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임대차의 법리를 깊게 공부하다.














한국의 현행 부동산임대차법제도는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린다."는 로마법의 기본법리와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게르만법의 
기본법리에 의하여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각각 다른 두 개의 부동산임대차의 법리는 
어떠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생성·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가를 먼저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기본법리가 한국 부동산임대차법의 성문화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621조 2항은 「부동산임대차를 등기한 때에는 그때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하여 채권의 예외규정으로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리지 않는다.
(Kauf bricht nicht Miete! 는 법리를 채택하였다. 
즉, 부동산임대차를 등기한 때라는요건이 구비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매대는 임대차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법리를
원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법은 임대차의 등기제도‘를 도입하고 예외적으로 임차권의 대항력을 인정한 법률제도는 독일민법이나 프랑스민법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위 1. 1,
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독일의 경우에 임대차는 관행으로 형성된 Jus ad rem(物에 대한 권리)에 기하여 Gewere라는 표상을 갖추면 바로 본권이 되어 제삼자에 대한 대항력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연원에 기하여 BGB의 입법 이전부터 현행 민법 (6566Abs.1)에 이르기까지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리지 않는다(Kauf bricht nicht Miete)」는 임대차의 기본법리가 형성 확립이 되어, 독일인들은 임대건물의 인도(Uberlassung)에의하여 신소유자 기타 제삼자에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또한 1804년 3월 제정된 프랑스민법상의 부동산임대차도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대륙법계에 속하는 독일의 입법례는 프랑스의 입법례와 마찬가지로 토지와 건물의 일체원칙을 전제로 한 토지이용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의 이원제도를 전제로 하는 한국의 토지임대차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독일의 입법례는 한국의 토지임대차제도를 살펴보는 데는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살펴보는 데 그치겠다. 그러나 일본의 입법례는 한국의법제가 취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의 이원제원칙 그리고 이에 따르는 토지임대차, 건물임대차제도와 같은 이원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법제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본 절에서 토지·건물의 이원제도를 취하고 있는 한국민법상의 토지임대차법에 앞서 일찍이 제정 · 시행된 일본민법상의 토지 · 건물의 이원제도와 토지임대차법의 입법례를 비교적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의 민법상 토지임대차법에 관한 입법과정에서의 여러 의문점 그리고 현행법규의 해석방향을 전망하여 보는 데 매우 유익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토지·건물의 일체원칙을 채택한 BGB가 시행된 이후 타인소유의 토지상에 건축을 촉진하기 위하여 토지·건물의 일체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지상권(Erbbaurese)제도가 1919년「地上權」 (Verondnung über das Erbbaurecht 1919.1.15.)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동령의 시행과 동시에 민법상 지상권에 관한 BGB 1012-1017의 효력은상실되어 삭제되었다.
「지상권령에 의한 지상권」(이하 지상권」이라 약칭)은 지상권의 존속기간 중 건물은 토지소유권의 내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토지소유권이 아닌 지상권의 본질적구성부분이 된다§ 12 Abs.1 "Das auf Grund des Erbbaurechts errichtete Bauwerk gilt alswesentlicher Bestandteil des Erbbaurechts."). 따라서 건물은 지상권의 법률구성의 핵심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지상권이 소멸하면 건물은 토지소유권의 내용에 자동적으로 복귀하여 토지의 본질적 구성부분이 된다. 이와 반대로 건물의 멸실로 인하여지상권은 소멸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상권자는 새로운 건물을 건축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건물이 멸실되면 지상권은 소멸한다는 합의는 유효하다.
이상과 같은 지상권은 한국민법상의 지상권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타인 소유의 토지 또는 지하에 건물을 보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정되는 물권적 권리로 구성되어 있으나 여러 분야에 채권과 유사한 성질이 부여되고 있다. 즉지상권의 내용에 관하여 계약자유원칙의 여지를 두고, 당사자간의 자유로운 합의를중시하여 광범위한 법적 관계가 형성될 여지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민법은 지상권의 일정한 존속기간(280-281조)이나 부동산임대차의 일정한존속기간(635-636조)을 규정하여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있다. 그러나 독일의 지상권령은 지상권의 일정한 존속기간에 관하여 법적 규정을 두지 않고 당사자간의 계약 (Erbbaurechtsvertrag)에 의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지상권령은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없는 경우의 지상권존속기간 또는 계약으로 정할 수 있는지상권의 약정최단존속기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그 반대로 지상권의약정 최장존속기간에 관한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통상적으로 지상권의 존속기간은 지상권설정계약에 의하여 30-100년의 기간을 약정하지만, 
99년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상권자의 종신 때까지의 기간으로 지상권을설정할 수도 있다(영구적 지상권). 다만 지상권자는 지상권을 포기할 수 있으나, 이러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한국민법상 부동산법제도는 토지와 건물을 각각 독립된 부동산으로 하는 이원제를 채택하고 있다(99조). 이에 따라서 부동산임대차법도 토지임대차와 건물임대차로 분류하고 있으며, 특히 건물임대차에 대해서는 민법에 대한 특례법으로 주거용건물임대차법과 영업용건물임대차법으로 분류하는 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제도는 오래전부터 토지와 건물을 
하나의 부동산으로 인식하고거래하는 관행이 형성되었으며,이러한 관행은 독일민법의 부동산제도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현행 민법은 이러한 관습과는 
달리 토지와 건물을 각각 독립된 부동산으로 하는 
이원제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이러한 의문점이 해소되어야 
토지와 건물의 이원제에 따라 분류되는 토지임대차는 
어떠한 구조 또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알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토지임대차와 그 토지상의 건물의 보전이라는 양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민사분쟁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토지임대차와 토지상의 건물과의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밝히는 데는 다양한 방법, 즉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온 부동산거래의 
관행인 우리 고유의 관습법에 기초하여, 오늘날 
이러한 관행은 우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민사분쟁이 야기되었을 때 이에 대하여 
민법상 어떠한 법규가 어떻게해석되고 적용되어 
왔는가를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당사자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면, 
관련된 법규의 다양한 해석방법을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부동산등기법 제23조 1항은 「등기는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등기권리자와 등기의무자가 공동으로 신청한다고 하여 등기공동신청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임차인은 임대인의 협력 없이 단독으로 임차권의 등기를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시의 민법의 기초 · 입법자들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1955년 국회 법사위의 민법안심의과정에서 상정된 ‘민법안초안 제10조 1항은「부동산임대차는 당사자간의 반대약정이 없으면 임대인에 대하여 그 임대차등기절차에 협력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여, 원칙적으로 임차인의 임대차등기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임대인과 공동으로 등기신청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있다. 이어서 동조 2항은 「부동산임대차를 등기한 때로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하여, 임차권의 대항력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입안자는 동 초안의입법취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매우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초안 제610조 1항은 「현행법 제605조 제2항 (605조는 1항과 2항은 없는 단독조합으로 「부동산의 임대차는 이를 듬기한 때에는 그 후 그 부동산에 대하여 물권을 취득한 자에 대해서도 그 효력을발생한다는 조항임 - 필자 주)과 동일취지이나, 초안 1항(2항을 1함으로 오기-필자 주은신설한 조항이다」라고 하여 초안 제10조 2항은 구민법 제605조와 동일한 취지의 규정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초안 동조 1항은 임대차의 등기절차에 관하여 당시의 명치민법전이나 현행 일본민법전에는 없는 규정을 초안에 신설한 조항이라고언급하고 있다. 동 초안 제610조 1항, 2항은 심의과정에서 수정 없이 민법안으로 가결되어 181) 현행 민법 제621조 1항, 2항으로 입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1945년 8월 광복 후에도 현행 민법이 시행 (1960.1.1.) 되기까지 일본민법이적용되었던 이른바「민법」에도 없었던 현행 민법 제621조 1항을 신설한 이유는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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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학의 중요 논점들을 다루었습니다.




























민사재판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원고와 피고는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놓고 다툰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출한다. 법원은 주장과 증거를 종합하여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을 적용한다. 이러한 판단 과정을 통해 사건에 관한결론을 내린다.
사실관계는 사건마다 다르다. 심리해 보아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적용될 법리는 사건 유형별로 대체로 비슷하다. 대부분 기성품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법리를 이해하려는)의노력은 구체적 사건과 무관하게 미리 이루어질 수 있다. 법관들은이미 그 노력을 충분히 기울인 사람들이다. 치열한 교육 과정과 반복되는 사건 처리를 통해 온갖 법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사실관계가 확정되면 언제든지 해당 법리를 적용하여 결론을 낼 준비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너는 사실을 말하라. 그러면 나는 법을 주리라(damihi factum, dabo tibi tus)"라는 법언(法彦) 일상 직무에서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법관이 직면하는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익숙한 법리에따라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쉬운 사건(easy case)‘들도 많다.
그러나 기존의 전형적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어려운 사건 (hard case)‘들도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복잡한 사건이라고 해서 꼭 어려운 사건은 아니다. 이중에는 끈기를 가지고 법리를 차근차근 적용하면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건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사건은 어려운 사건이 아니다. 기껏해야 쉬운 사건도 어려운 사건도 아닌 보통 사건일 뿐이다. 어려운 사건은 기존 법리를 창조적, 변형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하는 사건, 또는 기존 법리와 구별되는 새로운 법리의 창안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사실관계가 단순하고 쟁점이 명확해도 어려운 사건일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 법리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법리는 구체적인 법적 판단이 논리적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법리의 중요성은 사건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나타난다.
우선,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고 검증되어 온 법리가 직접 적용되는 사건에서 법리가 차지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어려운 사건 또는 경계적 사건에 있어서 법리의 
역할은 불안정적이고불명확하다. 이러한 사건에 관한 
법리는 아직 형성 중이거나 아예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슨 법리를 적용할 것인가에대한 법관들의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의 법리 인식이 달라지거나,상고심의 판단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별개의견등으로 갈라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법의 세부 영역의 특성에 따라 법리의 비중이 
달라지기도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같은 민법의 테두리 
내에 있지만 물권법이나 계약법에 비하여 불법행위법에서는법리의 비중이 떨어진다.
이는 의사표시를 필수적 요건으로 하는 법률행위의 
개념이 민법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체계적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형사재판, 행정재판 또는 헌법재판 등 다른 분야의 재판에서도 법리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민사재판의법리 의존도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민법은 결코 몰가치(價値)적인 법이 아니지만, 많은 법적 문제들에 대한 가치판단이 오랜 기간의 가설과 검증을 통해 법리 체계에 이미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법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선행 가치판단의 구체적틀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동화된 가치판단을 하는 셈이다.
법리에 치중하는 현상 또는 법 도그마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형식주의의 발현이라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우리나라와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 실정법을 해석하는 안정적 논리 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법리는 법적 안정성을 증진하고, 행위지침을 제공한다.
법리는 민사재판 이전 단계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걱정하게 유도하여 분쟁을 예방한다. 예컨대 "명의대여로 인한 사용관계의 이부는 실제적으로 지휘·감독하였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보아 사용자가 그 불법행위를 지휘·감독할 지위에 있었느냐의여부를 기준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라는 법리는 수범자들에게 명의대여를 할 때에 사용자책임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를 통해 
명의대여를 줄이고 이로 인하여 벌어질 수있는 착잡한 법률관계를 회피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영리를 목적으로 윤락행위를 하도록 권유 · 유인 • 알선 또는 강요하지나 이에 협력하는 것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가 영업상 관계있는 윤락행위를 하는 자에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라는 법리와 "성매매의 유인 • 강요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선불금등 명목으로 제공한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 이익 등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라는 법리의 결합은윤락행위에 관련된 선불금 지급을 억제함으로써 분쟁을 줄이는 기능을 수행한다.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법리는 법관에게 유용한 판단지침을 제공하여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억제하고 법률해석을 균등화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예측가능성을 부여한다. 또한 법리는 분쟁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논의의 합리적 출발점을 제공합으로써 법관이 백지 상태에서 판단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법관과 변호사들은이미 서로에게 익숙한 법리의 토대 위에 서서 다음 단계로 전진할수 있다. 법리는 더 질 높은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논쟁의 판을 깔아 준다. 이처럼 미리 체계적으로 정리된 법리 체계가있다는 것은 법관의 판단재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다.
법리가 이러한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고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즉 법리가 너무 변덕스럽거나 경박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만약 법리가 공고함과 안정성을 상실한다면 법리의 순기능은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민법의 경우에는실정법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판례들이 대량 축적되어 있는관계로 상당히 구체화되고 구조화된 법리 체계가 존재한다. 재판실무에서 이러한 법리 체계에 의지하는 정도나 빈도도 매우 높다. 물론 법리는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어서 사후적으로 수정 · 변경될 수도있다. 법리도 진화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법에 관련된 법리중 상당수는 끊임없는 검증의 세파 속에 살아남아 확립되어 왔다는점에서 일단 그 보편적 타당성이 추정된다. 따라서 법리의 수정 내지 변경이 주장되었다면 법리의 실질적 내용을 변경할 만한 정당성이 있는지를 엄밀하게 검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법리에는 유연성도 요구된다. 법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규율하기 위해서역사 속에서 발전하여 온 도구적인 틀이다. 법리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실정법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그 배후의 이론적 가치적 문제나 현실 전면에 드러나는 재판실무상 문제와 연동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이론 또는 실무의 외부적 차원에서 변화의 자극과 동력을 부여받음으로써 기존의 법리를 성찰하고 수정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한다. 

미국의 불법행위법학자
Leon Green의 표현을 빌리자면, 600년에 걸친 보통법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법리의 잔해만 남긴채 새로운 법리를 새로운 토대에 건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법리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는 형식과 실질의대립으로도 상징될 수 있는 고정성과 유연성의 형량 내지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법리의 유연성 확보는 특히 법관이 재판실무에서 수행하여야 할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법관들도 역사의 한 시점과연을 맺고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 시점에서 법리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많은국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원님 재판처럼 법관이 형평과 정의의 관념에 따라 이겨야 할 사람은 
이기고, 져야 할 사람은 지게 하는 재판을 할 것을 기대한다. 

외국 법리의 토대를 이루는 가치 체계나 그 법리에 영향을 주는 역사적,문화적,현실적 배경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표면적인 법리만을 수입하며 이를 우리나라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위험성에 대해서도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법의 독자성은 점차 더 강고하게 획득되고 있다.
어찌 보면 외국법은 중요한 참고 대상이나 의존 대상일 수는없다. 당연하지만 외국법은 하나로 파악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외국은 수많은 나라들을 편의상 포괄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따라서 외국법은 하나의 유기성과 체계성을 가진 법일 수가 없다. 
그저 순하게 많은 개별 국가의 법들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외국법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동일한 유럽권 내에 있더라도 영국법과독일법은 현저히 다르다. 
독일법과 프랑스법의 차이는 그만큼 현격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법 전통이 초래하는 간극은 무시하기 어렵다. 편
의상 단순화하여 말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에는 법의 수호자로서의 법관을 신뢰하고 법관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독일에는 법관에 못지 않게 법학자의 권위가 높고 
이들을 통해 법의 내용이 상당 부분 정리되어 나가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프랑스에는 법관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법관을 "법률을 말하는 입으로 바라보며 입법자를 우위에 두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상이한 역사적 전통과 문화는 입법자와 법관, 법학자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의 차이는 법의 내용과 뉘앙스에도 차이를 가져온다. 심지어 특정 국가의 법조차도 각각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국가의 법은 절대적인 객관성을 지니기보다는 
간주간적(intersubjective)으로 이해될 뿐이다.

그러므로 외국법은 과연 무엇인가, 또 특정 국가의 법은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치밀한 탐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 없이 외국법이 무분별하게 우리나라 법체계에 수용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비교법(comparative law)의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사이도 그러하듯이 비교는 변화의 원동력이다.
지적 자극과 이를 통한 새로운 영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법학에있어서도 그러하다.35) 그래서 미국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은 비교법적 분석을 중요한 법학방법론의 하나로여기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비교법적 분석은 법제 업무, 재판실무, 그리고 법학을 지탱하여온 중요한 방법론이었다. 그러므로 외국의 법제나 판례, 학설 등을탐구하여 그 나라에서는 어떤 법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여해법을 도출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제한적이나마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화가 급속하게 진전된 오늘날 우리의 법리나 실무가 국제적 흐름 또는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얼마나 가까운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여러 법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법의 표준화 노력이경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학자와 실무가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외국법 또는 국제적 흐름에 대한균형 잡힌 시각과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론의 역할은 법리나 실무의 역할과 대비할 때 더욱 선명하게드러난다.
이론과 법리는 특정한 사건에서 한걸음 떨어져 추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법리는 넓은 의미의 이론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체로 법리는 특정한 법 분야를 대상으로 구체적 적용이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이론은 많은 경우 법 분야를 망라하여 포괄적으로 전개된다는 차이가 있다.
한편 실무는 특정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론이나 법리와 구별된다. 즉 이론과 법리가 실재하는 사회현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이를 관조하는 것이라면, 실무는 법과 사회현상의 접점에 직접 서 있다. 이론은 법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법리는 법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며, 실무는 사건과의 맥락 아래에서 법을 구체화한다.
이론이 마그마(magma), 법리가 지하(下)라면 실무는 지표에해당한다. 이론, 법리, 실무는 각각 가치, 논리, 직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이론, 법리, 실무는 관념적으로는 별도의 영역으로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나로 얽혀서 작동한다. 따라서 이들은 독자성과 유기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론은 법리와 실무의 한 발자국 뒤에서 이들을 정당화해주는기능을 수행한다. 재판에서 등장하는 쟁점들은 그 껍질을 하나씩벗겨나가면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한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운데에서 법원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귀착되는 때가 많다. 법관은 이러한 결정적 순간에 이론을 돌아보고 의지하여야 한다. 이론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항상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근본적인 가치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법해석학의 바탕에 흐르는 변화의 동력으로기능한다.
이처럼 이론, 법리, 실무는 민사재판의 장에서 각각 특유하지만 상호 연결된 기능을 수행하면서 민사법의 이념이 충실히 구현될수 있도록 협력한다. 이를 통하여 가치, 논리, 직관이 연결되고, 철학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이 연결된다. 상호자극을 통하여 각 영역이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은 단지 관념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협력관계는 실무가와 연구자,
법조계와 법학교육계, 재판과 사법행정 등의 협력과 같은 실천적차원의 움직임이 뒷받침될 때 더욱 생산적으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소통"과 "역할분담을 통하여 가능해진다. 이를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는 앞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새로운 문제의식을 형성한다. 이 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결론 부분에서 제시할것이다.

"모든 판사의 판결이유는 그 자체가 법철학의 한 단편이다."라는 유명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법관은 의식하긴 의식하지 못하긴 어떤 법리를 설제 사건에 적용함에 있어서 그 배후에 있는 가치의 무게를 판단한다. 특히 법관은 어려운 사건(hard case)을 처리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한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건들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해야 한다. 법관들이 이와중에 겪게 되는 고민은 고답적인 영역에서 운신하는 법학자들의고민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치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론의 세계는 논리가 아닌 가치를 다루는 곳이므로 이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정답을 두고 다투는 싸움판에는 사실 다른 관점과 입장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정답을 갈구하는 사람들, 또는 정답을 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인 문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이론은 자신이 고민하는 실정법적인 문제에 대해 즉답(이 역시 정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문제해결을 유력하게 뒷받침하여 자신이내릴 결론에 대한 비난을 방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논거일 때가 많다)을 주는듯한 대법원 판결이나 논문을 찾아냈을 때 느끼는 쾌감을 선사하지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이론적 고민의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된다. 이론의 세계에 정답은 없더라도 이론을 탐구함으로써 상호이해와 공감대의 영역은 넓어질 수 있다. 

신의칙이 우리 민법에서 어떤 이념적 위상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는 
민법 제정 당시부터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민법 제정 
당시에는 신의칙의 비중을 상당히 강조하였던것 같다. 
1957. 11. 5. 배영호 당시 법무부차관은 국회에서 
민법안제안 설명을 통해 민법안의 근본내용이 "종래의 
소유권절대의 원칙을 권리남용의 사상으로 제한하고 
계약자유의 원칙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환치하고 
과실책임의 원칙을 원인책임의 원칙으로 보충"하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선언하기도 하였다. "개인주의를 지양·발전
시키고 공공복리라는 국민의 경제도의에 적응시킴"이라고 하는 우리 민법 초안의 기본입장은 신의칙에 관한 민법 
제2조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났다. 

신의칙을 강조하는 경향은 한동안 학계를 지배하였다. 
예컨대 곽윤직 교수는 근대민법의 3대 원칙인 사유재산권 
존중의 원칙, 개인의사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이 
여러 폐해를 가져와 그에관한 근본적인 반성과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공공의복리가 민법의 근본이념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하였다. 

곽윤직 교수에 따르면 "거래안전 · 사회질서 · 신의성실 · 
권리남용 금지 등은 민법의 근본이념으로서의 공공복리의 실천원리로서 3대원칙보다 고차원적인 기본원리로 
승격되고, 3대원칙은 이들 실천원리의 제약내에서 비로소 
승인되는 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독일학계에서 1970년대 이후 사적 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우리나라에서도 공공복리를 
민법의 근본이념으로 강조하는 입장에 반대하고 
사적 자치의 원칙을 민법의 근본이념으로 복권시키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흔히 우리 민법은 자유인격의 원칙과 공공복리의 원칙을 
최고원리로 하며, 공공복리라는 최고의 존재 원리의 
실천원리 내지 행동원리로서 신의성실 · 권리남용의 금지 · 사회질서 · 거래안전의 여러 기본원칙이 있고, 다시 그 밑에 이른바 계약자유의 원칙,소유권절대의 원칙,과실책임의 원칙 등의 3대 원칙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후술한 바와 같이 사적 자치의 원칙은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다른 한편 신의성실 · 권리남용의 금지 · 
사회질서 · 거래안전 등은 원칙적으로 적용되는「실천원리 내지 행동원리가 아니고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제한규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현행민법하에서 신의성실 · 권리남용의 금지 · 사회질서 · 거래안전을 ‘실천원리‘ 내지 ‘
행동원리‘라 하여 사적 자치의 위에 올려 놓는 이론은 근거 없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론은 위와 같은 신의성실 등의 남용을 유발할우려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사적 자치를 보장하여 
경제구조를 확대하고 이에 의하여 이룰 수 있는 소득증대를 조세 등에 의하여 흡수함으로써 이것을 가지고 공공복리를 실현하는 것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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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문법의 新바이블




‘문법‘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여 문법이란 언어에 내재되어 있는 원리 혹은 규칙이다.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과정에서 우리말 문법이나 외국어 문법을 학습하고 이에 대한 교과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문법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때의 문법은 문법과목이나 문법책을 뜻한다. 문법을 연구하는 우리말 연구의 한 분야를 문법론 또는 문법학이라고 말하거니와 이 경우에도 ‘문법‘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그리고 범위를 넓히면 언어현상에 내재해 있는 일정한 질서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학교문법이현재 이러한 틀을 지향하고 있다.
한 언어의 문법을 설명하는 데는 규범문법적 태도와 기술문법적 태도를 구별하는 것이중요하다. 규범문법은 말이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떻게 쓰면 안 된다는 옳고 그름의규범(規範)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이리 와라‘와 ‘이리오너라‘는 다 같이 명령의 의미를 표시하지마는 전자는 표준어 규범에 어그러지기 때문에 옳다고 할 수 없으나 후자는 표준어의 규범을 지켰기 때문에 옳다고 말한다. 물론, 최근에는 ‘이리 와라도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처럼 규범이 바뀌기도 한다. 규범문법과 달리 기술문법은 옳고 그름의 규범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이를 더러 학문문법이라고도 말한다. 규범문법에서 그르다고 판정을 받는 이 옷이 손님에게 잘 어울리세요.‘ - P3

첫째, 우리말은 형태론적으로 볼 때 교착어에 속한다.
형태론적으로 교착어에 속한다고 함은 어간과 어미의 형태가 투명하여 하나의 형태에하나의 기능이 일대일로 대응된다는 뜻이다. 영어와 같은 굴절어는 어간과 어미의 경계도분명하지 않고 하나의 형태에 여러 가지 기능이 대응된다. 이를테면 ‘I saw you‘의 ‘saw‘에서 어디까지가 ‘보다‘에 대응하고 어떤 요소가 과거를 표시하는지 쉽게 가려낼 수 없다.

둘째, 우리말에는 조사와 어미가 풍부하다.
우리말에는 체언에 붙는 조사와 용언의 어간에 붙는 어미가 풍부하다. 대부분의 문법적관계는 조사와 어미에 의하여 표시된다. 체언의 뒤에 조사와 같은 것이 붙는 언어를 훔치사적 언어(postpositional language)‘ 또는 ‘핵 뒤 언어(head-final language)‘라 부르기도한다. 이는 전치사적 언어인 영어 등의 인도유럽어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조사 가운데는보조사라는 것이 있어서 미묘한 의미 차이를 표시하는 데 잘 이용된다. 특히 연결어미는문장과 문장을 잇거나 동사를 이어 주어, 문장의 구조를 역동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이러한 현상은 알타이어 문법에 편재(在)하여 있는 부동사(副詞, converb)와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조사와 어미는 앞의 1장(89) (2) 에서 본 바와 같이 선행어의 음성적성질에 따라 형태 교체가 일어난다. 같은 교착어라도 일본어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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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에 대한 찬반 양론의 주장을 비교하며
고찰해볼 수 있습니다.












공리주의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그것의 이론적 토대를 발전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행복을 증진하고 고통을 완화하는 실천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간 존재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조건이라고 받아들이는실천 관행들을 비판했다. 이런 도전들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벤담이 1770년대부터 1820년대까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성적 자유를 옹호하는 수필과 소논문들을 썼다는 것은 비교적덜 알려져 있다. 그 당시는 새뮤얼 존슨 박사와 같이 대중들의칭송을 받는 사상가들이 비정상적인 성교의 ‘악‘을 방지하기위하여 엄격한 법률의 지속적 집행‘ 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벤담은 성의 쾌락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똑같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인 것이라고지적하면서, 성적 쾌락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맹목적 편견‘에서 비롯된 제약들을 폐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성적 취향에서의 차이는 그것이 해악을 야기한다는 것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처벌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처벌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성적 취향의 차이가 해악을 낳는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다양한 저술에서 벤담은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전통적 논증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논박하였다. 그는 이런 저술들을 출판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그의 사후에라도출판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오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성에 관한 서구인의 관념이 벤담의 사상을 따라잡는 데는 한 세기 반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우리의 직관적인 윤리적 판단은 그것들이 진화해 온 환경과는 다른 환경에 적용될 때 특별히 엄밀한 검사를 받을 필요가있다. 그러나 환경이 변화하지 않았을 때조차도 우리의 자동적 반응들은 종종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결국 진화는 도덕적 지식이나 가능한 최고 수준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식 적응도(reproductive fitness)를 선택한다. 자위,구강성교, 동성애처럼 생식과 무관한 성행위를 제재하는 집단은 그러한 태도를 가지지 않는 다른 집단보다 더 높은 출산율과 더 빠른 성장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제재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는 뜻은 아니다.

쾌락주의를 되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옥스퍼드 대학교의 현대 철학자인 로저 크리스프 (Roger Crisp)는 [돼지보다 계통수의 훨씬 아래까지 내려가서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볼 것을요구한다. 매우 제한적 쾌락을 무한히 경험하는 불멸의 굴의삶과 77세까지밖에 못 살지만 다양한 강도의 다채로운 쾌락을 경험하는 작곡가 하이든(Joseph Haydn)의 삶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굴의 삶은 무한하기 때문에 하이든의 유한한 삶보다 더 큰 쾌락의 총합을 가져온다. 그러나 당신은 기꺼이 굴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돼지의 철학‘ 반론에 대한 밀의 대응은 쾌락을 평가함에 있어서 양뿐만 아니라 질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의 논의에 의하면, 만약 두 종류의 쾌락을 경험한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한 종류의 쾌락의 양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그것을 위해서 다른 종류의 쾌락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그 다른 쾌락을 결정적으로 선호한다면, 그 쾌락은 질적으로 우월하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단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 당신에게 당신은 이미 경험 기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다는 믿음도 환상이고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친구들을 포함해서 당신이 기억할 수있는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경험 기계 밖으로 나오길 원하는가? 일련의 실험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지금의 삶이 실재하는 현실이건 컴퓨터로 프로그램 된 환상이건,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이탈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경험 기계 안에 들어가기를 꺼려 하는 것은우리가 내리는 많은 다른 결정들과 마찬가지로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bias)‘에 영향 받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변화는 부가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또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세계를 떠나서 경험 기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특히 그 기계가 완전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경험 기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아마 그 기계를 떠나는 것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최선의 결과‘란 불행을 제하고 난 가능한최대의 행복 또는 고통을 제하고 난 가능한 최대의 쾌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심리 상태의 양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고할지라도, 가령 나 자신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나는 오늘 나의 행복을 측정할 수 없다. 그리고 작년의 같은 날보다 오늘이 2.6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공리의 개인 간 비교는 훨씬 더 어렵다. 다음 주말에 나는 배우자와 함께 도보 여행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즐거운 하루가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나는 외로운 나의 할머니를 방문하여 그녀를 즐겁게 해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둘 중에 공리를 가장 많이 증가시키는 것은 어느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계 공리 체감의 법칙은 평등한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보다더 좋다는 널리 퍼져 있는 신념을 지지해 준다. 우리는 수입의 분배가 극히 불평등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공리주의자들은 생산성의 감소가 초래하는 공리의 손실이 수입의재분배에서 얻는 이득을 능가할 정도로 전체 생산성을 감소시키지 않는 한에서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조치들을 지지한다.
이 점에서 공리주의자들과 평등주의자들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견해를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주의자들은 더 큰 평등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이유가 평등을 결과와 무관하게 본래적 가치를 가지는것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평등에 적합한 비중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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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를 백분 활용하면서다원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 그리고 무신론과 좌파 이데올로기에적극 편승하여, 동성애가 정상으로부터 일탈이나 비행 또는 비난받을 만한 불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즉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적기호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되고 결정된 부도덕한 변태행위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다른 성적 지향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더욱이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바에는 이성애와 비교하여 
차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널리 추앙받는 미셀 푸코는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만큼, 
동성애가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사회 제도와 생명 권력과 생명정치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자가 비정상인과 같이 취급되는 것은 그들이 변태성욕자 
또는 정신병자이기 때문이아니라 단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며 출산을전제로 
한 가족제도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추종한다면, 전통적 가치관이나 
기본적인 윤리, 결혼과 가족제도에 관한 기존의 관념들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고, 인간의 성관계는 동물과 다른
4계절 전천 후 성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성적 지향성을 가진 종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동성애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연관된 증거로 이른바성 정치학을 들 수 있다. 이 분야의 이론가 제프리 웍스(JeffreyWeeks)는 성 정치를 성차와 성적 분화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이 용어는 1970년 초기페미니즘 이론가인 Kate Millett의 성정치 (Sexual Politics) 에서 유래한 것으로사회구조를 성차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도구였으나, 그 후 성 정치운동의 투쟁도구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 이 운동을 전개한 서동진은 "누가 성 정치학을 두려워하랴!"라는 글에서 ‘이성애 중심, 성인 중심, 생식 중심의 성‘을 지배적인 성의 3대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이것을 정상적,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다른 형태의 성을변태적, 퇴폐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기존관념을 분쇄하는 데 성 정치학이 나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을 사회적 억압도구를 읽는 열쇠로 본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일부 언론에 칭송을 받는 
행위가 되었고,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인권보도준칙이나 
혐오표현규제법안도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지금까지 정신장애인이나 지체아, 한센병 환자, 전과자, 
이주민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 부류에 속한 소수자는 
권력과 물질의 향유에서 뒤쳐진 그래서 사회적 보살핌과 
동정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그들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도식에서 처음부터 배제된 자들이거나 애당초 보편성의 무산 밑에 들 수 없는 부류의 사람에 불과했다. 그들은 지배집단에 의해 억압받아 왔으며 그 분위기속에서 형성된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일쑤였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 문제는 서구에 비해 조금 복잡한 양상을 띤다.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처벌했지만, 한국의 법은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이들이 폐쇄된 곳에서 은밀히 자기들의 문화를 누리는 것에 만족해 하는 경향이 있었다. 1995년에 이르러 한국에서도 사정의 급격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제 볼셰비키 그룹에서 동성애와자본주의의 억압이란 글이 나오고, 신좌파가 한국에도 수입되면서서구처럼 동성애자 권리운동을 주장하는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거리로 뛰쳐나온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펴면서 점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 소수자들은 보편적인 윤리와 전래되어 온 문화전통이나 제도를 거부하고 아울러 집단 속의 표준화된 개인으로존재하기를 거부한다. 현존재의 삶의 방식은 자신이 선택한 실존적 결단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면서까지 동질화와 규범적 정형화를 요구하는 사회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까지정상성의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나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 성적 소수자들의 외침이다. 내 현재적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일 뿐이며, "보편적이 되라 (Werde Allgemein!)"는 칸트의 정언명령 대신 "자기 자신이 되라 (Wercle Selbst!)"는 니체의 경구가 그들의 삶의 모토가 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더불어 공유할수 있는 가치와 윤리의 지평이 이러한 그들과 공동체의 삶 사이에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느범위에까지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구사회의 유명인 중에서 동성애자인 사람들에게 다른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요구하거나 강요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자 미국에서 2015년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이후에 연예인들 중에서 게이라고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정작 ‘유리하니까 커밍아웃 한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는소 문도 들린다.

커밍아웃에 의한 소수자들의 성정체성 추구는 사회적 약자에대한 보호와 다른 논리를 갖는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성정체성은 인간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 즉 신과 자연과 사회와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될 인간존재의 독특한 의미는 한 개인의 성정체성으로써 대체하거나 환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성정체성은 사회의 중심축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특이성향을 운명이나 현실로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자각 위에서 자신들의 존재와 실존을 위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편견과 차별적 시스템에대항하여 안티운동을 벌여나가는 데 필요한 자기의식화가 바로 커밍아웃인 셈이다. 

주목할 대목은 동성애 단체측은 성적 지향이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고, 버틀러의 젠더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은 유동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개인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 성향으로고정되어 있다는 성적 지향론을 부정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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