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추구한 자유로의 해방이 그 자유의 공간의 구성과 함께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 점은 실러의 작품 「고상한 것에 관하여(Über das Erhabene)」에 아주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오래된 언어로 들을 수 있는 전망적 계획이다. 거기에는 다음과같이 쓰여 있다. "의지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며, 이성 자체는 다만 그 의지의 영원한 규율이다. 따라서 인간은 폭력을 감수할 만큼존엄하지 못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폭력은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는 바로 우리의 인간성을파괴하는 것이며, 비겁하게도 그 폭력을 감수하는 자는 그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유토피아적의도와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자연법적 의도 사이의 차이는 지양되어야 할 때이며, 결국 기능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때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빈곤의 종식 없이 인간의 존엄은존재할 수 없고, 과거와 현재의 예속의 종식 없이 인간의 존엄은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과거와 현재의 예속의 종식 없이 인간의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상의 계몽은 바로 이 점에 놓여있으며, 이 양 측면은 다시는 분리될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다. 이책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 즉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역사적으로사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것은 물음을 제기하고, 무언가를요구하면서 추구된 계몽으로부터 시작해서 고전적 자연법에서 끝나지 않는 독특한 종류의 법학이다.

- 에른스트 블로흐,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 서문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갈수록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인간, 그것도이른바 민중이라는 수많은 인간들이 더욱 전면에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두 다 자신의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게 되며, 
이제 ‘인간의 존엄‘은 현실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약간은 귀에 거슬리게 들릴지도 모를 표현을 사용한다면) 민중이 인간적, 정신적, 문화적 주체로 떠오르게 된 현상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반응은 기존의 질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의 인격성을 "인간존재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처분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존재는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처분될 수 있다"는 인간의 근본적 속성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한인간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인간에 의해 억압당하는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떠받치고있는 신뢰, 즉 오로지 그 자신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인격적 권위와 주체성을 갖는다는 신뢰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세계상황에 의해 ‘동요되는 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항상 가지고 있는 민음, 즉 어느 누구도 나를 제멋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나를 처분할 수 있는 자는 원칙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뿐이며, 따라서 타인은 원칙적으로 그의 자의 따라 나를에처분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물론 타인이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은 채, 나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결정하거나무엇인가를 감수하고 용인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조차 할 수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그의 자의에 따라 나를취급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상호적이고 쌍방적으로 우리를 구속시키고 결합시키는 행위규칙 - 그것이 관습이나 관행이든 또는 윤리나법이든 - 에 따라서만 나를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위대한 평등혁명, 즉 모든 인간의 원칙적으로 평등한 자유와 안전을 요청한 민주주의 혁명과 모든 인간의 원칙적으로 평등한 복지와 정의를 요청한 사회주의 혁명은 인간의 인간의로서의 원칙적인 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계약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 인격성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연대성도 보장한다. 이러한 근원적 연대성에 기초하여 인간은자신의 자유의 행사를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상호적이고 보편적으로 평등한 행위규율에 복종하게 된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더 나아가 인간 사이의 계약이나 법률과 같이 인간들을 서로 결합하고 매개하는 의지를 통해 기대에 대한 상호적이고 보편적인 결합 및 이러한결합의 근거가 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이익의 매개가 실현될 때만 그와같은 규율이 단순히 형식적 효력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타당성을갖게 된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근원적 연대성에 기초한다.

우리는 인간존엄의 침해라는 특정한 사실을 반가치, 즉 인간의존재가능성을 해치고 존재가능성에 부합하지 않는 조건으로 여기는 반면, 인간의 존엄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에 유익하고 여기에 부합하는 존재가능성의 조건으로 파악한다. 바로 그 때문에 이처럼 완전히 상반된 평가의 대상이 되는 두존재상황 사이의 긴장(또는 양자의 차이와 불일치)으로부터 인간의존엄이라는,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인간의 선(善)에 관한 인식도 생겨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존재상황을 비교해 보면어느 것이 인간의 공존 가운데서의 실존(Existenz in Koexistenz)과관련하여 인간의 선으로 경험되는 조건인지가 분명하게 밝혀진다.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원칙적인 자기귀속성과 자기처분성(인간의인격성) 및 인간의 원칙적인 타자지향성과 상호지향성(인간의 연대성)에 관련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선 가운데 어떤 선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인간의 최고선이라 부를 수 있는 조건이다.

오늘날 헌법제정자가 인간의 존엄을 최고선으로 인식하고 또한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법익으로 인정했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개인, 사회, 국가의 행동에 대한 특정한 결론을 도출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는 결코 헌법제정자의 자의에 따른 것일 수 없다. 따라서 국가도 명백히 인간의 존엄에 구속된다. 즉 국가는 원칙규범인 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이 인간 사이의 모든관계나 행동에서 타당성과 구속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국가는 국가권력의 모든 행위와 관련해서도 근본규범으로서의 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 권리로 고양됨으로써 국가와 개인, 국가와 사회그리고 국가와 인류 전체의 관계는 힘에 기초한 자연상태에서 빠져 나와 완전히 다른 토대, 즉 권리에 기초한 문화상태에 도달하게된다. 이러한 문화상태에서는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아니라,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모든국가활동의 핵심이 된다.

오늘날의 헌법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야 할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는 부작위청구권, 즉 국가가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극적 행위의무에 국한된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인간의 존엄을 보호해야 할 의무로부터는 국가에 대한 행위요청, 즉 국가의 적극적 행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보지만, 이 적극적 행위의무는 국가 외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인간존엄의 침해를 방어하는 것에 국한된다고 한다.
"국가 외적 영역에서 인간존엄의 존중요청이 침해 그것이 개인에 의한 것이든, 사회집단이나 외국에 의한 것이 되는 모든 경우에 "국가에대한 인간존엄의 존중 요청에는 당연히 그러한 침해를 방어하는,
국가에 대한 적극적 행위요청도 포함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일반적이는해석에 따르면 인간존엄의 침해에 대한 법익주체의 방어권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을 선언하고 있는 기본법 제1조 제1항 1문에서도출된다 에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야 할 국가권력의 의무를규정하고 있는 2문에 비추어 볼 때, 국가권력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부작위청구권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부작위청구권에는 인간의 존엄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의 의무를통해 국가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침해를 방어해야 한다는, 국가권력에 대한 방어청구권이 추가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호‘
라는 적극적 행동은 ‘적극적 형성‘이 아니라, ‘단순히 침해의 방어‘,
즉 ‘방어적 국가활동‘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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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구어 영문법 - 알기 쉬운 해설로 업그레이드된 영어회화를 위한 영문법 바이블
제프리 리치.얀 스바르트빅 지음, 김주성 감수 / 빅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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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CGEL의 저자가 참여한 이 책은 언어학 이론보다는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 할 수 있다.
원서로 공부하는 영미식 영문법 학습에서 그래머인유즈 다음의 교재로 구어체를 중심으로 쉬운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corpus에 기반한 주옥같은 예문들이 압권이다.
문법적인 형식과 의미, 그리고 변이형에 대한 설명도 매우 상세하다.
다른 문법책들과는 달리 구어체 영어에서 중요한 억양과
발음까지친절하고 직관적인 설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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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학 기본서












우리는 자신의 닥쳐올 미래와 운명에 대하여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려움과 좌절을 겪을 때는 더욱 그렇지만, 평소에도 항상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과 의문 등으로 운명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언제나 잘살고 행복해질 것인가? 등등 인생의 근본 문제로 자문자답하며 주변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보기도 하지만 
확실하고 명쾌한 답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대부분 그 뜻을이루지 못하거나 중간에 
실패하여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아 나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데, 명리학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관심이 없다가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와 좌절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주팔자 
운명의 실체를 궁금해하게 되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선각들의 오랜 연구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지혜와 진리의 학문이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단할 수 있는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진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를 작성할 때 기준점이 되는 것은 바로 절기이다. 사주는 음력 생일을 알아야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의 청소년들 같은 경우에는부모님들이 양력 생일만 알고 있어 사주를 못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사주를 보는 데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태어난 날짜와 시간만 정확하게 알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사주를 작성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점은, 사주를 구성할 때는 무엇보다도 어느 절기 사이에 태어났느냐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음력 1월에 태어났어도 그 해의 절기에 따라서 이 되기도 하고, 子月이 되기도 한다. 즉 입춘이 지나고 경칩 전에 태어났으면 寅月이 되고, 입춘에 태어났으면 子月이 되는것이다.
이처럼 사주에서 절기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주를 정할 때는 무슨 절기가 지난 뒤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생년이나 생월 모두 절기의 절입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행운이란 운이 흘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타고난 사주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돌아오는 운과 만날 때 어떤 변화를 이루며, 그로 인한 길흉화복의 변화가 어떠한가를 예단하는 것으로 그 사주가 처한 환경이요, 의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사주를 해당하는 기간 동안 관리하는 위탁 관리자와 같은 것이다. 사주와 행운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행운과 사주를 합해서 말 그대로 운명(運命)이라 한다.
사주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행운은 그 차가 앞으로 운행해야 할 도로와 같다고 할수 있다. 사주로 자동차의 차종을 알 수 있다면, 행운으로는 그 차가 달려가는 도로의상태를 아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부귀빈천이나 직업, 건강 등에 관한모든 사안은 사주의 구성에 달려 있지만, 그 변화의 상태와 시기는 행운에 달려 있어행운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주 좋은 것이 운 좋은 것만 못하다‘라고 하며 사주보다 대문이나 년운 등 행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격국용신이 잘 이루어져 있고, 음양오행이 조화롭게 잘 배합되어 있는 좋은 사주는 길운을
만나면 크게 발복하며, 평운에는 잘사는 것은 물론이요 
흉운에도 크게 잘못되지 않고 일생을 무난하게 살아 나간다. 그러나 반대로 사주가 격국용신이 미약하고 중화를 이루지 못하고 편중되어 있는 경우에는 길운이 오더라도 크게 발복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행운도 중요하지만 우선 사주 선천명을 잘 타고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운에서 대운은 월주의 연속선상에서 사주를 보좌하는 작용을 하므로 사주원명에서 부족했던 점을 대운에서 채우면 파격이었던 사주도 새로운 격국을 이룰수도 있고, 반대로 대운에 의해 멀쩡했던 사주가 파격이 되는 수도 있다. 그만큼 행운의 작용력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육신은 일간과 사주의 나머지 7자와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으로이라고 한다. 즉 일간과 사주의 나머지 글자와의 생극과 음양의 관계를 가려 나 자신인보과 비겁성, 식상성, 재성, 관성, 인성으로 구분되는 여섯 가지의 별(星)을 말하는 것으로 음양으로 구분되어 심성이 되는 것이다.
육친과 심성은 각기의 고유한 기질과 속성으로 사주의 주인공인 일간에게 성정과성격, 특기와 재능, 적성과 직업, 건강과 재물,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상 등 모든 것을규정지어 주는 것으로서 명리학의 기본이요, 사주의 핵심이다.
이 육신을 통하여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사주의 기본적인 제반 사항을 파악함은 물론이고, 후천적으로 일주가 운에서 만나는 대문과 년운, 월운, 일문과의 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며 변화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겁재는 남자에게는 누나와 누이동생이 되고 여자에게는 오빠와 남동생으로 볼 수있으며 이복형제, 경쟁자, 동창생, 동인, 거래인, 직장 동료, 모임이나 단체 등을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채권자, 손재, 불화, 배신, 투쟁, 강제, 폭력, 강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명에 겁재는 남편의 여직원이나, 애인 또는 첩 등이 된다.
비견과 다른 점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거나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자기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사이가 겁재에 해당한다.
겁재는 정재를 파극한다는 뜻으로, 나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정재란 남자에게는 부인이요, 재산에 해당하므로 겁재는 흉함이 많고 강제성을 띤다.
겁재의 성격은 비견과 같이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나, 비견과 다른 점은 비견이 양성적이라면 겁재는 음성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겁재는 자존심을 표면에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대인관계도 비교적 원만하다. 비견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을주장하지도 않고 양보를 해야 할 때는 과감히 양보하며 겉보기에는 수양된 사람처럼보이기도하나 속으로는 비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독선적인데, 다만 그것을 겉으로나타내지 않을 뿐이다. 손위나 감자에게는 얌전하게 순종하는 듯하지만, 내심으로는고개를 숙이지 않고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약자나 손아래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기주장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또 성질이 까다로워서 밖에서는 무난하나 가정에서는 폭군으로 변하거나 잔소리가 많은 수가 있다. 특히 양일간이 지지에 겁재가 있으면이라 하여 앞에 말한 독선적이거나 권위적인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기본위적인 사람이라 하겠다.
겁재 역시 겁재만으로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편관이나 식상 등의 유무와 합, 충, 신살 등을 두루 살펴 판단해야 한다.

편재는 남성에게는 아버지 또는 애인이나 첩이 되고 여성에게는 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된다. 사회적으로는 투기, 도박, 뇌물, 횡령, 밀수 등이 되며 의외의 횡재, 무역,
고리대금, 유흥, 윤락, 마약 등이 이에 해당한다. 편재는 편법, 투기, 부정한 방법에의하여 취득한 재물이나 부적절한 애정 상대로 본다. 그러므로 편재는 그 취득하는과정과 성격상 비난이나 원성, 질투, 시기, 경쟁, 사기, 협박 등 강제적이거나 불법이따른다 하겠다.
편재의 성격은 수완, 요령, 융통성, 외교성과 사교성이 좋고, 한편으로는 의협심과동정심이 많으나 풍류와 낭비벽이 심한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집에 초대하거나 모임을 자주 갖고 화제도 풍부하고 호방하여 지루한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나 애인으로 사귀기에는 최상의 타입이다. 단적으로 말해 다정다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관(正官)은 관리한다는 뜻으로 가정이나 단체, 국가, 인류 사회의 질서로 도덕과 법이 되서 정관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사회적으로는 질서, 책임, 제도, 법, 권위, 명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자식과 명예, 직장이 되고, 여자에게는 남편이 되므로 사주에예, 정치를 의미하며 관공서, 국가기관, 관료, 직장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관은 질서와 예의를 존중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준법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형제간에 우애하고 효도하며 자녀에게는 자상하면서도 엄한 사람의 표상으로 한마디로 모범인으로 용모가 단정하고 품행이 방정하다. 명예를 중히 여기고 편법을 싫어하며 원리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고, 자존심이 강하여 오히려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기 쉽다.
원칙과 법규, 책임을 중시하는 까닭에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신용과 책임을 따지고 명예를 취하다 보니 실속이 없는 경향으로 매사 너무 계획을 세워 실행하니 오히려 추진력이 따르지 못하는 결함이있다. 소탈해 보이나 융통성이 없고 모험을 좋아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사적인 면보다는 공적인 면이 더 좋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정관의 특성이다.
정관은 모범적인 남편이나, 거기에 더하여 아기자기한 맛까지를 바란다면 무리로특히 가정에 돌아오면 말이 없고 무뚝뚝해지는 사람이 이 타입에 많이 있는데 이 점이 결점이다. 애인으로 사귀기에는 재미없는 스타일이나 책임감 있고 성실한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여자에게는 정관이 남편을 의미하므로 현모양처의 자질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매사가 모범적이므로 남편이 안심하고 집안일을 맡기고 밖에서 일할 수 있는 타입이다.

삼재란 마치 혹한기와 같이 만물의 성장이 위축되고 정지 상태에 있는 것과같아 매사에 활동이 위축되고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 시기로 부귀명예를 가지고 있는사람이나 서민, 건강한 사람이나 병약한 사람 모두 다 마찬가지인데 운이 흉하면 더욱 심한 흉액이 일어난다.

첫째는 인재(人災)로 사업의 실패나 부진, 금전 거래의 실패, 보증이나 담보로 인한 실재투자의 실패, 사기를 당하거나 부도 또는 파산을 당한다.

둘째는 관재(官災)로서 혈액이나 솜사가 발생하고,
셋째는 우환으로 사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으로 인한 수술, 또는 가족 중에 위과 같은 우환이 생기거나 사망하는 것 등을 말한다.

화개살은 예술성이요. 참모성이라고도 하는데 삼합오행의 묘지로서 삼합의 끝자이다. 묘지란 창고와 같아서 오행의 정기를 저장하는 곳이므로 본체의 보존과 재생또는 영속성을 계승하는 역할을 담당하므로 종교와 예술성을 내포한다.

오행의 속성을 동정(動靜)과 시중말(始中末)로 나눈다면, 화개는 靜에 속하고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에 속한다. 예로 戌은 火氣를 겨울 동안 저장하였다가 봄에 다시피워 쓰는 것과 같아서 사물과 정신을 보관하는 작용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참조하는 진리의 창고이다. 고로 화개는 문화, 예술, 신앙과 관계된 학교, 학원, 사찰,
교회, 박물관, 수련원, 기도원 등이 이에 속한다.

사주에서 화개가 길신이면 참모나 비서의 도움이 크고, 정인과 동주하고 길신에해당하면 대학자가 되고, 천을귀인이나 월덕귀인 등과 함께 있으면 인격이 청고하고 貴와 文을 겸비한다. 화개가 공망되면 종교인이 되든지 종교 계통으로 진출하는 수가많으며, 일지에 화개가 있으면 도학이나 수련에 뜻이 많고, 여명에 화개가 여러 개 있으면 자녀를 양육하기 어렵고 고독을 면하기 어렵다.

화개와 양인이 함께 있으면 다재다능하나 유시무하며 결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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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유의 탄생과 전개과정을 탁월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넘을 수 없을 듯이 보이는 이 같은 편견에도 나는 한국 철학이 아직 이땅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함석헌이 물에서도 아니 녹았고, 불에도 아니 탔고, 칼로 찍어도 아니 끊어졌고, 망치로 때려서도 아니 바쉬진 것이 우리 말 우리 생각"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사유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아니 당신이 이 땅에살고 있는 한, 그 때문에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도 원효와 똑같이 통합의논리를 제시하는 논객이 있고, 지눌의 깨달음에 도달한 고승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이 땅 어딘가에 이황처럼 말과 행실을 일치시키려 애쓰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혹 당신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당신이다. 왜냐하면 이황의 글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부끄러워질수밖에 없으며, 조식의 상소문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그 경건함에 고개를 숙일 것이며, 박지원의 시를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눈물지을 것이고,
정약용의 논(論)을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무릎을 치며 탄복할 수밖에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한국 철학사를 펴내는 일은 동아시아고전을 연구하는 이가 『논어』를 주해하고 기독교 신학자가 성서를 주해하는 것만큼이나 학문적으로 뜻 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이런 학문적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철학의 거장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삶의 문법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저변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 책을 펴내는 데 더 큰 동기로 작용했다.

불교의 나라 고려에서는 대각국사 의천이 나왔습니다. 
국사라는호칭은 신라 시대에는 없었고 고려 시대에 
처음 생겼는데, 나라의 스승.
나라의 스님이란 뜻입니다. 
의천은 고려의 11대 왕 문종의 아들인 동시에13대 왕 
선종과 15대왕 숙종의 동생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스님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천이 선종에게 이야기해서 원효에게 화쟁국사라는 호칭을 내리도록 합니다. 여기서 고려의 스님들도 원효 사상의 핵심이 화쟁이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도 사회 분열이 심각해지면 원효의 화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와 상관없는 여러 매체에서 원효의 화쟁을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화합‘을 이루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화합이 어렵습니다. 서로 이익을 다투잖아요. 이익을 다투는 사람들 간에 어떻게 몫을 나누는 것이 합당한지, 그에 대한 합의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지눌의 수행법은 돈오점수와 정혜쌍수입니다.
돈오는 단박에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점수는 조금씩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정‘은 ‘선정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마디(samadhi) ‘이고 ‘삼매(三昧)‘로 음역한 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선정입니다. 
정(定)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 상태, 혹은 그러한 수련에 들어간 상태를 말합니다. ‘혜‘는‘지혜‘ 입니다. 팔리어로 ‘pania", 산스크리트어로 ‘praina‘, 한문 음역으로 ‘반야죠. 선정은 돈오와 관련된 수행 방법이고 점수는 지혜와 관련된 수행 방법입니다. 정혜쌍수는 대번에 깨치는 선정의 수행인 돈오와 깨우쳤다 해도 계속해서 지혜를 쌓아가는 점수의 과정을 함께 닦아가야 한다는 지눌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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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개설서


형이상학을 논하는 학자들이 실체의 단순성,
객관적 인과 필연성과 자유, 최고의 실재성 등에 입각해서 형이상학적 
대상인 영혼, 세계, 신에 대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개념적인 논의에 그칠뿐 그 물음을 제기한 
우리 일반인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 세계 자체, 신(神)은 
일반 사람들이자연적 본성에 따라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것들이지만, 그에 대한철학자의 논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철학에서 이런 문제가 왜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힌다.
칸트 이전에는 형이상학이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과 특수한 영역의 존재를 논하는 
특수형이상학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칸트에서는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은 
존재론으로 불리고,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을 논하는 
특수형이상학만이 형이상학으로 남겨진다. 
이 둘의 구분은 경험 가능한 대상의 영역과 
경험 가능하지 않은대상의 영역, 
즉 형이하의 영역과 형이상의 영역의 구분에 해당한다.

칸트는 이 두 영역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칸트 이전 철학의 두 부류인 합리론과 경험론을 모두 비판한다. 합리론은 우리에게 선험적 인식이 있음을 논하면서 그 선험적 원칙을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에게까지 적용하여 형이상학 체계를 수립했는데, 칸트에 따르면 그것은 선험적 원칙의 근원과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그 원칙을 제한 없이 적용하려 한 독단주의이다.
반대로 경험론은 우리의 인식을 모두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려 함으로써 선험적 인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감각경험으로부터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칸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있는 선험덕 인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회의주의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빨갛다.‘ 또는 ‘사과는 검다.‘
는 전자는 참이고 후자는 거짓이지만, 
그러한 참 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명제이다. 
우리는 이 명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진리치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색은 빨간색이다.‘ 처럼 거짓일 수가 없는 항진명제 또는 ‘빨간색은 빨간색이 아니다.‘처럼
참일 수 없는 모순명제는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어떠한 
세계의 그림도떠올릴 수 없고 따라서 어떠한 존립 가능한 
사태도 말해주고 있지 않으므로 의미 없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가능한 사태를 그려내는 ‘의미 있는 명제‘와어떠한 사태도 그려내지 않는 ‘의미 없는 명제‘ 이외에 ‘무의미 (Unsinn)‘
한 명제를 논한다. 
무의미한 명제는 세계의 모사형식인 구문법적 논리형식을 따르지 않는 명제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은 빨간색이다.‘ ‘돌멩이는 착하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 등의 명제는 주술 연결이 잘못된 명제, 즉 구문법적 논리에 맞지 않는 명제이다. 따라서 이런 명제는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다. 말이 안 된다고 거짓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의 부정인 ‘삼각형은 빨간색이 아니다‘ ‘돌멩이는 착하지 않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가 참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명제는 아예 진리치를 
갖지 않는 명제이다.
이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세계의 그림으로 
간주하면서 의미 있는 명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밝혔다. 
이로써 우리가 발언하는 명제를 의미 있는 명제, 의미 없는 명제, 
무의미한 명제의 세 부류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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