법은 
신의 선물이라는사상이 로마가톨릭교회의 자연법 사상이다.하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이런 사상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이후 미국의 독립 선언에서도 신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법의 창조자는 이미 신에서 국가로 바뀐 뒤였다. 자연법 사상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가 결국 승리한 것이다.

자연법 사상은 혁명의 주요 동력이기는 했지만, 국가 정책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자연법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어겨도 이를 응징할 기관이 없는 법이었다. 
그보다는 법실증주의가 현실적인 구상으로 생각되었다. 
법실증주의란 국가가 제정한 법의 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법학 교과서에서는 자연법 사상과 법실증주의가 다툰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세는
법실증주의로 오래전에 기울었다.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서구 세계는 법실증주의의 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법을 만드는 주체가 여럿 있었다. 가령 지방의 
영주부터 시의회, 황제, 교회까지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기관이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서구 세계에서 모든 
입법권은 국가 한 곳으로 수렴되었다. 

국가가 법을 공포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국가밖으로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내부적으로도 다른 어떤 법에 기속되지도 않았다. 
국가만이 법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법률제정권이 없었다. 

보통법이나 관습법도 국가가 인정하기 때문에 법이 되었던 것이지, 그 자체는 법이 아니었다. 유럽은 바야흐로 
법실증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법실증주의란 결국 국가가 국내외적으로 입법권을 
독점하는 체제를 뜻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이 바로 
혁명기에 발원한 권력분립이론이다. 법을 만드는 
기관은 하나여야 하고, 다른 기관, 특히 법원이 법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입법권은 국민이 선출한 기관에게 있다. 그래야 국민의 
뜻이 법에 구현된다. 이 이론으로 인해 판사라는 직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판례는 법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일단기억해두기를 바란다. 옛날에 판결한 것을 기초로 새로운 판결을하는 이른바 
선례구속의 원칙 (stare decisis)은 대륙법에 없다. 
대륙에서는 판례가 법이 아니다. 법원은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권력분립이론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륙법에서 법은 법률, 명령·규칙, 그리고 
관습법이다. 이것 외에 다른 법은 없으며, 이 법들이 
적용되는 순서 또한 정해져 있다. 법률이 가장 위에 있고, 
관습이 가장 아래에 있다. 법률과 명령이 모순될 때는 
법률이 우선하고, 명령과 관습이 모순될 때는 명령이 
우선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대륙법의 특징이다. 대륙법에서 판사는 법을 
기계적으로적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법인지 
판사에게 확실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해서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할때, 대륙법 판사는 법률, 
명령·규칙, 관습법 세 가지만 보면 된다.
그것 외에 다른 학설이나 교과서는 없다. 
판례도 마찬가지다. 판례는 법이 아니다.

반면에 혁명 이념과 그로부터 발전된 거의 교조에 가까운 
법이론의 영향을 덜 받은 영미법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가령 영미의 보통법(common law)은 법률과 판례와 관습법의 집합체이고, 그것을 법으로 인식하는 데 전혀 이견이 없다. 영미법 세계에서 보통법(common law)은 역사의 산물이지, 법 이론의 결과가 아니다. 

국회가 제정한 법이 법이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것만이 법은 아니다. 또 국회가 만든 법이 판례보다 
위라는생각도 없다. 대강 순서를 매겨보면 법률, 명령·규칙, 판례라는 식으로 배열될 것 같지만 구체적 사건에서 보면 
늘 그런 것도 아니다.
영미 보통법(common law) 안에서는 이 법들의 순서에 
집착하거나특정 법의 우열을 주장하지 않는다. 
훨씬 더 유연하게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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