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추구한 자유로의 해방이 그 자유의 공간의 구성과 함께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 점은 실러의 작품 「고상한 것에 관하여(Über das Erhabene)」에 아주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오래된 언어로 들을 수 있는 전망적 계획이다. 거기에는 다음과같이 쓰여 있다. "의지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며, 이성 자체는 다만 그 의지의 영원한 규율이다. 따라서 인간은 폭력을 감수할 만큼존엄하지 못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폭력은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는 바로 우리의 인간성을파괴하는 것이며, 비겁하게도 그 폭력을 감수하는 자는 그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유토피아적의도와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자연법적 의도 사이의 차이는 지양되어야 할 때이며, 결국 기능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때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빈곤의 종식 없이 인간의 존엄은존재할 수 없고, 과거와 현재의 예속의 종식 없이 인간의 존엄은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과거와 현재의 예속의 종식 없이 인간의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상의 계몽은 바로 이 점에 놓여있으며, 이 양 측면은 다시는 분리될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다. 이책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 즉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역사적으로사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것은 물음을 제기하고, 무언가를요구하면서 추구된 계몽으로부터 시작해서 고전적 자연법에서 끝나지 않는 독특한 종류의 법학이다.
- 에른스트 블로흐,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 서문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갈수록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인간, 그것도이른바 민중이라는 수많은 인간들이 더욱 전면에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두 다 자신의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게 되며, 이제 ‘인간의 존엄‘은 현실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약간은 귀에 거슬리게 들릴지도 모를 표현을 사용한다면) 민중이 인간적, 정신적, 문화적 주체로 떠오르게 된 현상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반응은 기존의 질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의 인격성을 "인간존재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처분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존재는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처분될 수 있다"는 인간의 근본적 속성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한인간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인간에 의해 억압당하는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떠받치고있는 신뢰, 즉 오로지 그 자신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인격적 권위와 주체성을 갖는다는 신뢰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세계상황에 의해 ‘동요되는 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항상 가지고 있는 민음, 즉 어느 누구도 나를 제멋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나를 처분할 수 있는 자는 원칙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뿐이며, 따라서 타인은 원칙적으로 그의 자의 따라 나를에처분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물론 타인이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은 채, 나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결정하거나무엇인가를 감수하고 용인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조차 할 수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그의 자의에 따라 나를취급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상호적이고 쌍방적으로 우리를 구속시키고 결합시키는 행위규칙 - 그것이 관습이나 관행이든 또는 윤리나법이든 - 에 따라서만 나를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위대한 평등혁명, 즉 모든 인간의 원칙적으로 평등한 자유와 안전을 요청한 민주주의 혁명과 모든 인간의 원칙적으로 평등한 복지와 정의를 요청한 사회주의 혁명은 인간의 인간의로서의 원칙적인 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계약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 인격성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연대성도 보장한다. 이러한 근원적 연대성에 기초하여 인간은자신의 자유의 행사를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상호적이고 보편적으로 평등한 행위규율에 복종하게 된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더 나아가 인간 사이의 계약이나 법률과 같이 인간들을 서로 결합하고 매개하는 의지를 통해 기대에 대한 상호적이고 보편적인 결합 및 이러한결합의 근거가 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이익의 매개가 실현될 때만 그와같은 규율이 단순히 형식적 효력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타당성을갖게 된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근원적 연대성에 기초한다.
우리는 인간존엄의 침해라는 특정한 사실을 반가치, 즉 인간의존재가능성을 해치고 존재가능성에 부합하지 않는 조건으로 여기는 반면, 인간의 존엄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에 유익하고 여기에 부합하는 존재가능성의 조건으로 파악한다. 바로 그 때문에 이처럼 완전히 상반된 평가의 대상이 되는 두존재상황 사이의 긴장(또는 양자의 차이와 불일치)으로부터 인간의존엄이라는,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인간의 선(善)에 관한 인식도 생겨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존재상황을 비교해 보면어느 것이 인간의 공존 가운데서의 실존(Existenz in Koexistenz)과관련하여 인간의 선으로 경험되는 조건인지가 분명하게 밝혀진다.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원칙적인 자기귀속성과 자기처분성(인간의인격성) 및 인간의 원칙적인 타자지향성과 상호지향성(인간의 연대성)에 관련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은 인간의 선 가운데 어떤 선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인간의 최고선이라 부를 수 있는 조건이다.
오늘날 헌법제정자가 인간의 존엄을 최고선으로 인식하고 또한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법익으로 인정했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개인, 사회, 국가의 행동에 대한 특정한 결론을 도출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는 결코 헌법제정자의 자의에 따른 것일 수 없다. 따라서 국가도 명백히 인간의 존엄에 구속된다. 즉 국가는 원칙규범인 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이 인간 사이의 모든관계나 행동에서 타당성과 구속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국가는 국가권력의 모든 행위와 관련해서도 근본규범으로서의 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 권리로 고양됨으로써 국가와 개인, 국가와 사회그리고 국가와 인류 전체의 관계는 힘에 기초한 자연상태에서 빠져 나와 완전히 다른 토대, 즉 권리에 기초한 문화상태에 도달하게된다. 이러한 문화상태에서는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아니라,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모든국가활동의 핵심이 된다.
오늘날의 헌법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야 할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는 부작위청구권, 즉 국가가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극적 행위의무에 국한된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인간의 존엄을 보호해야 할 의무로부터는 국가에 대한 행위요청, 즉 국가의 적극적 행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보지만, 이 적극적 행위의무는 국가 외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인간존엄의 침해를 방어하는 것에 국한된다고 한다. "국가 외적 영역에서 인간존엄의 존중요청이 침해 그것이 개인에 의한 것이든, 사회집단이나 외국에 의한 것이 되는 모든 경우에 "국가에대한 인간존엄의 존중 요청에는 당연히 그러한 침해를 방어하는, 국가에 대한 적극적 행위요청도 포함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일반적이는해석에 따르면 인간존엄의 침해에 대한 법익주체의 방어권인간존엄의 불가침성을 선언하고 있는 기본법 제1조 제1항 1문에서도출된다 에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야 할 국가권력의 의무를규정하고 있는 2문에 비추어 볼 때, 국가권력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부작위청구권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부작위청구권에는 인간의 존엄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의 의무를통해 국가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침해를 방어해야 한다는, 국가권력에 대한 방어청구권이 추가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호‘ 라는 적극적 행동은 ‘적극적 형성‘이 아니라, ‘단순히 침해의 방어‘, 즉 ‘방어적 국가활동‘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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