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기본서












우리는 자신의 닥쳐올 미래와 운명에 대하여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려움과 좌절을 겪을 때는 더욱 그렇지만, 평소에도 항상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과 의문 등으로 운명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언제나 잘살고 행복해질 것인가? 등등 인생의 근본 문제로 자문자답하며 주변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보기도 하지만 
확실하고 명쾌한 답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대부분 그 뜻을이루지 못하거나 중간에 
실패하여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아 나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데, 명리학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관심이 없다가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와 좌절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주팔자 
운명의 실체를 궁금해하게 되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선각들의 오랜 연구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지혜와 진리의 학문이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단할 수 있는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진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를 작성할 때 기준점이 되는 것은 바로 절기이다. 사주는 음력 생일을 알아야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의 청소년들 같은 경우에는부모님들이 양력 생일만 알고 있어 사주를 못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사주를 보는 데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태어난 날짜와 시간만 정확하게 알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사주를 작성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점은, 사주를 구성할 때는 무엇보다도 어느 절기 사이에 태어났느냐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음력 1월에 태어났어도 그 해의 절기에 따라서 이 되기도 하고, 子月이 되기도 한다. 즉 입춘이 지나고 경칩 전에 태어났으면 寅月이 되고, 입춘에 태어났으면 子月이 되는것이다.
이처럼 사주에서 절기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주를 정할 때는 무슨 절기가 지난 뒤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생년이나 생월 모두 절기의 절입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행운이란 운이 흘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타고난 사주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돌아오는 운과 만날 때 어떤 변화를 이루며, 그로 인한 길흉화복의 변화가 어떠한가를 예단하는 것으로 그 사주가 처한 환경이요, 의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사주를 해당하는 기간 동안 관리하는 위탁 관리자와 같은 것이다. 사주와 행운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행운과 사주를 합해서 말 그대로 운명(運命)이라 한다.
사주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행운은 그 차가 앞으로 운행해야 할 도로와 같다고 할수 있다. 사주로 자동차의 차종을 알 수 있다면, 행운으로는 그 차가 달려가는 도로의상태를 아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부귀빈천이나 직업, 건강 등에 관한모든 사안은 사주의 구성에 달려 있지만, 그 변화의 상태와 시기는 행운에 달려 있어행운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주 좋은 것이 운 좋은 것만 못하다‘라고 하며 사주보다 대문이나 년운 등 행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격국용신이 잘 이루어져 있고, 음양오행이 조화롭게 잘 배합되어 있는 좋은 사주는 길운을
만나면 크게 발복하며, 평운에는 잘사는 것은 물론이요 
흉운에도 크게 잘못되지 않고 일생을 무난하게 살아 나간다. 그러나 반대로 사주가 격국용신이 미약하고 중화를 이루지 못하고 편중되어 있는 경우에는 길운이 오더라도 크게 발복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행운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주 선천명을 잘 타고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운에서 대운은 월주의 연속선상에서 사주를 보좌하는 작용을 하므로 사주원명에서 부족했던 점을 대운에서 채우면 파격이었던 사주도 새로운 격국을 이룰수도 있고, 반대로 대운에 의해 멀쩡했던 사주가 파격이 되는 수도 있다. 그만큼 행운의 작용력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육신은 일간과 사주의 나머지 7자와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으로이라고 한다. 즉 일간과 사주의 나머지 글자와의 생극과 음양의 관계를 가려 나 자신인보과 비겁성, 식상성, 재성, 관성, 인성으로 구분되는 여섯 가지의 별(星)을 말하는 것으로 음양으로 구분되어 심성이 되는 것이다.
육친과 심성은 각기의 고유한 기질과 속성으로 사주의 주인공인 일간에게 성정과성격, 특기와 재능, 적성과 직업, 건강과 재물,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상 등 모든 것을규정지어 주는 것으로서 명리학의 기본이요, 사주의 핵심이다.
이 육신을 통하여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사주의 기본적인 제반 사항을 파악함은 물론이고, 후천적으로 일주가 운에서 만나는 대문과 년운, 월운, 일문과의 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며 변화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겁재는 남자에게는 누나와 누이동생이 되고 여자에게는 오빠와 남동생으로 볼 수있으며 이복형제, 경쟁자, 동창생, 동인, 거래인, 직장 동료, 모임이나 단체 등을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채권자, 손재, 불화, 배신, 투쟁, 강제, 폭력, 강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명에 겁재는 남편의 여직원이나, 애인 또는 첩 등이 된다.
비견과 다른 점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거나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자기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사이가 겁재에 해당한다.
겁재는 정재를 파극한다는 뜻으로, 나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정재란 남자에게는 부인이요, 재산에 해당하므로 겁재는 흉함이 많고 강제성을 띤다.
겁재의 성격은 비견과 같이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나, 비견과 다른 점은 비견이 양성적이라면 겁재는 음성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겁재는 자존심을 표면에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대인관계도 비교적 원만하다. 비견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을주장하지도 않고 양보를 해야 할 때는 과감히 양보하며 겉보기에는 수양된 사람처럼보이기도하나 속으로는 비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독선적인데, 다만 그것을 겉으로나타내지 않을 뿐이다. 손위나 감자에게는 얌전하게 순종하는 듯하지만, 내심으로는고개를 숙이지 않고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약자나 손아래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기주장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또 성질이 까다로워서 밖에서는 무난하나 가정에서는 폭군으로 변하거나 잔소리가 많은 수가 있다. 특히 양일간이 지지에 겁재가 있으면이라 하여 앞에 말한 독선적이거나 권위적인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기본위적인 사람이라 하겠다.
겁재 역시 겁재만으로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편관이나 식상 등의 유무와 합, 충, 신살 등을 두루 살펴 판단해야 한다.

편재는 남성에게는 아버지 또는 애인이나 첩이 되고 여성에게는 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된다. 사회적으로는 투기, 도박, 뇌물, 횡령, 밀수 등이 되며 의외의 횡재, 무역,
고리대금, 유흥, 윤락, 마약 등이 이에 해당한다. 편재는 편법, 투기, 부정한 방법에의하여 취득한 재물이나 부적절한 애정 상대로 본다. 그러므로 편재는 그 취득하는과정과 성격상 비난이나 원성, 질투, 시기, 경쟁, 사기, 협박 등 강제적이거나 불법이따른다 하겠다.
편재의 성격은 수완, 요령, 융통성, 외교성과 사교성이 좋고, 한편으로는 의협심과동정심이 많으나 풍류와 낭비벽이 심한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집에 초대하거나 모임을 자주 갖고 화제도 풍부하고 호방하여 지루한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나 애인으로 사귀기에는 최상의 타입이다. 단적으로 말해 다정다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관(正官)은 관리한다는 뜻으로 가정이나 단체, 국가, 인류 사회의 질서로 도덕과 법이 되서 정관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사회적으로는 질서, 책임, 제도, 법, 권위, 명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자식과 명예, 직장이 되고, 여자에게는 남편이 되므로 사주에예, 정치를 의미하며 관공서, 국가기관, 관료, 직장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관은 질서와 예의를 존중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준법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형제간에 우애하고 효도하며 자녀에게는 자상하면서도 엄한 사람의 표상으로 한마디로 모범인으로 용모가 단정하고 품행이 방정하다. 명예를 중히 여기고 편법을 싫어하며 원리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고, 자존심이 강하여 오히려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기 쉽다.
원칙과 법규, 책임을 중시하는 까닭에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신용과 책임을 따지고 명예를 취하다 보니 실속이 없는 경향으로 매사 너무 계획을 세워 실행하니 오히려 추진력이 따르지 못하는 결함이있다. 소탈해 보이나 융통성이 없고 모험을 좋아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사적인 면보다는 공적인 면이 더 좋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정관의 특성이다.
정관은 모범적인 남편이나, 거기에 더하여 아기자기한 맛까지를 바란다면 무리로특히 가정에 돌아오면 말이 없고 무뚝뚝해지는 사람이 이 타입에 많이 있는데 이 점이 결점이다. 애인으로 사귀기에는 재미없는 스타일이나 책임감 있고 성실한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여자에게는 정관이 남편을 의미하므로 현모양처의 자질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매사가 모범적이므로 남편이 안심하고 집안일을 맡기고 밖에서 일할 수 있는 타입이다.

삼재란 마치 혹한기와 같이 만물의 성장이 위축되고 정지 상태에 있는 것과같아 매사에 활동이 위축되고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 시기로 부귀명예를 가지고 있는사람이나 서민, 건강한 사람이나 병약한 사람 모두 다 마찬가지인데 운이 흉하면 더욱 심한 흉액이 일어난다.

첫째는 인재(人災)로 사업의 실패나 부진, 금전 거래의 실패, 보증이나 담보로 인한 실재투자의 실패, 사기를 당하거나 부도 또는 파산을 당한다.

둘째는 관재(官災)로서 혈액이나 솜사가 발생하고,
셋째는 우환으로 사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으로 인한 수술, 또는 가족 중에 위과 같은 우환이 생기거나 사망하는 것 등을 말한다.

화개살은 예술성이요. 참모성이라고도 하는데 삼합오행의 묘지로서 삼합의 끝자이다. 묘지란 창고와 같아서 오행의 정기를 저장하는 곳이므로 본체의 보존과 재생또는 영속성을 계승하는 역할을 담당하므로 종교와 예술성을 내포한다.

오행의 속성을 동정(動靜)과 시중말(始中末)로 나눈다면, 화개는 靜에 속하고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에 속한다. 예로 戌은 火氣를 겨울 동안 저장하였다가 봄에 다시피워 쓰는 것과 같아서 사물과 정신을 보관하는 작용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참조하는 진리의 창고이다. 고로 화개는 문화, 예술, 신앙과 관계된 학교, 학원, 사찰,
교회, 박물관, 수련원, 기도원 등이 이에 속한다.

사주에서 화개가 길신이면 참모나 비서의 도움이 크고, 정인과 동주하고 길신에해당하면 대학자가 되고, 천을귀인이나 월덕귀인 등과 함께 있으면 인격이 청고하고 貴와 文을 겸비한다. 화개가 공망되면 종교인이 되든지 종교 계통으로 진출하는 수가많으며, 일지에 화개가 있으면 도학이나 수련에 뜻이 많고, 여명에 화개가 여러 개 있으면 자녀를 양육하기 어렵고 고독을 면하기 어렵다.

화개와 양인이 함께 있으면 다재다능하나 유시무하며 결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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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유의 탄생과 전개과정을 탁월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넘을 수 없을 듯이 보이는 이 같은 편견에도 나는 한국 철학이 아직 이땅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함석헌이 물에서도 아니 녹았고, 불에도 아니 탔고, 칼로 찍어도 아니 끊어졌고, 망치로 때려서도 아니 바쉬진 것이 우리 말 우리 생각"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사유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아니 당신이 이 땅에살고 있는 한, 그 때문에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도 원효와 똑같이 통합의논리를 제시하는 논객이 있고, 지눌의 깨달음에 도달한 고승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이 땅 어딘가에 이황처럼 말과 행실을 일치시키려 애쓰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혹 당신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당신이다. 왜냐하면 이황의 글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부끄러워질수밖에 없으며, 조식의 상소문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그 경건함에 고개를 숙일 것이며, 박지원의 시를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눈물지을 것이고,
정약용의 논(論)을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무릎을 치며 탄복할 수밖에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한국 철학사를 펴내는 일은 동아시아고전을 연구하는 이가 『논어』를 주해하고 기독교 신학자가 성서를 주해하는 것만큼이나 학문적으로 뜻 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이런 학문적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철학의 거장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삶의 문법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저변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 책을 펴내는 데 더 큰 동기로 작용했다.

불교의 나라 고려에서는 대각국사 의천이 나왔습니다. 
국사라는호칭은 신라 시대에는 없었고 고려 시대에 
처음 생겼는데, 나라의 스승.
나라의 스님이란 뜻입니다. 
의천은 고려의 11대 왕 문종의 아들인 동시에13대 왕 
선종과 15대왕 숙종의 동생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스님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천이 선종에게 이야기해서 원효에게 화쟁국사라는 호칭을 내리도록 합니다. 여기서 고려의 스님들도 원효 사상의 핵심이 화쟁이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도 사회 분열이 심각해지면 원효의 화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와 상관없는 여러 매체에서 원효의 화쟁을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화합‘을 이루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화합이 어렵습니다. 서로 이익을 다투잖아요. 이익을 다투는 사람들 간에 어떻게 몫을 나누는 것이 합당한지, 그에 대한 합의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지눌의 수행법은 돈오점수와 정혜쌍수입니다.
돈오는 단박에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점수는 조금씩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정‘은 ‘선정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마디(samadhi) ‘이고 ‘삼매(三昧)‘로 음역한 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선정입니다. 
정(定)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 상태, 혹은 그러한 수련에 들어간 상태를 말합니다. ‘혜‘는‘지혜‘ 입니다. 팔리어로 ‘pania", 산스크리트어로 ‘praina‘, 한문 음역으로 ‘반야죠. 선정은 돈오와 관련된 수행 방법이고 점수는 지혜와 관련된 수행 방법입니다. 정혜쌍수는 대번에 깨치는 선정의 수행인 돈오와 깨우쳤다 해도 계속해서 지혜를 쌓아가는 점수의 과정을 함께 닦아가야 한다는 지눌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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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개설서


형이상학을 논하는 학자들이 실체의 단순성,
객관적 인과 필연성과 자유, 최고의 실재성 등에 입각해서 형이상학적 
대상인 영혼, 세계, 신에 대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개념적인 논의에 그칠뿐 그 물음을 제기한 
우리 일반인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 세계 자체, 신(神)은 
일반 사람들이자연적 본성에 따라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것들이지만, 그에 대한철학자의 논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철학에서 이런 문제가 왜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힌다.
칸트 이전에는 형이상학이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과 특수한 영역의 존재를 논하는 
특수형이상학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칸트에서는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은 
존재론으로 불리고,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을 논하는 
특수형이상학만이 형이상학으로 남겨진다. 
이 둘의 구분은 경험 가능한 대상의 영역과 
경험 가능하지 않은대상의 영역, 
즉 형이하의 영역과 형이상의 영역의 구분에 해당한다.

칸트는 이 두 영역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칸트 이전 철학의 두 부류인 합리론과 경험론을 모두 비판한다. 합리론은 우리에게 선험적 인식이 있음을 논하면서 그 선험적 원칙을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에게까지 적용하여 형이상학 체계를 수립했는데, 칸트에 따르면 그것은 선험적 원칙의 근원과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그 원칙을 제한 없이 적용하려 한 독단주의이다.
반대로 경험론은 우리의 인식을 모두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려 함으로써 선험적 인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감각경험으로부터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칸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있는 선험덕 인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회의주의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빨갛다.‘ 또는 ‘사과는 검다.‘
는 전자는 참이고 후자는 거짓이지만, 
그러한 참 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명제이다. 
우리는 이 명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진리치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색은 빨간색이다.‘ 처럼 거짓일 수가 없는 항진명제 또는 ‘빨간색은 빨간색이 아니다.‘처럼
참일 수 없는 모순명제는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어떠한 
세계의 그림도떠올릴 수 없고 따라서 어떠한 존립 가능한 
사태도 말해주고 있지 않으므로 의미 없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가능한 사태를 그려내는 ‘의미 있는 명제‘와어떠한 사태도 그려내지 않는 ‘의미 없는 명제‘ 이외에 ‘무의미 (Unsinn)‘
한 명제를 논한다. 
무의미한 명제는 세계의 모사형식인 구문법적 논리형식을 따르지 않는 명제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은 빨간색이다.‘ ‘돌멩이는 착하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 등의 명제는 주술 연결이 잘못된 명제, 즉 구문법적 논리에 맞지 않는 명제이다. 따라서 이런 명제는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다. 말이 안 된다고 거짓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의 부정인 ‘삼각형은 빨간색이 아니다‘ ‘돌멩이는 착하지 않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가 참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명제는 아예 진리치를 
갖지 않는 명제이다.
이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세계의 그림으로 
간주하면서 의미 있는 명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밝혔다. 
이로써 우리가 발언하는 명제를 의미 있는 명제, 의미 없는 명제, 
무의미한 명제의 세 부류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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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학의 고전




















형법이란 범죄와 범죄에 대한 제재인 형벌과 보안처분을 
규정한 법이다. 종래 형법은 범죄와 형벌의 관계를 규정한 
국가 법규범의 총체, 즉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그 범죄에 
대하여 어떤 형벌을 과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규범을 말한다고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형법을 범죄와 형벌의 관계를 
규정한 법이라고 정의하면 범죄에 대한 형벌 이외의 법률효과인 보안처분을 과하는 법을 포함할 수없게 된다. 
구 사회보호법과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범죄에 대한 제재는 형벌 이외에 보안처분을 포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법이란 범죄와 범죄에 대한 제재인 형벌 또는 보안처분을 규정하는 법규범의 총체라고 해야 한다.

범죄에 대한 법률효과로서 형벌과 보안처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법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형벌이 전통적이고 주된 법률효과이고, 보안처분은 형벌을 보완하기 위한 제재라는 점을 고려한 데 있다. 범죄와 형벌은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형법이라는 명칭도 국가에 따라 형법(Strafrecht, droit penal) 또는범죄법(criminal law, droit criminel)이라는 용어가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형법‘이란 범죄와 형벌 가운데 법률효과인 형벌에 중점을 둔 명칭이다.

형법의 규범적 성격

형법은 도덕이나 종교계율과 같이 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규범이란 5존재(sein)와 구별되는 당위(Sollen)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의 이해에 관하여는 견해가 대립되나 규범은 대체로 명령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규범은 일정한 행위 또는 사태를 요구한다. 형법규범 역시 일정한 행위 또는 사태를 대체로는 금지의 방향으로 요구하며, 그 위반이 있을 때 강제력을 가지고 형사제재를관철시킨다. 형법규법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1) 가언적 규범

형법규범은 가인적 명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연 6적 명령이란 형법규범이 요건 → 효과‘ if ・・・ then 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의피이다. 즉 범죄를 요건으로 하여 그 법률효과로서 국가에게 형벌권을 발생시킨다. 형법이 가연규범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형법규범이 조건부 규범이라는 의미이다. 도덕규범은 조건이 없는 정언적 명령의 형태 "남을 해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를 취하고 있는 데 비하여 형법규범은 조건을 달고 있는 규범적 요구의 형태, 즉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는 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덕규범은 정연적으로 조건을 달지 않고 의무의식에 터잡아 "규범을 준수하라"고 명령하는 데 비하여, 형법규범은 동기의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동기여하를 불문하고 규범의 준수만을 문제 삼는다.

(2) 행위규범과 재판규범

법규범은 그 수명자에 따라 행위규범과 재 7판규범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형법은 일반 국민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를 금지 또는 명령함으로써 행위준칙으로서 기능한다행위규범, Verbaltensnorm). 예컨대형법은 살인죄를 규정함으로써 살인금지의 명령을 퇴거불응죄를 규정함으로써 퇴거의 요구를 발한다. 동시에 형법은 법관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 국민이 행위규범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규범적 요구에 따라 재판할 것을 명한다(재판규범,
Entscheidungsnorm).

형법과 보충성의 원칙

형법이 어떤 법익을 보호할 것인가는 사회윤리적 가치관을 기초로 한 형사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법은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법익의 보호가 형법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써는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Subsidiaritätsprinzip)이라고 한다.

형법이 갖는 보호의 수단이 다른 법률의 그것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형법의 보충성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형벌 또는 보안처분은 다른 법률의 수단과는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법률효과이며, 형법의 지나친 확대의 금지(형법의 겸억성)는 형사정책의 본질적인 요청이다. 이에 기하여 등장한 것이 비범죄화(Entkriminalisierung)의 요청이다. 이는 형법의 역할을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공동의 이익의 보호에 국한하여야 한다는 이념이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민주사회에서 특정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보호해서는 안 되며, 특히 도덕이나 특정 종교의 가치관을 형법적으로 관철(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다. 이는 형법의 탈윤리화를 의미한다. 

1)관습법금지 원칙의 의의

법률주의는 관습형법의 금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관습법이란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일반적으로 법으로 인정되어 온 법사회의 관행(practice)을 의미한다. 
특히 영국과 같은 common law 국가에서의 관습형법은 
구제도의 봉건성을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법이었으며, 
벤담과 같은 개혁파들이 혁파의 주 대상으로 삼았던 
제도였다. 따라서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형법분야의 
구제도폐지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관습법을 토대로 범죄와 형벌을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배치된다. 왜냐하면 관습법은 입법부에서 제정된 법이 아니고, 그 내용과 범위가 명백하지 아니하며, 범죄와 형벌의 관계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의 적용범위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처벌하거나형을 가중하는 관습법의 금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습법을 근거로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거나 기존의 구성요건을 가중처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문의 형법규정을 관습법에 의하여 폐지하거나 관습법에 의하여 구성요건을 축소하거나 형을 감경하는 것은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관습법에 의한 책임조각사유,인적 처벌조각사유는 물론 관습법에 의한 위법성조각사유의 존재도 인정된다. 
관습법의에 의한 징계권의 행사도 위법성조각사유가 된다. 그래서 관습법에 의한 위법성조각사유는 실제상 초법규적 위법성조각사유의 생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보충적 관습법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관습법이 직접 형법의 법원法源)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에 불과하며, 관습법은 간접적으로는 형법의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충적 관습법 (erganzendes Gewohnheitsrecht)이 그러하다. 예컨대 부진정부작위범의 보증인지위. (독일의 경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행위에 대한 책임의 근거, 위법성의 판단은 물론 각칙상 구성요건의 해석에 있어도 관습법은 해석의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관습법에 의한 해석- 형법의 법원의 적용으로서의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며, 
성문의 법규정에 의하여 정해진 범위에서 그 규정에 내재하는 의미를 해석하는 길잡이가 되는그쳐야 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의 의의

범죄와 형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원칙이다. 이와 같이 형벌법규는 그 시행 이후에 이루어진 행위에 대하여만 적용되고, 시행 이전의 행위에까지 소급하여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소급효금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법적 안정성과 법률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담보하는 법치국가이념에 그 근거가 있다.
즉 행위시에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신뢰한 행위자를 
처벌하거나 그가 예측한 것보다 불이익한 처벌을 
하여서는 법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 신뢰와 국민의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법치국가적 근거 이외에도, 소급하여 부과된 
형벌은 책임과 결부된 정당한 형벌이 아니고 예방적 
효과도 가질 수 없는 무의미한 형벌이라는 점에서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형사정책적 근거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판례변경과 소급효금지의 원칙 

판례의 변경으로 인한 소급처벌에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즉 행위시의 판례에 의하면 처벌받지 않던 
행위를 판례의 변경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되고 있다.
소급효부정설은 사실상 구속력을 갖는 확립된 판례를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여 소급적용하는 
것은 사후입법에 의한 소급처벌과 같이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해석한다. 소급효금지원칙의 핵심근거인 신뢰보호는 소급입법의경우와 마찬가지로 판례의 소급적 
변경에 의해서도 침해되며, 현대 법방법론에의하면 법률과 법관의 법적용은 통일체로서, 허용되는 행위와 금지되는 
행위의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을 이유로 한다. 
이에 반하여 소급효긍정설은 판례 변경으로 인한 소급처벌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의 통설의 태도이다. 소급처벌이 금지되는 것은 법률이지 법률의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이유로 한다. 
판례도 소급효긍정설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의 핵심은 구성요건에 금지된 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데 있다. 즉 구성요건은 가능한 한 신축성이 적은 명확한개념을 사용하여야 하며, 국민이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가를 알 수있을 정도로 명확하여야 한다. 불특정되거나 내용 없는 구성요건은 죄형법정주의와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컨대 ‘행실이 불량한 자‘, ‘민주주의적 사회질서의 원칙을 침해한 자‘ 또는
‘공공의 질서에 반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구성요건이 
있는 경우에, 이러한 구성요건은 명확성이 없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무효인 법률이 된다.

명확성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한 이상적인 방법은 순수한 기술적 요소만으로구성요건을 기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입법기술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률을 고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생활관계의 다양성과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형법의 구성요건에 있어서 가치개념을 포함하는 일반적 규범적 개념의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법 제243조의 ‘음란한 문서 · 도화‘와 
제244조의 ‘음란한 물건이라는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대법원판결이나 군사기밀보호법상의 ‘군사상의 기밀을 부당한 방법으로 탐지 · 수집한 자‘란 구성요건이 구성요건의 구체성 내지 명확성을 결여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헌재결 1992. 2. 25.
89 현가 104)을 이해할 수 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해석의 측면에서 유추의 금지를 요구한다. 형벌법규의 내용이 명백하다 할지라도 그 해석과 적용에 자의가 허용된다면 형벌법규의 명확성은 무의미하게 되고, 자의에 의한 입법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유추(Analogie)란 법률에 규정이 없는 사안에 대하여 그것과 유사한 내용을 갖는 사안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는 추론방식을 말한다. 그것은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경우를 보완하기 위한 ‘법관에 의한 법형성‘ 내지 ‘법의 창조‘를 의미하며, 형법에 있어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새로이 형벌을 과하거나 형을 가중하는 유추를 금지한다. 즉 유추에 의하여 새로운구성요건을 만들거나 기존의 구성요건에 대한 형을 가중할 수는 없다.

예컨대 전화를 거는 것을 주거침입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거나, 법률에 규정이 없는유사한 형벌 특히 부가형을 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은 상관에게 전화를걸어서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아느냐, 다 당신 때문이야. 너는살인자야" 라는 취지의 폭언을 하여 상관을 모욕한 행위는 군형법상의 상관면전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인터넷 화상 채팅 중 상대방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보이게 하고 그 영상을 촬영한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한 것일 뿐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를 촬영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구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카메라등을 이용한 촬영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으며, 본인이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된 경우 이 유포행위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이 아니어서 같은 법 제14조 1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법률은 언어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언어는 해석의 토대가 되 3며 언어의 가능한 의미(der mögliche Wortsinn)는 법률해석의 한계가 된다. 언어의가능한 의미를 넘는 해석은 국민의 법률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을 뿐아니라 형법해석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자유로운 법창조이며 유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넘는 법해석은 입법이 해결하여야 할 사항이며, 형법해석학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하여 언어의 가능한 의미가 명백하지 아니하므로 구체적인 법률의 기본사상에 따라 허용되는 한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거나 법률규정의 편찬상의 결함(Redaktionsfehler)이 있는 때에는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도외시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앞의 견해는 해석의 한계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후자는형법의 해석과 입법론을 혼동한 것이라고 하겠다. 
법전편찬상의 과오가 있는 경우에는 전체적 · 체계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전체적·체계적 해석이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넘는 해석이라면 앞의 견해와 차이가 없으며 목적론적 해석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법전편찬상의 과오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결한 침해에 제한되어야 한다. 즉 국가는 형법을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사회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여야 한다. 
"필요 없으면 형벌 없다"(KeineStrafe ohne Notwendigkeit),
 "불법 없으면 형벌 없다" (Keine Strafe ohne Unrecht)란
명제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실질적 의미에서의 범죄를 사회적 유해성(Sozialschadlichkeit)에 있다고 한다면 사회적 유해성은 범죄와 형벌을 정하는 법률의 내용의 한계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형벌규범이 사회와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본질적인 필요성이 있을 때에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어떤 행위를 처벌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정치적 ·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감정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보호의 불가결한 필요성에 대한 적정한 교량과 보편타당한 인식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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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06, 20. 선고 2010도14328 전원합의체 판결 [국외이솜약취· 피약취자국외송]

<베트남 여성의 자녀 약취 사건>

[판시사항]

[1] 미성년자약취죄, 국외송약취죄 등의 구성요건 중 ‘악취‘ 의 의미와 그 판단 기준 및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사람이 해당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한정적극)와 미성년 자녀의 부모 일방에 대하여 자녀에 대한 약취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 

[2] 베트남 국적 여성인 피고인이 남편 갑의 의사에 반하며 생후 약 13개월 된 자녀 을을 주거지에서 데리고 나와 악취하고 베트남에 함께 입국함으로써 음을 국외에 이송하였다고 하며국외이송약취 및 피약취자국외미송으로 기소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피고인의행위를 약취행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인정한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형법 제287조의 미성년자약취죄, 제288조 제3항 전단(구 형법(2013. 4. 5. 법률제1173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 제289조 제1항에 해당한다)의 국외이송약취죄 등의 구성요건요소로서 약취란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수단으로사용하여 피해자를 그 의사에 반하여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하고, 구체적 사건에서 어떤 행위가약취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의 상태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보호감독자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거나 자신의 보호·양육권을 남용하여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때에는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의주체가 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해당 보호감독자에 대하여 약취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있으려면 그 행위가 위와 같은 의미의 약취에 해당하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사용하여 그 미성년자를
평온하던 종전의 보호,양육 상태로부터 이탈시켰다고 볼 수 없는 행위에 대하여까지 다른 보호감독자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의 성립을 긍정하는 것은 형벌법규의 문언 범위를 벗어나는 해석으로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부모가 이혼하였거나 별거하는 상황에서 미성년의 자녀를 부모의 일방이 평온하게 보호·양육하고 있는데, 상대방 부모가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행사하여 그 보호·양육 상태를 깨뜨리고 자녀를 탈취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옮긴 경우, 그와 같은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미성년의 자녀를 부모가 함께 동거하면서 보호·양육하여 오던 중 부모의 일방이 상대방 부모나 그 자녀에게 어떠한 폭행, 협박이나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행사함이 없이 그 자녀를데리고 종전의 거소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 자녀에 대한 보호·양육을 계속하였다면, 그행위가 보호·양육권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설령 이에 관하여 법원의 결정이나 상대방 부모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곧바로 형법상 미성년자에 대한 약취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고명한,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의 반대의견]공동친권자인 부모 중 일방이 상대방과 동거하며 공동으로 보호·양육하던 유아를 국외로 데리고나간 행위가 약취죄의 ‘약취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우선 폭행, 협박 또는 사실상의 힘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유아를 법인 또는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옮겼는지, 그로 말미암아 다른공동친권자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고, 피해자인 유아를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보호관계로부터이탈시켜 그의 이익을 침해하였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부모 중 일방이 상대방과 동거하며공동으로 보호·양육하던 유아를 국외로 데리고 나갔다면, ‘사실상의 힘‘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유아를 자신 또는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옮겼다고 보아야 함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친권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과 감호 및 재산관리를 적절히 함으로써 그의 복리를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부모의권리이자 의무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민법 제909조에 의하면, 친권은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거나 부모 일방이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고(제2항, 제3항). 이혼하려는 경우에도 상대방과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결정을 거치지 아니한 채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친권행사를 배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제4항). 따라서 공동친권자인 부모의 일방이 상대방의 동의나 가정법원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유아를 데리고 공동양육의 장소를 이탈함으로써 상대방의 친권행사가 미칠 수없도록 하였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공동친권자의 유아에 대한 보호·양육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민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유아로서도 다른 공동친권자로부터 보호·양육을 받거나 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강요당하게 되어 유아의 이익을현저히 해치게 될 것이므로 그 점에서도 위법성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부모의일방이 유아를 임의로 데리고 가면서 행사한 사실상의 힘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적이라고할 것이며, 특히 장기간 또는 영구히 유아를 데리고 간 경우에는 그 불법성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베트남 국적 여성인 피고인이 남편 갑의 의사에 반하여 생후 약 13개월 된 아들 을을 주거지에서 데리고 나와 약취하고 이어서 베트남에 함께 입국함으로써 물을 국외에 이송하였다.
고 하여 국외이송약취 및 피약취자국외이송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을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난 행위는 어떠한 실력을 행사하여 을을 평온하던 종전의보호·양육 상태로부터 이탈시킨 것이라기보다 친권자인 모모)로서 출생 이후 줄곧 맡아왔던음에 대한 보호·양육을 계속 유지한 행위에 해당하여, 이를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사용하여 을을 자기 또는 제3자의 지배하에 옮긴 약취행위로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인정한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헌법 제12조 제1항, 형법 제1조 제1항, 제287조, 제288조 제3항, 구 형법(2013.
4.5. 법률 제1173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87조, 제289조 제1항(현행 제288조 제3항 참조),
민법 제909조 [2] 구 형법(2013. 4. 5. 법률 제1173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87조, 제289조제1항, 제2항(현행 제288조 제3항 참조), 형사소송법 제325조ke leks이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판시사항]

[1] 조약의 해석 방법

[2]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갑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사안에서, 갑 등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조약에 관한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의미를 밝혀야 한다.

[2] [다수의견]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갑 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이하 ‘신일철주금‘이라 한다)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 한다)인 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조약 제 172호, 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의 체결 경과와 전후 사정들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이는 점, 청구권 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한 점,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갑 등이 주장하는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

이미 환송판결은 ‘갑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설령 프합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청구일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고, 환송 후 원심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에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이러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은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

청구권협정 및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청구권협정의 체질에 따른 후속 조치 등의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강제동원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Die그러나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갑 등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갈 틈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면의 반대의견]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제1장 민법 339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갑 등이 일본 국민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참조조문] [1] 헌법 제6조 제1항,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2조 [2] 헌법 제6조 제1항,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1조,
제2조,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1) 제2호, 민법 제751조, 법원조직법 제8조,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조약법에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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