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개설서


형이상학을 논하는 학자들이 실체의 단순성,
객관적 인과 필연성과 자유, 최고의 실재성 등에 입각해서 형이상학적 
대상인 영혼, 세계, 신에 대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개념적인 논의에 그칠뿐 그 물음을 제기한 
우리 일반인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 세계 자체, 신(神)은 
일반 사람들이자연적 본성에 따라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것들이지만, 그에 대한철학자의 논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철학에서 이런 문제가 왜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힌다.
칸트 이전에는 형이상학이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과 특수한 영역의 존재를 논하는 
특수형이상학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칸트에서는 존재 일반을 논하는 일반형이상학은 
존재론으로 불리고,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을 논하는 
특수형이상학만이 형이상학으로 남겨진다. 
이 둘의 구분은 경험 가능한 대상의 영역과 
경험 가능하지 않은대상의 영역, 
즉 형이하의 영역과 형이상의 영역의 구분에 해당한다.

칸트는 이 두 영역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칸트 이전 철학의 두 부류인 합리론과 경험론을 모두 비판한다. 합리론은 우리에게 선험적 인식이 있음을 논하면서 그 선험적 원칙을 형이상학의 대상인 영혼과 세계 자체와 신에게까지 적용하여 형이상학 체계를 수립했는데, 칸트에 따르면 그것은 선험적 원칙의 근원과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그 원칙을 제한 없이 적용하려 한 독단주의이다.
반대로 경험론은 우리의 인식을 모두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려 함으로써 선험적 인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감각경험으로부터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칸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있는 선험덕 인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회의주의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빨갛다.‘ 또는 ‘사과는 검다.‘
는 전자는 참이고 후자는 거짓이지만, 
그러한 참 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명제이다. 
우리는 이 명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진리치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색은 빨간색이다.‘ 처럼 거짓일 수가 없는 항진명제 또는 ‘빨간색은 빨간색이 아니다.‘처럼
참일 수 없는 모순명제는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어떠한 
세계의 그림도떠올릴 수 없고 따라서 어떠한 존립 가능한 
사태도 말해주고 있지 않으므로 의미 없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가능한 사태를 그려내는 ‘의미 있는 명제‘와어떠한 사태도 그려내지 않는 ‘의미 없는 명제‘ 이외에 ‘무의미 (Unsinn)‘
한 명제를 논한다. 
무의미한 명제는 세계의 모사형식인 구문법적 논리형식을 따르지 않는 명제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은 빨간색이다.‘ ‘돌멩이는 착하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 등의 명제는 주술 연결이 잘못된 명제, 즉 구문법적 논리에 맞지 않는 명제이다. 따라서 이런 명제는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다. 말이 안 된다고 거짓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의 부정인 ‘삼각형은 빨간색이 아니다‘ ‘돌멩이는 착하지 않다.‘ ‘프랑스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가 참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명제는 아예 진리치를 
갖지 않는 명제이다.
이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세계의 그림으로 
간주하면서 의미 있는 명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밝혔다. 
이로써 우리가 발언하는 명제를 의미 있는 명제, 의미 없는 명제, 
무의미한 명제의 세 부류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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